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살해자
윤재성 지음 / 들녘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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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외로워요. 저무는 태양 밑에서 외롭고, 뜬 달 아래 또다시 외로워요. 내 외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조차 그 의미가 희속될까 입을다물 만큼 외로워요. 하루에도 몇 번씩 숨이 턱턱 막혀요. 누군가 주기적으로 심장을 움켜쥐었다 펴길 반복하는 것처럼.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있다고 잦아들지도 않아요. 이건 천식 환자의 호흡곤란 같은 거예요. 찾아올 때마다 속절없이 호흡기부터 물어야 하는."p92


" 전 언제나 혼자고, 그건 변하지 않아요.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으로 외로움이 사라진다면 밤마다 홈파티를 열었겠죠. 인간이 갖는 질량은 존재의 고독을 달래주지 못해요. "p93

저는 외로워요.
이 문장을 여러번 소리나게 읽어본다. 아주 조용하게. 혼자만 들릴듯한 목소리로.
저는, 외로워요. 라고도 읽었다가 저는...... 외로워요. 라고도 읽었다가 저는외로워요.라고도 읽어본다.
외롭다는 단어가 퍼지는 속도와 질감을 가늠할 수가 없다.
가끔 나는 이렇게 말했던가. 나. 외로워. 라고.

이 소설 《외로움 살해자》는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과 그들의 외로움을 죽여주는 말그대로 '외로움살해자'들의 이야기다.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의뢰를 하면 외로움 살해자들은 그들의 매뉴얼과 방식으로 의뢰인의 외로움을 살해한다.

보이지 않는 감정을 살해하는 일이 가능할까. 우선 '외롭다'라는 감정을 느끼는 이들이 그 감정의 실체가 '외로움'이라는 걸  어떻게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의뢰인 김미는 자신의 외로움이 살해될 수 있다는 걸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러번 외로움살해자에게 자신의 외로움을 죽여달라고 의뢰한다.
"전 아직도 제 외로움을 누군가 죽일 수 있다고 믿지 않아요."
"그럼 어째서 절 부르셨습니까?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다면서요."
"외로웠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들처럼 외로웠다, 는 말에  잠시 책장 넘기는 걸 멈추고  상상해본다. 누구나 외롭다는 전제가 깔린 말, 그렇지만 누구나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는 말, 그러니 자신의 외로움을 죽일 순 없지만 최소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희망, 희망, 희망.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꾸 생각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길게 꼬리를 내밀게 된다.
공감이 되면서도, 설마 싶고, 그럴 수도 있겠지 싶다가도 에이 그럴리가, 싶어진다.
한가지 분명한 건, '외로움 살해'라는 소설의 주제가 충분히 흥미로웠다는 점이다. 그래서 계속 읽게 된다. 궁금해져서.

외로움살해자가 의뢰인의 외로움에 전염되는 순간, 그들은 직업을 잃게 된다. 의뢰인보다 훨씬 혹독한 외로움을 겪거나, 정신병을 얻거나, 사라진다.

김미의 외로움 살해자였던 윤필은 업계에선 알아주는 '외로움 살해자'였다. 그는 의뢰인의 외로움을 살해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실패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도 김미는 쉽지 않은 의뢰인이었다.
이제 윤필은 다른 의뢰인은 제쳐두고, 김미에게 매달리기 시작한다. 나중에 가서는 그게 직업적인 목적에서인지 개인적인 감정때문인지 헷갈릴만큼.

"다른 이들의 외로움에는 제각기 해결 방법이 있어요. 속내를 털어놓을 곳이 필요했던 사람은 친구가 생기면 나아져요. 사랑이 필요했던 사람은 연인을 만들면 회복되고요. 개인이 느끼는 고독이란 말할 곳과 기댈 곳, 약해지고픈 곳의 부재에서 비롯되니까요. 맨 처음 제 외로움을 없애지 못할 거라고 말씀드린 것도 그래서였어요. 제가 가진 병은 저런 임시방편들로 치료할 수 없기 때문에. p93"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롭다. 친구가 없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연인이 없어서, 등등등의 이유로.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다. 친구가 많아도, 늘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연인이 있어도, 결혼을 했어도, 아이가 있어도 사람들은 외롭다는 걸.

이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외로움'과 '외로움 살해'라는 주제는 공감되고 흥미로우면서도 그 범위가 제한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동시에 남는다. 또 한가지, 그 외로움을 살해해 가는 과정이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뻗어나가지는 못했던 것 같다는 아쉬움.

윤필은 김미의 외로움을 살해하기 위해, 데이트를 하고, 함께 집에가고, 찾아가고, 만난다. 그러나 결국 그녀의 외로움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럼 윤필은 어떻게 되었을까. 외로움을 살해하지 못하는 외로움 살해자는. (소설을 읽고 확인하시길 권한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외로움이 물러가고 고통이 덜해지고, 인간적인 감정을 되찾은 다음에는? 제가 정상으로 돌아온대도 절 외롭게 만든 현실은 바뀌지 않아요. 아빠는 나와 엄마 주위를 맴도는 그대로에, 엄마는 여전히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을 시도하겠죠. 외로움과 함께 내 외로움 살해자가 사라져버린 세상에서, 과연 나는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요. 결국 지금보다 더 외로워지고 말 텐데."p328

"어디에나 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대체품이 존재함을 의미하죠. 미는 항상 곁을 지키지만, 그 미가 꼭 나일 필요는 없어요. 아마 내 외로움의 이유도 같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엄마에게는 아빠가 있었고, 아빠에게는 딸이 아닌 여자가 있었고, 내가 사랑했던 이들에게는 나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늘 많았으니까. 어쩌면 인간은 타인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기 위해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가는지도 몰라요."p437

'외로움'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타인을 기준으로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움은 결국 '내'가 아닌 '타인'으로부터 자신의 외로움이 기인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자신으로서의 온전한 주체가 되지 못한 사회에서 자신의 외로움조차 대리 된 외로움인 건 아닌지.

이제 '나 외로워' 라는 말을 쉽게 내뱉지 못할 것만 같아.  이거 좀 외로워지는 소설이잖아.

소설의 내용과 상관없이 조금 덧붙이자면,
이 소설의 작가 윤재성의 프로필이 낯설었다. 신춘문예 당선이든, 문예지 당선이든, 작품집을 내는 작가의 프로필엔 비슷비슷한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 작가에겐 대한민국전자출판대상 장려상 이라는 경력이 전부다. 저자는 소설을 직접 출판사에 투고하고 끊임없이 출판사에 자신의 작품을 읽었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고백하자면, 작가의 말에 나는 조금 감동받았다.
'내 첫 꿈이 출간이었다면 두 번째 꿈은 서점 판매대에서 한 달을 버티는 것이었다. 세 번째 꿈은 계속해서 소설가로서 글을 쓰는 것이고.'
세번 째 꿈 꼭 이루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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