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사람들의 삶이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곤 했다.
작가의 최근 소설들을 읽으면서 나는 늘, 한가지 '버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 친구의 이야기, 이웃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
별것 아닌 하루하루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하는데, 그게 마치 내 이야기 같아서 푹, 빠져들고 말기를 여러 번.
이번 소설집 『모두가 헤어지는 하루』에 실린 여섯 편의 소설 역시 그랬다.
위에 발췌해서 적은 부분은 <변해가네>라는 단편의 마지막 문장이다.
딸아이를 결혼시키고 나서야 이혼을 실행에 옮긴 한 여자.
딸이자, 엄마인 한 여자의 삶의 이야기. 흔히 주변에서도 어쩐지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한 여자의 하루를 따라가는데, 나의 모습이. 엄마의 모습이, 딸아이의 모습이 겹쳐졌다.
무겁거나, 유독 슬프거나 한 내용도 아닌데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뭉클, 했다.
이상하다.
작가의 마법에 걸려버렸다.
<휴가>라는 단편에서는 평일에 휴가를 얻은 한 부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치 나와, 나와 같이 사는 남자의 평일 휴가의 모습 같아 읽는 내내 공감했다.
'시계를 본 순간 휴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하루는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는데'라고 시작되는 첫 문장부터 그랬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거나 함께 무언가를 하려고 했지만(직장인에게 평일의 휴가란 얼마나 달콤하고 소중한가), 늦잠을 자고 일어나 시작부터 끝나버렸다고 느낀 부부의 휴가.
결국
'하루 잘 쉬었다.
아무 데도 안 가고 쉬는 것도 괜찮네.'
하고 끝나버린 휴가. 그런 휴가를 한두 번 이상 보내본 사람들이라면 아, 하고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이야기다.
「이혼을 결정한 뒤 그녀와 나는 우리 관계가 왜 이렇게 되었나, 누구의 책임이 더 큰가, 고민할 겨를도 없이 살던 집은 어떻게 하고 물건을 어떻게 나누고 앞으로 어디에서 살 것인가, 하는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빨리 혼자가 되고 싶은데 한집에 묶여 있어야 하는 현실이 갑갑했다. 중개업소에 집을 내놓고 팔리는 대로 즉시 돈을 나누는 것만이 해결책인 것 같았다. - <이후의 삶> 중에서, p144」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이혼을 앞두고 있다면 저런 고민을 하는 게 당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책임이 크고, 마음이 아프고,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이라도 잘 살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건 어쩐지 더 현실적이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
갑작스럽게 전세금을 올려달라는 주인 때문에, 한 해의 마지막 날 집을 보러 다녀야 하는 자매의 이야기를 다룬 <에트르>는 이미 다른 작품집에서 한 번 읽은 소설이었지만, 다시 읽었다.
어쩐지, 이 소설집 속에서 더 잘 어울리는 듯한 소설이었다.
일곱 살 첫째와 5개월 둘째를 데리로 떠났던 1박2일의 짧은 휴가 끝에, 이 글을 쓰고 있다.
더운 날씨에 힘들다 수시로 징징거리는 두 딸, 별일 없었지만 그런 아이들 틈에서 괜히 심드렁해져 버린 우리 부부. 잘 놀고 왔다, 집에 돌아와 널브러져 누우면서 던지는 의례적인 말(물론 진심도 포함된), 늦은 밤 내일 출근 걱정을 하는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
소설이 살아내는 현실과,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아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내 삶, 어쩐지 너무 재미없는 거 아니야 괜히 볼멘소리를 내뱉는 밤.
다, 작가의 소설 탓이다.
그러니, 버티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현실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쓰고, 들려주길.
들리지도 않을 투정을 부리는 밤. 그렇게 나의 하루와 헤어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