재인, 재욱, 재훈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5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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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에겐 없는 특별한 능력이 내게 생긴다면, 난 뭘 하고 싶을까.
이를테면 무엇보다 강력한 손톱을 갖게 된다거나, 엘리베이터를 손 대지 않고도 자유자재로 움직이거나 멈추게 할 수 있게 된다거나, 위험을 감지하는 순간 눈 앞에 붉게 변한다거나 하는 능력이 있다면 말이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재인, 재욱, 재훈 세 남매에게 우연찮게 이런 특별한 능력이 생기고 말았다.
그들은 어느날 보낸이를 알 수 없는 소포를 받는다.

재인은 어떤 강력한 손톱도 문제 없이 깎을 수 있는 손톱깍이를, 재욱은 강력한 레이저포인터를, 재훈은 열쇠목걸이를. 각각의 소포 안엔 미색 쪽지가 한장씩 들었었다. 각각 Save 1, Save 2, Save 3라고 적혀 있었다.
그들이 소포를 받은 장소는 역시 모두 다르다.
재인은 일하고 있는 대전의 한 연구소에서, 재욱은 파견근무로 떠난 아랍 사막의 플랜트 공사장에서, 재훈은 엄마의 일방적인 강요 의해 떠난 조지아의 염소 농장에서.

그들에게 왜 그런 특별한 능력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은 그 능력으로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 본인들도 알 수 없는 누군가를. 
                

정세랑의 소설집을 세 번째 읽는다.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피플>, 그리고 이번 책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에서는 한 고등학교에서 일하게 된 보건교사 안은영의 특별한 능력이 보여지고, <피프티 피플>에서는 자그마치 50여명의 등장인물이 여기저기 나타나고, <재인, 재욱, 재훈>에서는 세 명의 인물이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
물론 소설의 발간 순서가 위의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앞서 읽은 두 권의 소설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그리고 생각한다.
아, 역시 재미있구나.

다르게 표현할 수 없어 그대로 표현해 보자면 정세랑의 소설은 재미있다. 가독성이 끝내준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볍다는 느낌과는 조금 다른 재미있음이다. 그래서 더 이 작가가 좋아진다.

분량이 짧은 소설이기도 하지만, 중간에 책을 덮을 수 없어서 앉은 자리에서 다 읽고 말았다.
작가의 말까지 모두. 소설만큼이나 작가의 말도 흥미로웠다.

더 이상의 소설 이야기는 이 책을 읽을 다음 독자를 위해 그만해야겠다.
재미있는 소설, 즐겁게 읽을 이야기를 찾는 독자들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권한다.

아,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내게 무언가 특별한 능력이 생긴다면 난 뭘 하고 싶을까'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자면, 물론 절대 그런 일따위 내 인생에서 일어날리 만무하겠지만, 그럼에도 굳이 상상해 본다면,
누구를 구하는 일에 그 능력을 쓰지는 않을 것 같다(이 소설에선 아마도 누군가를 꼭 구해야 한다고 그 능력들을 준 듯 하지만).


- 울음을 그칠 기미가 없는 엄마를 내려주고 대전으로 돌아가며 재인은 생각했다. 이십 대 내내 가장 힘들게 배운 것은 불안을 숨기는 법이었다고 말이다. 불안을 들키면 사람들이 도망간다. 불안하다고 해서 사방팔방 자기 불안을 던져서는 진짜 어른이 될 수 없다. 가방 안에서도 쏟아지지 않는 텀블러처럼 꽉 다물어야 한다. 삼십 대 초입의 재인은 자주 마음속의 잠금장치들을 확인했다.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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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야. - 단원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쓰인 육성 생일시 모음
곽수인 외 33명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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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인, 구태민, 권지혜, 길채원, 김건우, 김동영, 김수정, 김승태, 김승환, 김제훈, 김주아
김혜선, 김호연, 박성호, 박정슬, 선우진, 심장영, 안주현, 안중근, 양온유, 오경미, 유예은
이건계, 이단비, 이영만, 이지민, 이창현, 이태민, 임경빈, 전하영, 정다혜, 정차웅, 최성호
홍순영

아이들의 이름을 나지막히 불러본다.
한 명 한 명 소중하게.

더 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이 책에 실린 아이들의 이름조차 이제 처음 불러준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래도 그 말밖에 할 수 없어서 또 미안해.

이 책 《엄마, 나야》에 실린 서른 네 편의 시는 서른 네 명의 아이들이 말하고 시인들이 받아 적은 아이들의 이야기다. 아이들이 지은 시다.
이 책을 읽을 때, 여섯 살 된 나의 아이는 내 옆에서 종알거리며 '엄마, 엄마'를 쉬지 않고 불러댔다.
아이를 보다가, 시들을 읽다가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울컥,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이가 부르는 '엄마'라는 소리가 얼마나 애틋하고 고마운지 나는 다시 한 번 느끼고 만다.
아이가 짜증내고, 보채고, 울음을 터트리는 일이, 매일같이 사소한 일로 다투고 매일같이 화해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느낀다.
'엄마, 사랑해'라고 말하며 안아주는 아이의 품이 얼마나 따뜻하고, 아이를 안아줄 수 있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지, 영문도 모르는 아이를 안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하고 수없이 말해 주었다.

그리고 또 다시 미안해.

아이들의 생일파티에서 가족, 친구들이 모여 함께 이 시들을 낭송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얼마나 눈물을 흘릴지, 그러다 아이와의 추억을 나누며 몇 번쯤은 웃기도 할테고, 다시 그리워서 서로 안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를 보니, 살아남은 아이들은 떠난 아이들의 부모를 만나는 일이 죄송스럽고 어려워하지만, 남겨진 부모들은 친구들이 찾아와 아이와의 추억을 이야기해 주면 위로 받는다고 한다. 아마도 엄마지만, 아빠지만 몰랐던 나의 아이에 대한 소중한 이야기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옆에 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할 수 없는 아픔, 상상할 수 없는 그리움이다.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대체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 것만 같다. 잊지 않고.

- 별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날에는
햇빛이 볼에 따끔따끔 부딪히는 날에는
달이 동그란 눈을 찡끗거리는 날에는
비가 부슬부슬 이마를 가만히 쓰다듬는 날에는
바람이 상쾌하게 코끝을 스쳐지나가는 날에는
어김없이 내가 노는 시간이야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나는 잘 있어, 라는 신호야.
<그리운 목소리로 주아가 말하고, 시인 유현아가 받아 적다>

- 내가 잠시 다른 곳에 와 있다고 해서
우리의 깊은 사랑이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의 엄마가 보여주었으면 해.
엄마가 아픔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버텨줘서
이 특별한 생일을
아빠와 동생과 친구들과 함께 기억해줬음 좋겠어.
보고 싶을 때 모두 모여서 마음을 만지면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을.
슬픔도 눈물도 다 녹아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으로
내가 곁에 있을 거라는 것을.
알지, 엄마.
엄마가 지금보다 더 더 더 건강해져야 한다는 것.
더 더 더 씩씩해져야 한다는 것.
<그리운 목소리로 채원이가 말하고, 시인 이영주가 받아 적다>

- 조금 울 수도 있겠지만
슬퍼서는 아닐 거야
기뻐서도 아닐 거야
충분해서,
충분해서 울게 될 거야
아빠
나 보고 싶어 뒤척일 수도 있겠지만
노래 불러요
부르고 나면
나 만난 것처럼
나 만진 것처럼
괜찮아질 거에요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따끔거리는 내 사람들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니까
괜찮을 거야
<그리운 목소리로 온유가 말하고, 시인 박연준이 받아 적다>

- 지금은 손에 닿지는 않는 곳에 있지만
서로 얼굴을 만질 수 없는 곳에 있지만
모두들 너무 걱정 마세요.
저는 하늘 높이 올라서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고 흙이 되어
여러분 곁에 있을게요.
늘 다니던 동네 슈퍼, 운동장, 학원 근처에서
생생하게 웃으며 안녕, 하고 인사할게요.
<그리운 목소리로 순영이가 말하고, 시안 신미나가 받아 적다>

- 엄마와 아빠와 누나와 친구들이 나를 기억해주는 동안 나는아직 살아 있는 거예요.
기억하는 게 사랑하는 거예요.
기억하는 게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도 바람으로 다가가고 별빛으로 반짝이며 있을게요.엄마가 제 가슴에 새겨준 문자처럼 사랑해요 많이많이 사랑해요.내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말
엄마, 아빠, 누나 사랑해요.
<그리운 목소리로 건계가 말하고, 시인 도종환이 받아 적다>

-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어마 마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그리운 목소리로 예은이가 말하고, 시인 진은영이 받아 적다>

적으면서 다시 읽고, 읽으면서 다시 울고, 울면서 다시 미안해 하고.
오래도록 이 아이들에게 미안한 이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그것 뿐이라서 또 미안하다고 말 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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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살해자
윤재성 지음 / 들녘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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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외로워요. 저무는 태양 밑에서 외롭고, 뜬 달 아래 또다시 외로워요. 내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그 의미가 희속될까 입을다물 만큼 외로워요.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이 턱턱 막혀요. 누군가 주기적으로 심장을 움켜쥐었다 펴길 반복하는 것처럼.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잦아들지도 않아요. 이건 천식 환자의 호흡곤란 같은 거예요. 찾아올 때마다 속절없이 호흡기부터 물어야 하는."p92


" 전 언제나 혼자고, 그건 변하지 않아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으로 외로움이 사라진다면 밤마다 홈파티를 열었겠죠. 인간이 갖는 질량은 존재의 고독을 달래주지 못해요. "p93

저는 외로워요.
이 문장을 여러번 소리나게 읽어본다. 아주 조용하게. 혼자만 들릴듯한 목소리로.
저는, 외로워요. 라고도 읽었다가 저는...... 외로워요. 라고도 읽었다가 저는외로워요.라고도 읽어본다.
외롭다는 단어가 퍼지는 속도와 질감을 가늠할 수가 없다.
가끔 나는 이렇게 말했던가. 나. 외로워. 라고.

이 소설 《외로움 살해자》는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과 그들의 외로움을 죽여주는 말그대로 '외로움살해자'들의 이야기다.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의뢰를 하면 외로움 살해자들은 그들의 매뉴얼과 방식으로 의뢰인의 외로움을 살해한다.

보이지 않는 감정을 살해하는 일이 가능할까. 우선 '외롭다'라는 감정을 느끼는 이들이 그 감정의 실체가 '외로움'이라는 걸  어떻게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의뢰인 김미는 자신의 외로움이 살해될 수 있다는 걸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러번 외로움살해자에게 자신의 외로움을 죽여달라고 의뢰한다.
"전 아직도 제 외로움을 누군가 죽일 수 있다고 믿지 않아요."
"그럼 어째서 절 부르셨습니까?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면서요."
"외로웠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들처럼 외로웠다, 는 말에  잠시 책장 넘기는 걸 멈추고  상상해본다. 누구나 외롭다는 전제가 깔린 말, 그렇지만 누구나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는 말, 그러니 자신의 외로움을 죽일 순 없지만 최소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 희망, 희망.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 생각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길게 꼬리를 내밀게 된다.
공감이 되면서도, 설마 싶고, 그럴 수도 있겠지 싶다가도 에이 그럴리가, 싶어진다.
한가지 분명한 건, '외로움 살해'라는 소설의 주제가 충분히 흥미로웠다는 점이다. 그래서 계속 읽게 된다. 궁금해져서.

외로움살해자가 의뢰인의 외로움에 전염되는 순간, 그들은 직업을 잃게 된다. 의뢰인보다 훨씬 혹독한 외로움을 겪거나, 정신병을 얻거나, 사라진다.

김미의 외로움 살해자였던 윤필은 업계에선 알아주는 '외로움 살해자'였다. 그는 의뢰인의 외로움을 살해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실패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도 김미는 쉽지 않은 의뢰인이었다.
이제 윤필은 다른 의뢰인은 제쳐두고, 김미에게 매달리기 시작한다. 나중에 가서는 그게 직업적인 목적에서인지 개인적인 감정때문인지 헷갈릴만큼.

"다른 이들의 외로움에는 제각기 해결 방법이 있어요. 속내를 털어놓을 곳이 필요했던 사람은 친구가 생기면 나아져요. 사랑이 필요했던 사람은 연인을 만들면 회복되고요. 개인이 느끼는 고독이란 말할 곳과 기댈 곳, 약해지고픈 곳의 부재에서 비롯되니까요. 맨 처음 제 외로움을 없애지 못할 거라고 말씀드린 것도 그래서였어요. 제가 가진 병은 저런 임시방편들로 치료할 수 없기 때문에. p93"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롭다. 친구가 없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연인이 없어서, 등등등의 이유로.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다. 친구가 많아도, 늘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연인이 있어도, 결혼을 했어도, 아이가 있어도 사람들은 외롭다는 걸.

이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외로움'과 '외로움 살해'라는 주제는 공감되고 흥미로우면서도 그 범위가 제한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동시에 남는다. 또 한가지, 그 외로움을 살해해 가는 과정이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뻗어나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는 아쉬움.

윤필은 김미의 외로움을 살해하기 위해, 데이트를 하고, 함께 집에가고, 찾아가고, 만난다. 그러나 결국 그녀의 외로움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럼 윤필은 어떻게 되었을까. 외로움을 살해하지 못하는 외로움 살해자는. (소설을 읽고 확인하시길 권한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외로움이 물러가고 고통이 덜해지고, 인간적인 감정을 되찾은 다음에는? 제가 정상으로 돌아온대도 절 외롭게 만든 현실은 바뀌지 않아요. 아빠는 나와 엄마 주위를 맴도는 그대로에, 엄마는 여전히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을 시도하겠죠. 외로움과 함께 내 외로움 살해자가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과연 나는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 결국 지금보다 더 외로워지고 말 텐데."p328

"어디에나 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대체품이 존재함을 의미하죠. 미는 항상 곁을 지키지만, 그 미가 꼭 나일 필요는 없어요. 아마 내 외로움의 이유도 같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엄마에게는 아빠가 있었고, 아빠에게는 딸이 아닌 여자가 있었고, 내가 사랑했던 이들에게는 나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늘 많았으니까. 어쩌면 인간은 타인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기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가는지도 몰라요."p437

'외로움'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타인을 기준으로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움은 결국 '내'가 아닌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외로움이 기인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자신으로서의 온전한 주체가 되지 못한 사회에서 자신의 외로움조차 대리 된 외로움인 건 아닌지.

이제 '나 외로워' 라는 말을 쉽게 내뱉지 못할 것만 같아.  이거 좀 외로워지는 소설이잖아.

소설의 내용과 상관없이 조금 덧붙이자면,
이 소설의 작가 윤재성의 프로필이 낯설었다. 신춘문예 당선이든, 문예지 당선이든, 작품집을 내는 작가의 프로필엔 비슷비슷한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 작가에겐 대한민국전자출판대상 장려상 이라는 경력이 전부다. 저자는 소설을 직접 출판사에 투고하고 끊임없이 출판사에 자신의 작품을 읽었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고백하자면, 작가의 말에 나는 조금 감동받았다.
'내 첫 꿈이 출간이었다면 두 번째 꿈은 서점 판매대에서 한 달을 버티는 것이었다. 세 번째 꿈은 계속해서 소설가로서 글을 쓰는 것이고.'
세번 째 꿈 꼭 이루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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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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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작가의 말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설집의 맨 앞 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아무도 아닌, 을 사람들은 자꾸 아무것도 아닌,으로 읽는다.'

아무도 아닌,이라고 말 할때와 아무것도 아닌, 으로 말 할 때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후자 쪽이 훨씬 더 쓸쓸하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읽히거나 들리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 나를 향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때면 조금 더 쓸쓸해진다.

나는 누구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까, 혹은 당신은 누구의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까,라고 속절없이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황정은의 소설을 읽을 때면 읽기 전,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다. 쓸쓸해질 준비. 멍해질 준비. 아파도 그냥 아프구나, 하고 다음 페이지를 넘길 준비.

전 작 장편,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고 한동안 멍했던 그 여운이 갑자기 되살아났다.
이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을 읽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음을 미리 적어야겠다.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듯하거나, 별일 아닌 것 같거나, 그리 슬프지 않은 이야기들 같거나, 평범하게 읽히는 문장들이었음에도 다 읽고 난 뒤엔 역시나 어딘가 개운치가 않다. 어딘가 자꾸 찌릿거린다. 그게 내가 황정은의 작품을 계속 읽는 이유이기도 하고, 읽기를 두려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주변에서 마주칠 수도 있을 것 같이 평범하다.
그런데 오히려 그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인들이 자꾸 걸린다. 그들은 아프거나, 아팠거나, 죽었거나, 곧 죽을 것이다. 그들은 떠나거나, 버리거나, 화내거나, 슬프다.
그들 주변에서 화자는 오히려 담담하게 그 상황들을 지나쳐(건너) 간다.
떠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아픈 이들을 어느 정도는 모른척하고, 남겨지는 것도 그대로  그냥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담담해서 슬픈,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헤어짐에 울부짖지도, 미련을 떨지도 않는데 그냥 왜 헤어졌을까,를 조용히 읊조리는데 왜 그게 더 슬픈지 자꾸 이야기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호재와는 그 뒤로도 계속 만나다가 서로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밤 영화관 앞에서 말다툼을 했는데 호재는 영화 티켓과 나를 내버려 둔 채 뒤돌아 가버렸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중략) 호재는 이제 어디에 있을까, 잠버릇은 여전할까. 그 잠버릇을 알아채줄 여자친구를 사귀었을까. 특별히 내게 못해준 것도 아닌데, 호재가 다음 여자친구에겐 더 잘해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중략)햇빛이 가장 좋은 순간에도 나는 여기 머물고 시간은 그런 방식으로 다 갈 것이다. 다시는 연애를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회를 더는 상상할 수 없었다.p47-48(양의 미래) 중에서'

'나는 오래전에 제희와 헤어졌다. 수목원 나들이가 있고 이 년쯤 지나 시점이었을 것이다.  헤어질 무렵엔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모르겠다. 무슨 계기로 헤어지게 되었는지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중략) 나는 지금 다른 사람과 살고 있다. (중략) 어째서 제희가 아닌가. 그럴 땐 버려졌다는 생각에 외로워진다. 제희와 제희네. 무뚝뚝해보이고 다소간 지쳤지만, 상냥한 사람들에게. p86-87 (상류엔 맹금류) 중에서'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대해 말 할 때도, 밥 먹었니, 라고 묻는 것처럼 가벼워서 오히려 듣는 사람이 흠칫 거리게 된다.

' 어머니가 이제 죽었으면 좋겠어. 아버지도. 이런 이야기를 내가 했을까, 내가 정말로 했을까. 둘 가운데 어느 이야기를 했고 어느 것을 하지 않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둘 다를 하지는 않았어도 둘 가운데 하나는 했을 것이다.p45-46(양의 미래) 중에서'

'그녀는 생각했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끝나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것, 너와 내가 죽은 뒤에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위안이 되나.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죽어서, 실리를 만날 것이다. 실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실리는 죽었지만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어떤 것, 어떤 상태로든 남아 있을 테고 내가 죽은 뒤 실리와 나는 서로 그런 상태로, 그런 상태로라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 세계가 있을 것이고 그런 세계에 실리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상상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그러나 없다. 없다.  점차로 없고 점차로 사라져가는 것이 있다. 그뿐이다. p105(명실) 중에서'

계속 소설 속 화자들를을 졸졸 쫓아다니다 보면, '아무도 아닌' 사람은 없다.
없는 듯 보이지만 있고, 곧 떠나려 하지만 역시 있다. 아직은. 그리고 그들은 아무도가 아니라 누군가이다. 누군가의 ... 이라는 말을 자꾸 붙여 주고 싶어졌다.

그리고 슬쩍, 자꾸 화자들에게 속삭이고 싶어지는 것이다. " 이봐, 좀 웃으라구. 이봐, 좀 편하게 살라구. 이봐 좀, 다정해지면 안되겠어?" 이렇게 말이다.

그러기엔 이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매섭다. 이 소설들이 씌여지고 발표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소설보다 더 잔인한 현실을 건너오면서 그 시간들이 오롯이 작가의 몸에 새겨져 다시 소설로, 화자에게로 옮겨져 간 듯 느껴진다.

上行 _009
양의 미래 _037
상류엔 맹금류 _063
명실 _089
누가 _113
누구도 가본 적 없는 _137
웃는 남자 _163
복경 _187

여덟 편의 소설을 읽는 일도, 다 읽은 뒤에 무심히 덮어버리는 일도 쉽지 않다.
묘한 작가다. 묘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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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있으시죠? - 김제동과 나, 우리들의 이야기
김제동 지음 / 나무의마음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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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떠나서 우리, 서로의 상처와 두려움을 함께 치유해나갈 수 있고, 우리 각자가 그런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약한 점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실제로는 훨씬 더 강해진다는 것. 그런 생각을 한번쯤 마음에 새겨보면 굉장히 마음이 편해질 때가 있더라고요.
여러분, 가끔 마음이 약해져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드러내고 활짝 웃으면서 오늘 하루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p252-253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결국, '우리모두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 그 바람이 이 사람 김제동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싶다.
나만 행복한 거 말고, 나도 너도 행복하고, 옆집 아이도 행복하고, 윗집 할머니도 길 건너 슈퍼 아줌마도 모두 공평하게 행복한 사회를 바라는 사람. 그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으로, 위로로 따뜻하게 감싸주는 고맙고 고마운 사람.

저는 사람들이 웃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제 인생 목표는 모두가 함께 웃는 거에요. 그래서 지금 웃을 수 없는 분들, 공정하지 못하고 불합리한 사회문제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도 웃음을 드리고 싶어요.p6


"살면서 김제동씨에게 고마운 일이 많았어요.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많을 거에요." 라고 어느 택시기사님이 하신 말씀이 굉장히 고맙고 울컥했다는 사람.

우린 그 말을 수없이 하고 또 하고 있다. 참 고마운 사람. 어두운 곳, 힘든 곳, 아픈 곳, 이곳저곳에 닿는 희망의 목소리 만으로도 사람들은 위로받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냥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책 속에서도 마이크를 잡고 웃으며 그가 전하는 말들이 그대로 전달 되는 듯 해서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책은 선물하기 힘든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각자의 취향이 있기 때문에 내가 좋다고 무작정 권하기 어려운 느낌때문에. 그럼에도 이 책은 누군가에게 꼭 선물하고 싶다. 누구에게나 한 마디 위로는 필요하니까. 누구에게나 따뜻한 공감은 중요하니까.



- 여러분도 가끔 그러는지 모르겠는데요. 저는 앞으로도 가끔 실수를 저지르고, 가끔 수치스러운 일도 하면서 살겠지만 될 수 있으면 저를 그렇게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고 용서해주는 일도 자주 하려고 합니다. 실수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을 테니까요. p109

- 내 마음 안에 게스트하우스가 하나 있는데, 아침에는 행복이 와서 놀다 가고 저녁에는 우울함이 와서 놀다 간다고 생각하면 맞을 것 같아요. 우울하거나 충동적인 감정이 들어오더라도 영원히 사는 게 아니라 머물다 가는 것이니까, 머물 수 있을 때까지 머물다 가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요?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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