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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야. - 단원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쓰인 육성 생일시 모음
곽수인 외 33명 지음 / 난다 / 2015년 12월
평점 :
곽수인, 구태민, 권지혜, 길채원, 김건우, 김동영, 김수정, 김승태, 김승환, 김제훈, 김주아
김혜선, 김호연, 박성호, 박정슬, 선우진, 심장영, 안주현, 안중근, 양온유, 오경미, 유예은
이건계, 이단비, 이영만, 이지민, 이창현, 이태민, 임경빈, 전하영, 정다혜, 정차웅, 최성호
홍순영
아이들의 이름을 나지막히 불러본다.
한 명 한 명 소중하게.
더 많은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이 책에 실린 아이들의 이름조차 이제 처음 불러준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조차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그래도 그 말밖에 할 수 없어서 또 미안해.
이 책 《엄마, 나야》에 실린 서른 네 편의 시는 서른 네 명의 아이들이 말하고 시인들이 받아 적은 아이들의 이야기다. 아이들이 지은 시다.
이 책을 읽을 때, 여섯 살 된 나의 아이는 내 옆에서 종알거리며 '엄마, 엄마'를 쉬지 않고 불러댔다.
아이를 보다가, 시들을 읽다가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울컥,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이가 부르는 '엄마'라는 소리가 얼마나 애틋하고 고마운지 나는 다시 한 번 느끼고 만다.
아이가 짜증내고, 보채고, 울음을 터트리는 일이, 매일같이 사소한 일로 다투고 매일같이 화해하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느낀다.
'엄마, 사랑해'라고 말하며 안아주는 아이의 품이 얼마나 따뜻하고, 아이를 안아줄 수 있는 일이 얼마나 감사한 지, 영문도 모르는 아이를 안고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하고 수없이 말해 주었다.
그리고 또 다시 미안해.
아이들의 생일파티에서 가족, 친구들이 모여 함께 이 시들을 낭송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얼마나 눈물을 흘릴지, 그러다 아이와의 추억을 나누며 몇 번쯤은 웃기도 할테고, 다시 그리워서 서로 안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까.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를 보니, 살아남은 아이들은 떠난 아이들의 부모를 만나는 일이 죄송스럽고 어려워하지만, 남겨진 부모들은 친구들이 찾아와 아이와의 추억을 이야기해 주면 위로 받는다고 한다. 아마도 엄마지만, 아빠지만 몰랐던 나의 아이에 대한 소중한 이야기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아이가 옆에 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상상할 수 없는 아픔, 상상할 수 없는 그리움이다.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대체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 것만 같다. 잊지 않고.
- 별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날에는
햇빛이 볼에 따끔따끔 부딪히는 날에는
달이 동그란 눈을 찡끗거리는 날에는
비가 부슬부슬 이마를 가만히 쓰다듬는 날에는
바람이 상쾌하게 코끝을 스쳐지나가는 날에는
어김없이 내가 노는 시간이야
그러니까 무슨 말이냐면 나는 잘 있어, 라는 신호야.
<그리운 목소리로 주아가 말하고, 시인 유현아가 받아 적다>
- 내가 잠시 다른 곳에 와 있다고 해서
우리의 깊은 사랑이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나의 엄마가 보여주었으면 해.
엄마가 아픔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버텨줘서
이 특별한 생일을
아빠와 동생과 친구들과 함께 기억해줬음 좋겠어.
보고 싶을 때 모두 모여서 마음을 만지면
새로운 사랑이 시작된다는 것을.
슬픔도 눈물도 다 녹아서 가장 아름다운 영혼으로
내가 곁에 있을 거라는 것을.
알지, 엄마.
엄마가 지금보다 더 더 더 건강해져야 한다는 것.
더 더 더 씩씩해져야 한다는 것.
<그리운 목소리로 채원이가 말하고, 시인 이영주가 받아 적다>
- 조금 울 수도 있겠지만
슬퍼서는 아닐 거야
기뻐서도 아닐 거야
충분해서,
충분해서 울게 될 거야
아빠
나 보고 싶어 뒤척일 수도 있겠지만
노래 불러요
부르고 나면
나 만난 것처럼
나 만진 것처럼
괜찮아질 거에요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따끔거리는 내 사람들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니까
괜찮을 거야
<그리운 목소리로 온유가 말하고, 시인 박연준이 받아 적다>
- 지금은 손에 닿지는 않는 곳에 있지만
서로 얼굴을 만질 수 없는 곳에 있지만
모두들 너무 걱정 마세요.
저는 하늘 높이 올라서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고 흙이 되어
여러분 곁에 있을게요.
늘 다니던 동네 슈퍼, 운동장, 학원 근처에서
생생하게 웃으며 안녕, 하고 인사할게요.
<그리운 목소리로 순영이가 말하고, 시안 신미나가 받아 적다>
- 엄마와 아빠와 누나와 친구들이 나를 기억해주는 동안 나는아직 살아 있는 거예요.
기억하는 게 사랑하는 거예요.
기억하는 게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도 바람으로 다가가고 별빛으로 반짝이며 있을게요.엄마가 제 가슴에 새겨준 문자처럼 사랑해요 많이많이 사랑해요.내가 드릴 수 있는 마지막 말
엄마, 아빠, 누나 사랑해요.
<그리운 목소리로 건계가 말하고, 시인 도종환이 받아 적다>
-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어마 마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그리운 목소리로 예은이가 말하고, 시인 진은영이 받아 적다>
적으면서 다시 읽고, 읽으면서 다시 울고, 울면서 다시 미안해 하고.
오래도록 이 아이들에게 미안한 이 마음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그것 뿐이라서 또 미안하다고 말 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