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딩, 턴
서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월
평점 :
품절


-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거 같아서.
- 살다 보면 이런 때도 있는 거지, 뭐. 다들 깨 볶으면서 사는 거 아니야. p17

싸우고, 감정 다치고, 추스르고, 사과하는 법에 서툴러서 내 연애는 늘 소극적이었다.
어지간하면 상대에게 맞춰주면서 별거 아냐, 이 정도쯤은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했던 것 같다.
내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면 상대방이 화를 낼까 봐, 혹은 헤어지게 될까 봐 때론 두려워했던 것도 같다.

그래봐야 고작 십 대 시절의 풋풋했던 연애 한 번에, 이십 대에 짧은 연애 한 번과 지금 신랑과 한 7년간의 연애 세 번의 연애가 전부지만 연애를 통해 나를 많이 알게 된 건 사실이다.

신랑과 긴 연애가 가능했던 이유는 서로 그 감정싸움을 할 필요가 없어서였던 것 같다.
내가 굳이 맞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대부분 맞았고, 서로 같이 있지만 따로 있는 것처럼 자유로웠다.
만약, 그때 우리가 헤어졌다면 나는 이런 이유를 댔을지도 모르겠다.
"너무 날 자유롭게 두니까, 날 사랑하지 않는 거 같아서."

결혼을 하고 난 뒤에, 그게 얼마나 서로에게 장점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
사내 연애에, 결혼하고 나서도 같은 직장에 다니는지라 서로 손바닥 안일 수밖에 없는 생활 반경.
그나마 부서가 다른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결혼 이후 내가 지금까지 꼭 지키는 게 하나 있다면, 같은 직장이라도 어지간하면 퇴근 후에 직장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 신랑이 퇴근 후가 갖는 술자리엔 잘 아는 동료들이라고 해도 같이 합석하지 않는 것. 술자리에 누가 함께 했는지 뭘 했는지 묻지 않는 것.

 

서유미 작가의 <<홀딩, 턴>>을 읽으면서 결혼에 대해, 결혼한 부부에 대해, 그 관계들에 대해 자연스럽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소설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소소한 갈등을 겪고, 별거를 하고, 이혼을 결심하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도박을 하거나 큰 빚을 지거나 폭력을 휘두르거나 엄청난 시집살이에 괴로워 헤어지는 부부들도 많겠지만 어떤 부부들은 정말 사소한 것들로 헤어짐을 결심할 수도 있겠구나.
같이 있는 게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거나, 남자가(여자가) 싫증이 났거나, 혼자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거나 하는.
그런데, 그런 사소한 이유로 헤어진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 다들 그렇게 살아. 별거 없어. 그니까 그냥 어지간하면 그냥 살아."라고.

- 사는 게 이런 건가. 다들 이렇게 사나. 둘러보게 되더라.
   어쩌다 한번 싸우는 게 아니라 가끔 화해하며 사는 사람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원수가 되거나 한집에 살면서 같이 밥을 먹는데 서로에게 가장 냉소적인 사람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한 번쯤은 꽉 막힌 수챗구멍을 뚫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섣불리 덤볐다가 역류해서 바닥이 지저분해지고 옷이 다 젖을까 봐 겁이 났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해 가고 싶었다.
- 네가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천천히 해나가고 싶었어.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p44

누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나, 피하고 싶은 순간을 마주할 때 때론 오히려 더 담담해지기도 한다.

소설 속 남자와 여자는 너무 현실적이어서 아릿했다. 작가는 이별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쓰고 나니 사랑 이야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소설을  읽는 내내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도, 이별도 때론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니까.

잘 지내는 것 같던 연인이나 부부의 관계가 깨질 때 상대의 불륜이나 변심, 파산, 폭력, 중독은 선명한 파경의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로 명명하기 어려운 이유들이 자잘하게 집 여기저기에 곰팡이처럼 번져버린 경우도 있다. 볼 때마다 닦고 주기적으로 꺼내서 말리는데도 은밀하고 깊숙하게 번져나간 곰팡이를 목격할 때면 어느 순간 맥이 탁 풀리며 손을 놓고 싶어진다. 곰팡이가 관계를 삼켜버리는 것이다. p47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만 알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는 부부에게도 건드릴 수 없는 약한 부분이 있을 테고, 진짜 맞지 않아 보이는 부부 사이에도 그들만의 접점이 되는 맞는 부분이 분명 있겠지.
타인의 이야기를 쉽게 하거나, 타인의 상황을 쉽게 이해한다고 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알지 못하는 영역 때문이 아닐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나는 혼자 헤어지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결혼 4년 차쯤.
육아도 혼자 하는 거 같고, 외로운 거 같고, 자존감이 낮아지는 것 같았다.
싸움도 없었고,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도 없었다.
대신 대화가 줄었고,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지금은 잘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나도 그랬을까.
- 사는 거 다 비슷비슷하겠지. 그래도 우린 나쁜 건 아니잖아.

이별이나 이혼에 대해 말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은지 알 수 없었다.
지원은 빈 머그잔을 꼭 쥐었다. 이혼 문제를 이렇게 쉽게 결정해도 되나, 하는 염려와 고민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같이 있는 게 힘들고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면 헤어지는 게 맞지, 하는 체념이 동시에 들었다. 이 합의가 드레스와 턱시도를 차려입은 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고 평생 함께 하겠노라 선언하던 그 장면을 훼손하는 거라고 여기지 않기로 했다. 결혼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면서 행복해지려고 했던 거라면 이혼에 대한 고민도 앞으로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당사자인 두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합의하는 순간 타당한 일이 된다. 물론 이유를 불문하고 지원이 이혼했대. 누군가 말하고 옮길 때 부정적인 궁금증과 억측, 짐작을 몰고 오리라는 건 뻔했다. 다른 사람의 이혼 호식을 접했을 대 지원도 그랬으니까. 입방아에 오르거나 안됐다는 시선을 받을 걸 알면서도 그 일에 과감히 뛰어들려고 하는 건 그러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해서다. 남은 날을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삶의 방향을 바꾸려는 것이다.
- 네가 잘해보려 했던 거 알고 나도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 미안하다, 이렇게 돼서.
영진은 두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 나도 미안해. 결국 이렇게 돼서. p147-148

적어도, 남은 날을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행복하지 않은 지금 이별을 고하는 사람들은 용기 있는 사람들.
아이 때문에, 부모 때문에, 시선 때문에 조금 덜 행복한 쪽을 찾는 많은 사람들보다는(물론, 현실에서는 그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이런 소설이 있어서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정의하거나, 긴박한 스토리가 아니더라도 소소하게 마치 일상을 그리듯 이야기해 주는 소설.
그래서 지금의 자신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소설.

-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 같은데 꼭 해어져야 해?
그 질문들은 그동안 지원이 이별한 사람들에게 던졌던 것이라는 점에서 예측 가능했다. 그 입장이 돼보니 말의 온도가 달랐지만 돌려받을 차례가 된 거라고 생각하면 야속하거나 섭섭하지 않았다.
살다 보니 누군가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러서 신뢰가 깨지고 그 때문에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부수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서로 죽일 듯이 싸워야만 헤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대화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로의 뒷모습을 보며 적의가 담긴 눈길을 쏘아대는 순간 헤어짐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p229

사랑도, 이별도 거창한 게 아니라는 것. 그러니 너무 겁먹지 말자는 다독임. 위로. 공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동안 내가 얼마나 가볍고, 잘 읽히고, 단번에 이해가 되는 소설들만 읽어왔는지 갑자기 깨달았다.
이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읽으면서.

책을 읽어나가는 속도가 더뎠다. 읽다가 다시 앞으로, 다시 앞으로 여러 번 되돌아가야 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바를, 소설의 맥락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조금 벅찼다.
다 읽고 난 뒤에는 '아, 드디어 다 읽었어' 뭔가 어려운 숙제를 해결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다. 올해는 외국 소설을 좀 더 많이 읽어야겠구나( 왜 이런 결론이 났지 ;;)

 

 어쩌면 나는 지금도 이 소설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에게 남은 상실과, 그 상실을 애도하는 과정을 조용히 따라갔던 것 같다. 그런데 조용히 따라만 가기에는 장면, 장면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그려질 만큼 툭 튀어 나오기도 했고, '흡' 숨을 멈추게 만드는 장면들이 보이기도 했다.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아꼈던 이들을 죽음 이후 남겨진 이들.
사랑하는 이들은 없지만 남겨진 자신은 남아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현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앞에서 꾸역꾸역 남아 있는 날들을 살아내는 이들에게 진정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1부 집을 잃다
2부 집으로
3부 집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는 이야기는 각기 시대도 배경도 다르지만 마치 한편의 소설처럼 만난다.

나는 책을 덮었지만, 아직 온전히 덮지 못했다.
어쩐지 자꾸 이 소설이 내 등을 두드릴 것만 같다.

한두 달쯤 흐른 뒤에 다시 읽어보고 싶은 소설. 아니 꼭 다시 읽어봐야 할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눈부신 친구 나폴리 4부작 1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부터 이 책을 읽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도서관에서 빌려오기도 했고, 전자책으로 다운로드해 두기도 했고.
번번이 읽어지지가 않았다.

나랑 인연이 없는 책인가 싶기까지.
그러다 우연히, 이웃 블로거에서 이 책(을 포함한 4부작)2017년 읽은 베스트 책 중 하나로 꼽아놓은 걸 보고 또다시 읽도 싶어졌다.

이번엔 직접 구입.
함께 구입한 여러 권의 책을 다 읽고, 마지막으로 다시 책장을 넘겼다.
하루, 이틀 진도가 영 안 나가더니 어느 순간 폭풍 질주가 시작되었다. 결국 지난 새벽 거의 뜬 눈으로 지새며 1권을 다 읽고야 말았다.

인터넷 서점에서 나폴리 4부작 전권을 구입하면 굿즈를 주는 게 있었으나,
과감히 유혹을 물리치고 1권만 구입한 건 잘한 듯. 2권도 있었으면 바로 이어서 읽고 싶었을 것 같다.

계획은 한 달에 한 권씩 4권을 읽는 것.

사족이 길었다.

나폴리 4부작 중 1권인 <<나의 눈부신 친구>>는 릴라와 레누의 유년시절과 사춘기 시절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두 친구의 우정이야기가 시작되는 첫 편.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면 그런 생각을 먼저 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렇게 이야기할 친구가 있나' 하고.

누가 봐도 못된 릴라와 그런 릴라 곁에서 바라보는 레누의 이야기는 어린 여자친구들이 겪는 부러움과, 질투, 사랑과 우정을 적절하게 담고 있다. 물론, 그 당시 시대의 이야기와, 릴라와 레누 주변의 친구들, 가족들의 이야기까지 소설은 지루하지 않게 이어진다.

소설은 레누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나 가정 형편 때문에 공부를 더 이상 하지 못하는 릴라와 공부도 잘하고 인정도 받지만 스스로 릴라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레누.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관계가 질투에 사로잡히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엉망진창이 되기보다는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돈독한 우정을 쌓아간다.
내겐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없다. 우리의 유년기는 폭력으로 가득했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매일매일 별의별 일들이 일어났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인생이 특별하게 기구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고 어쩔 수 없으니까. 우리는 타인의 인생을 힘들게 할 숙명을 타고 태어났고 타인들도 우리 인생을 힘겹게 할 숙명을 타고 태어났다. p40

그들이 지나온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힘겨운 일상이 소설 여기저기에 드러나 있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 내내 그녀들의 우울과, 상실보다 그것을 하나씩 잘 건너가는 눈부신 그녀들이 돋보였다.

릴라의 결혼식 피로연이 끝나가고 있다.
그다음 이어질 그녀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느닷없이 릴라가 물었다.
"내가 잘못하는 걸까?"
"뭘?"
"결혼하는 것 말이야."
"아직도 증인 문제를 생각하는 거야?"
"아니, 올리비에로 선생님을 생각하고 있어. 왜 나를 집에 들여보내지 않은 걸까?"
"그거야 선생님은 성질이 고약한 노인네니까."
욕조에서 반짝이는 물을 바라보면서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넌 공부를 계속하도록 해."
"2년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해. 그러면 끝이지."
"아니, 절대로 멈추지 마. 필요한 돈은 내가 줄게. 넌 항상 공부해야 해."
나는 조그맣게 웃어 보인 후 릴라에게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언젠가는 학교 공부를 마칠 수밖에 없어."
"넌 아니야. 넌 내 눈부신 친구잖아. 너는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사람이 되어야 해. 남녀를 통틀어서 말이야." p4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런던×파리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 - 살며 놀며 배우며 즐긴 조금 긴 여행
김지현 지음 / 성안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달의 시간이 오롯이 주어진다면 난 뭘 할까?
뭘 하고 싶지?

이 책, <<런던×파리에서 아이들과 한 달 살기>>를 읽으면 가장 많이 한 생각이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집안일 걱정 안 해도 되고, 돈 걱정까지 안 해도 된다면......
딱 한 달! 그런 시간이 내게도 주어진다면(상상만으로도 지금 내 입꼬리는 하늘에 닿을 듯 ;;) 말이지, 나는...... 딱 일주일 혼자 여행하고, 남은 3주는 아이와 함께 놀고 싶다.

여행 서적들을 읽고 리뷰하면서 늘 나는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아니 두려워해,라고 적었다.
여전히 그렇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거다.
특히 아이와 둘이? 혹은 태어날 아이까지 셋이 떠나는 여행? 아직은 생각만 해도 으~ 무섭다.

그러니까, 이렇게 대리만족! ... 그러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아, 나도 가고 싶다'라는 충동!

나이 마흔을 앞둔 엄마가 초등학생 아이 둘(여행 당시 초 6, 초1)을 데리고 런던과 파리에서 보낸 한 달!
여기서 방점을 찍을 건, 나이 마흔을 앞둔 엄마일까. 초등학생 아이 둘일까, 런던과 파리일까.
뭐가 제일 대단하게 느껴졌는지 생각해보니, '엄마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떠났다는 것' 그 자체였다.
그게 런던이든, 파리든, 일본이든, 미국이든 다 비슷했을 것 같다. 그냥 놀랍고 대단하다 생각했을 것 같다.

내게도 소소한 꿈은 있다.
아이와 함께 하는 기차 여행 같은 것. 여섯 살이 된 아이는 아직 기차를 한 번도 타보지 못했는데 시간이 되면 기차를 타고 둘이 휙~ 놀러 갔다 오고 싶은 소소한 꿈.
마음만 먹으면 당장 이번 주 주말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건만, 일상에 치인다는 핑계로 미루고만 있다.
그러니, 책을 읽으며 마냥 부러울 수밖에.

「아이들은 분명 여행을 다녀온 후 많이 달라졌다.
여행을 통해 느끼고 표현하고 필요한 것은 스스로 찾아보게 되었으며
생각의 깊이가 더 깊어졌다.
......
매일매일 엄마가 공부 열심히 해라 강요하고 잔소리하는 것이 아닌
아이들 스스로 조금 더 구체적인 꿈을 찾고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은 것, 그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에서 큰 것을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도 도전의 시간이자 힐링의 시간이었고,
재정비의 시간이었다.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고 요리하는 일을 꾸준하게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일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니 마음껏 시간을 내서 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있었고, 또 앞으로 내가 하는 일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었다.
무언가 생가의 전환,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고민에 가득 차 점점 지켜갈 시기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런 내게도
정말 커다란 힐링이 되었다. - '조금 긴 여행을 통해 얻은 것들' 중에서 」

고백하자면,
나는 이런 류(여행에세이)의 책을 읽으면 저자에 대해 먼저 궁금해진다.
'뭐 하는 사람이지? 아마 여유가 있으니까 이렇게 여행도 다니겠지.'같은 내 나름의 편협한 잣대를 여과 없이 들이밀게 되는 것.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저자가 누군지, 뭐 하는 사람인지부터 보기 시작했다.

다 읽고 나서는 어땠을까.
저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냥, 엄마와 아이들만 남았다.
결국, 여행이라는 게 주는 선물은 앞뒤 배경 같은 거 다 빼고 온전히 '나'가 남는 과정이 아닐까.
물론, 적어도 당장 오늘 먹을 걸 걱정하면서 사는 사람에게는 이마저도 사치일 테지만, 읽기도 전에 경험하기도 전에 정해진 틀 안에서만 보게 되는 건 꼭 고치고 싶은 습관.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조금 배운다.

나도, 너도 그냥 같아. 저지르고 봐봐!

떠나기 전엔, 이런저런 고민들로 가득할 테지만 무작정 우선~ 떠나고 나면 좋지 않을까.
그냥 저지르고 나면 말이다.
멀리 떠난다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수 있고, 낯선 환경에 서 있는 자신만 봐도 뭔가 모든 일에 자신감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 그러니 아마 아이들은 그 에너지를 마음에 품고 와 일상생활에서도 여과 없이 행복감을 느낄 것만 같다. 그게 바로 이 가족이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겠지 싶다.

이 책은 여행 실용서에 가깝다.
어찌 보면, "자! 떠나라"라고 동기부여를 하고 난 뒤, 이제 맘을 먹었으면 겁먹지 말고 차근차근 따라 해봐라. 그럼 별것 아니다. 이렇게 알려주는 여행 선배의 주옥같은 조언이랄까.

비행기 티켓 싸게 구입하기, 숙소 정하기, 여행 비용 마련하기, 짐 싸기 같은 떠나긴 전 준비부터
런던과 파리에 도착해서 살아가기(가볼 곳, 교통, 쇼핑 등등)에 대한 팁이 가득 담겨 있다.
런던이고 파리고 어디 있는 나라인지, 거기 뭐가 있는지, 가면 뭘 봐야는 지 정말 초보인 사람도 충분히 따라다닐 수 있을 만큼 쉽게 이야기해주는 것도 좋다.

아이와 함께 떠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듯하다.
아마, 갈까 말까 갈팡질팡 중이었다면 아마 확! 비행기 티켓부터 끊어버릴지도.

부러워만 하다가 망하는 거 아냐?
나도 확! 어디든 질러버릴까?
이 책 덕분에 잠시나마 행복한 고민을 하는 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크류바
박사랑 지음 / 창비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섯 살 딸아이는 스크류바를 애정 한다.
"엄마! 오늘 후식은 스크류바야. 꼭, 알았지?" 이건 아이가 밥 먹기 전 꼭 건네는 말.
나 역시, 오래전부터 빠알갛고, 달콤한, 모양까지 이쁜 그 아이스크림을 애정하고 있었다.
그런, 소설이 나타났다.

빠알갛고 투명한. 붉다는 표현보다 빨갛다고 자꾸 이야기하고 싶은. 소설.
『스크류바』

 처음엔 요즘 나오는 소설책들과 달리 표지가 너무 밋밋한 거 아냐,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보니,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보니, 스크류바에 딱 어울리는 표지이지 싶다.
단언컨대, 이 소설 읽고 나면 분명히 스크류바를 먹고 싶어질 것이다. 먹게 될 것이다(아, 이거 너무 아이스크림 홍보 같은가 ;;)

소설로 돌아와서,
소설집에는 2012년 등단작인 <이야기속으로>,<어제의 콘스탄체>와 함께 표제작인 <스크류바>를 포함해 총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예전엔 단편집을 펴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차례대로 정독을 했다.
하나라도 놓칠까 긴장하고 집중하면서(아마 소설을 공부하던 습관 때문이었던 듯).
그러다 언제부턴가 소설을 소설로 대하기 시작하면서 조금 느슨하게, 마음을 풀어놓고 대하기 시작했다.
때론 제목이 제일 마음에 드는 소설을 먼저 읽었고, 때론 맨 마지막의 작가의 말을 먼저 읽었고, 때론 마음대로 휘릭 펼치다 눈에 띄는 소설을 먼저 읽기도 했다.
작품집에 실린 열 편의 소설 <#권태_이상> , <높이에의 강요>, <스크류바>, <바람의 책>, <이야기 속으로>, <어제의 콘스탄체>, <사자의 침대>, <울음터>, <하우스>, <히어로 열전> 중, 표제작 <스크류바>부터 읽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첫 문장이 있는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스크류바>,<하우스>,<어제의 콘스탄체> 세 편의 소설이 가장 끌렸고, 마음에 들었다.

여러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 소설집을 읽다 보면 작가의 개인적인 습관 같은 걸 눈치채게 되기도 하고(자주 쓰는 단어라든가, 접속사라든가 하는), 작가의 성향(반복되는 주제나 분위기)을 알게 되기도 한다. 가끔은 소설마다 큰 편차를 보이거나 분위기가 너무 달라 낯설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

이 소설집 속에 실려 있는 열 편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느낀 건,
'이 작가, 굉장히 성실할 것 같아'였다. 한 편 한 편 굉장히 정석대로 써 내려갔을 것 같은 느낌.
소설 작법을 오래도록 열심히 공부했을 것 같은 느낌.

<스크류바>
아이와 버스를 타고 가다가 깜박 졸던 사이, 눈을 떠보니 옆자리에 앉아있던 아이가 보이지 않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버스에서 내려 실종신고를 하고, 아이가 내렸을만한 버스정류장을 되짚어가면서 나는 오래전 기억들과, 어릴 적의 경험들, 지금의 자신까지 차근히 서술해 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결혼 6년 만에 생긴 아이였다. 교복을 입은 아이가 스크류바 먹으며 무심히 열쇠를 건네주던 허름한 여관에서 덜컥 들어선 아이. 잃어버린 아이를 찾으러 가면서 하필 간절하게 떠오른 스크류바. 어린 시절 엄마의 부재, 감추고 살았던 욕망이 한순간에 툭, 튀어나오는 순간 걷잡을 수 없어진 감정. 아이를 찾아 미친년처럼 거리를 헤매면서도 편의점 아이스크림 냉장고 안에서 스크류바를 집어 든 한 여자의 잃어버렸던(잃어버려야 했었던) 어떤 욕망에 대한 이야기.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는 실종아동찾기센터의 전화 이후 확, 터져버린 '나'의 감정을 따라가는 마지막 결말 부분이 이 소설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인 듯.

 
  「무작정 근처 편의점으로 갔다. 편의점 앞에 있는 아이스크림 냉장고를 열었다. 손은 잠시 망설이듯 허공에 떠 있었다. 더는 망설이면 안돼, 나는 스크류바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쪼그라들었던 심장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것만 같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을 안고 계속 뛰었다. 얼마쯤 뛰다 뒤를 보았다. 나를 따라오는 사람은 없었다. 숨을 고르면서 골목길로 들어갔다. 도로에서 조금 떨어졌을 분인데도 큰길보다는 훨씬 조용했다. 골목길 구석에 앉아 스크류바를 뜯었다. 빨간 스크류바에 가루같이 흰 얼음이 붙어 있었다. 혀끝으로 그 얼음을 핥았다.
(중략)
어디선가 또다시 매미가 맹렬한 기세로 울어댔다. 이제 귀를 막을 힘조차 없었다. 매미 소리와 함께 흩어진 기억들이 내 주위를 감쌌다. 그녀의 전화와 남편의 전화, 배 속에서 찢겨진 아이와 버스에서 놓쳐버린 아이. 한낮의 지독한 햇볕과 스타벅스에서의 물 한잔. 모든 게 뒤엉켜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때, 녹은 스크류바가 발끝으로 톡, 떨어졌다. 분홍색 동그라미가 발끝에서 터지자 그리로 무언가 스멀스멀 모이는 기분이 들었다. 톡, 톡 퍼져나가는 분홍색 동그라미, 달콤하고 끈적한 그 흔적. 나는 발끝으로 감각을 집중했다. 마치 전기가 오른 것처럼 발끝이 찌릿했다. 그리고 그 감각은 점차 다리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온 정신을 모아 그 감각만을 따라갔다. 무릎을 지나 사타구니에 그 찌릿함이 전달되자 몸에 있는 모든 혈관에 빠른 속도로 피가 돌기 시작했다.
(중략)
녹아가는 스크류바를 한입 베어 먹었다. 베어문 것보다 손으로 흘러내리는 게 더 많았다. 톡, 톡 바닥에 분홍색 동그라미가 박혔다. 나는 스크류바가 잔뜩 묻은 손을 들여다보았다. 잠시 뒤 그 손으로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 나를 휩싸고 돌았다. 그것은 아주 차가웠지만 안으로 갈수록 점점 뜨거워졌다. 목으로 치밀어오는 기운에 목을 뒤로 꺾었다. 참지 않고 숨을 뱉었다. 차가운 손이 점점 더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알 수 없는 신음이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 소리를 끝으로 세상은 온통 고요 속에 잠겼다. 톡, 톡  분홍색 동그라마가 내 안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p79-80


전생을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은 <어제의 콘스탄체>.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남자가 자신을 콘스탄체라고 불러세운다. 그는 자신이 전생에 모차르트라고 말하는 남자. 여자는 잃어버린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 남자를 따라 우연히 전생을 보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을 프리드리히 니체, 버지니아 울프, 갈리레오 갈릴레이, 이사도라 던컨,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라 믿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몇 년째 방에 틀어박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글을 쓰고, 구조조정을 당하고 희망 없는 이들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여전히 '어제'의 세계에 갇혀 있다.

  「우리는 내일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콘스탄체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짐작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우리를 만난 당신의 어제는 어땠습니까? p149

<오늘도 집에는 엄마가 없었다>로 시작해 <오늘은 엄마가 집에 있을 거야>로 끝나는 소설 <하우스>.
<하우스>는 소위 말하는 도박장이다.
엄마는 여섯 살 아이를 재워두고 주택가 지하에 있는 <하우스>에 드나들고 있다.
나는 학교가 마치면 여섯 살 동생을 데리고 엄마를 찾아 하우스를 기웃거린다. 아빠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제발 엄마가 집에 왔으면 하는 바람.
나 역시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 여자 아이지만 동생 걱정에, 엄마 걱정에, 엄마 아빠가 싸울까 봐 불안해하며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을 뒤로하고 무작정 집으로 돌아온다.
어떤 날엔 아빠에 의해 머리채를 잡힌 채 질질 끌려들어 오는 엄마. 그런 날이면 동생을 끌어안고 두려운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왜 그렇게 마음이 먹먹해지고 아팠는지 모르겠다.
그 아이가 마치 직접 내 앞에 있는 것처럼 다가가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마지막 문장 <오늘은 엄마가 집에 있을 거야>는 아이의 간절한 바람.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을 바람.

언급하지 않은 소설들도 저마다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아홉 살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스물아홉에 등단했다는 작가.  등단 이후 6년 만에 세상에 내놓은 첫 소설집.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 기억들은 언제나 나를 쓰게 했다."라고.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다. "내 소설은 모두 내 사랑의 흔적이다."라고.
아마도 앞으로 작가가 쓰게 될 많은 이야기들은 작가의 기억임과 동시에 우리들의 기억이지 않을까. 작가가 가지고 다닐 사랑의 흔적을 또 언제가 좋은 글을 통해 만나기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