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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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작가의 말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설집의 맨 앞 페이지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아무도 아닌, 을 사람들은 자꾸 아무것도 아닌,으로 읽는다.'

아무도 아닌,이라고 말 할때와 아무것도 아닌, 으로 말 할 때의 느낌이 사뭇 다르다.
후자 쪽이 훨씬 더 쓸쓸하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읽히거나 들리기 때문이다. 마치 누군가 나를 향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럴 때면 조금 더 쓸쓸해진다.

나는 누구의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까, 혹은 당신은 누구의 아무것도 아닌 사람입니까,라고 속절없이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황정은의 소설을 읽을 때면 읽기 전, 충분히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다. 쓸쓸해질 준비. 멍해질 준비. 아파도 그냥 아프구나, 하고 다음 페이지를 넘길 준비.

전 작 장편,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고 한동안 멍했던 그 여운이 갑자기 되살아났다.
이 소설집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을 읽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음을 미리 적어야겠다.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듯하거나, 별일 아닌 것 같거나, 그리 슬프지 않은 이야기들 같거나, 평범하게 읽히는 문장들이었음에도 다 읽고 난 뒤엔 역시나 어딘가 개운치가 않다. 어딘가 자꾸 찌릿거린다. 그게 내가 황정은의 작품을 계속 읽는 이유이기도 하고, 읽기를 두려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소설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주변에서 마주칠 수도 있을 것 같이 평범하다.
그런데 오히려 그 주인공을 둘러싼 주변인들이 자꾸 걸린다. 그들은 아프거나, 아팠거나, 죽었거나, 곧 죽을 것이다. 그들은 떠나거나, 버리거나, 화내거나, 슬프다.
그들 주변에서 화자는 오히려 담담하게 그 상황들을 지나쳐(건너) 간다.
떠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아픈 이들을 어느 정도는 모른척하고, 남겨지는 것도 그대로  그냥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담담해서 슬픈,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헤어짐에 울부짖지도, 미련을 떨지도 않는데 그냥 왜 헤어졌을까,를 조용히 읊조리는데 왜 그게 더 슬픈지 자꾸 이야기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호재와는 그 뒤로도 계속 만나다가 서로 연락하지 않게 되었다. 어느 밤 영화관 앞에서 말다툼을 했는데 호재는 영화 티켓과 나를 내버려 둔 채 뒤돌아 가버렸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중략) 호재는 이제 어디에 있을까, 잠버릇은 여전할까. 그 잠버릇을 알아채줄 여자친구를 사귀었을까. 특별히 내게 못해준 것도 아닌데, 호재가 다음 여자친구에겐 더 잘해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중략)햇빛이 가장 좋은 순간에도 나는 여기 머물고 시간은 그런 방식으로 다 갈 것이다. 다시는 연애를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기회를 더는 상상할 수 없었다.p47-48(양의 미래) 중에서'

'나는 오래전에 제희와 헤어졌다. 수목원 나들이가 있고 이 년쯤 지나 시점이었을 것이다.  헤어질 무렵엔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모르겠다. 무슨 계기로 헤어지게 되었는지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중략) 나는 지금 다른 사람과 살고 있다. (중략) 어째서 제희가 아닌가. 그럴 땐 버려졌다는 생각에 외로워진다. 제희와 제희네. 무뚝뚝해보이고 다소간 지쳤지만, 상냥한 사람들에게. p86-87 (상류엔 맹금류) 중에서'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대해 말 할 때도, 밥 먹었니, 라고 묻는 것처럼 가벼워서 오히려 듣는 사람이 흠칫 거리게 된다.

' 어머니가 이제 죽었으면 좋겠어. 아버지도. 이런 이야기를 내가 했을까, 내가 정말로 했을까. 둘 가운데 어느 이야기를 했고 어느 것을 하지 않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둘 다를 하지는 않았어도 둘 가운데 하나는 했을 것이다.p45-46(양의 미래) 중에서'

'그녀는 생각했다. 사람이 죽은 뒤에도 끝나지 않는 뭔가가 있다는 것, 너와 내가 죽은 뒤에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은 얼마나 위안이 되나.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죽어서, 실리를 만날 것이다. 실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실리는 죽었지만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어떤 것, 어떤 상태로든 남아 있을 테고 내가 죽은 뒤 실리와 나는 서로 그런 상태로, 그런 상태로라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런 세계가 있을 것이고 그런 세계에 실리가 있을 것이다. 이런 상상은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그러나 없다. 없다.  점차로 없고 점차로 사라져가는 것이 있다. 그뿐이다. p105(명실) 중에서'

계속 소설 속 화자들를을 졸졸 쫓아다니다 보면, '아무도 아닌' 사람은 없다.
없는 듯 보이지만 있고, 곧 떠나려 하지만 역시 있다. 아직은. 그리고 그들은 아무도가 아니라 누군가이다. 누군가의 ... 이라는 말을 자꾸 붙여 주고 싶어졌다.

그리고 슬쩍, 자꾸 화자들에게 속삭이고 싶어지는 것이다. " 이봐, 좀 웃으라구. 이봐, 좀 편하게 살라구. 이봐 좀, 다정해지면 안되겠어?" 이렇게 말이다.

그러기엔 이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매섭다. 이 소설들이 씌여지고 발표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소설보다 더 잔인한 현실을 건너오면서 그 시간들이 오롯이 작가의 몸에 새겨져 다시 소설로, 화자에게로 옮겨져 간 듯 느껴진다.

上行 _009
양의 미래 _037
상류엔 맹금류 _063
명실 _089
누가 _113
누구도 가본 적 없는 _137
웃는 남자 _163
복경 _187

여덟 편의 소설을 읽는 일도, 다 읽은 뒤에 무심히 덮어버리는 일도 쉽지 않다.
묘한 작가다. 묘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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