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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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위내시경 중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결과는 열흘이 지나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 열흘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많이 불안했고 우울했다.
일어나지 않은 나쁜 가정을 하면 스스로를 괴롭혔다.

나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아직 주변에 가장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경험한 적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나를 포함한)가 죽는 다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두렵고 아프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올해가 가기 전에 읽고야 말았다. 지금 나는 두려움보다 존경과 애정이 가득한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폴과 그의 아내 루시를 향해.


-    루와 나는 병원 침대에 함께 누웠다.
     루시는 마치 대본이라도 읽듯 조용히 물었다. "진단이 바뀔 가능성이 있을까?"
     "아니."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마치 젊은 연인들처럼 서로를 꼭 끌어 안았다. 우리 부부는 지난 한 해 동안 내 몸 속에서 암세포가
      자라고 있지 않나 의심하면서도 그것을 사실로 믿거나 심지어 입밖에 내는 것조차 피해왔다. p20

이 책의 시작은, 아니 시작부터 마음을 쿵, 하고 울렸다.

남편의 암진단 결과를 두고 묻는 아내의 목소리, 아니라도 대답하는 남편의 목소리와 표정을 상상했다. 물론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 일이지만.

주인공 폴 칼라니티는 촉망받는 의사였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의학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의사로서 성공이 보장된 듯 보였다. 그리고 그는 아직 젊었다. 폐암 4기 진단을 받았을 때, 그는 고작 30대 중반에 접어들었을 뿐이었다. 삶과 죽음을 예상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 책은 1부 <나는 아주 건강하게 시작했다>,2부 <죽음이 올 때까지 멈추지 마라>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 시절의 폴과, 건강했던 시절의 폴, 의사가 되기까지의 폴의 이야기와 폐암 진단을 받은 뒤 폴의 이야기로.

의사였기 때문에, 누구보다 죽음을 마주한 경험이 많았기때문에 죽음이 덜 두려웠을까. 그렇진 않았을것이다. 오히려 너무 잘 알아서 더 두려웠을지도 모르겠다. 그 고통, 마지막 순간, 희망을 갖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조차 너무 잘 알아서 더 절망적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의사로서 포기하지 않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한 여자의 남자로 최선을 다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문장마다 슬픔과 두려움을 꾹꾹 참은 듯한 마음이 느껴져 읽으면서 더 먹먹해졌는지도 모르겠다.

- 나는 나 자신의 죽음과 아주 가까이 대면하면서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동시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나는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구체적으로 언제가 될지는 알지 못했다. 암 진단을 받은 후에도 내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알았지만 언제가 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을 통렬하게 자작한다. 그 문제는 사실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죽음은 사람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죽음 없는 삶이라는 건 없다.p161

<<숨결이 바람 될 때>>는 폴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계획대로 완성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이 책에 대한 애정이 많았다는 폴. 그가 원했던 그 책 역시 그가 떠난 뒤에 홀로 남겨졌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그의 딸 케이디가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도 흠뻑 눈물을 흘리고 난 뒤에 자랑스럽게 말하지 않을까. "아빠 너무 멋지다"라고.  그의 책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 네가 어떻게 살아 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졌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p214

그의 아내 루시 생각이 많이 난다.
남편은 8개월 된 딸 아이 케이디를 남겨두고 자신과 아이를 떠났다.
그리고 이제 자신과 딸 아이는 남겨진 자의 몫을 열심히 살아내야 할 터였다. 그 마음은 두렵지 않았을까.
여전히 두렵지는 않을까. 남겨진 자를 더 걱정하는 건 내가 아직 이곳에 남겨져 있기 때문일까.

이 책의 끝에는 아내 루시의 에필로그가 담겨있다. 폴의 글 만큼이나 마음에 잔잔함 감동을 주는 글이다.
그녀는 흔들리지 않고(아니 수시로 흔들렸겠지만 꿋꿋하게) 폴을 지켰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이제 아이와의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마음 깊은 곳으로 부터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겠다는 폴의 결단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증명할 뿐 아니라, 그의 인생 자체가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폴은 평생 죽음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죽음을 진실하게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결국 그는 그 일을 해냈다.
나는 그의 아내이자 목격자였다. p264

루시가 쓴 에필로그의 마지막을 오래 읽는다.  잊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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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 개정판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북로그컴퍼니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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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사랑은 바보 같은 짓이에요? 그렇죠? 제대로 되는 법이 없잖아요?"
" 왜, 제대로 되기도 하지. 하지만 노력을 해야지."
"어떻게 노력을 해요?"
"조금 더 애를 써야지. 매일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해. 자기 자신이 될 용기를 가져야 하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결심을 해야지......" p215-216

결혼을 한 뒤에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그 중에서도 크게 달라진 점을 꼽는다면 드라마와 연애소설을 읽을 때의 느낌일 듯 하다.
연애 시절에는 모든 드라마가, 영화가, 연애소설이 나의 이야기 같고 감정이입이 되더니 결혼한 뒤에는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 인 듯, 그저 동경하 듯 보게 되었다. 어차피, 이젠 내겐 일어날 수 없는 일이잖아,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소설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를 처음 읽었던 2009, 아직 서른이 되기 전, 결혼도 하기 전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오히려 이 소설은 결혼 전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 다시 읽으니 훨씬 몰입도가 높아지고 감정이입이 잘 되었다는 것. 아마도 소설의 큰 배경이 되는 남편이 아내를 떠난 뒤, 남겨진 아내가 느끼는 상실감과 고통을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을 향한 분노, 남겨진 아이들과 자신의 상황에 절망하는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이 되기 시작하자 이 소설 읽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남편이 떠났다. 그것도 다른 여자를 사랑해서.
여자에게는 두 아이만 남았다. 앞으로 자신이 책임져야 할.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보내고 여자는 절망했다. 자신이 보잘것 없이 느껴져 끝없이 감정의 추락을 경험하고 있었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금연을 결심하고 오랫동안 굉장한 의지력을 보여주다가도, 어느 겨울날 아침 다시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 추위를 무릎쓰고 십리 길을 걸어 가는 것, 혹은 어떤 남자를 사랑해서 그와 함께 두 아이를 만들고서도 어느 겨울날 아침 그가 나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미안해, 내가 실수를 했어."하고 말하는 걸 듣는 것, 그런 게 인생이다. p42

그런 절망 스러운 순간에 여자를 보듬어 준 건, 무뚝하고 정없게만 느껴졌던 시아버지였다.

이 소설은 자신의 며느리를 떠나버린 아들을 대신 해 시아버지가 며느리와 손자들을 시골로 데리고 내려가면서 시작된다. 처음은 어색하고 삐걱거렸다. 시아버지는 여전히 무뚝뚝했고, 편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골집에서도 한동안 거리감을 느꼈다. 그 순간, 시아버지의 고백이 이어졌다.
평생, 다른 여자를 사랑했었다는 믿기 힘든 고백.

이제 소설은 여자의 이야기보다 시아버지의 고백 쪽에 무게가 실린다.
자식들이 있고,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 우연히 만난 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 오랜 시간 흔히 말하는 불륜을 저질러 왔다는 것. 여자는 믿기 힘든 그 이야기에 점차 빠져든다. 그리고 조금씩 공감하고(때로 분노하면서도), 어느 부분에서는 이해하는 듯도 보인다. 시골집을 떠나기 전날 밤, 여자는 밤새 시아버지의 사랑이야기를 듣는다.

남자(시아버지)의 오래 된(이제는 추억으로 남은) 사랑이야기는 애절했다.
독자는(나는) 점점 혼란을 느낀다. 분명 분노해야하는데, 어쨌든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 불륜을 저질렀으니 응당 그 죗값을 치뤄야해, 하고 단호해야하는데 좀처럼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용기. 우리 인생에서 적어도 한 번은 그런 용기를 내야 돼. 오로지 자기 혼자서 자신과 맞서야 할 때가 있는 거라고. '잘못을 저지를 권리', 말은 간단하지. 하지만 누가 우리에게 그걸 주겠어? 아무도 없어. 있다면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야.
나는 나 자신에게 그런 권리를 주지 않았어....... 나 자신에게는 어떤 권리도 부여하지 않았지. 의무만 부과했을 뿐이야. 그래서 이렇게 답답한 늙은이가 되어 버렸다. p99


남자의 말 "조금 더 애를 써야지. 매일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해. 자기 자신이 될 용기를 가져야 하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결심을 해야지......"이 자꾸 쓸쓸하게 마음을 맴돈다.
남자는 결국, 아내와 자식 곁에 남았다. 온전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했던 여자와 이별을 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믿는 가족들에게 돌아와 아마도 미안한 맘을 담아 최선의 삶을 살아왔을 이젠 노인이 된 남자.
머리와, 마음이 다르게 이 인물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평생을 답답하게 살고, 결국 답답한 늙은이가 되었다고 말하는 남자가 자신의 며느리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도 오래 마음을 울렸다.

너의 가치를 생각할 때, 네 삶은 지금보다 한결 나아져야 해. 네가 약간 억지스럽게 쾌활한 모습을 보이려고 애쓰면서 살았다는 거 알아. 그건 부당해. 너는 그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아야 해. 지하철에서 수첩을 토닥이며 고민하는 삶, 동네의 작은 공원에서 매일같이 똑같은 이웃들과 마주치는 삶, 요컨대 너희 둘이 살았던 삶보다는 나아야해. p124

마음과는 다르게 나는, 이 소설을 결국 내 입장(남편에게 버림받은 며느리)에서가 아니라 결국 너무나 사랑했지만 유부남이었고, 자신을 믿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포기하고 돌아와 최선의 삶을 살아가야했던 한 인간에 대한 입장으로 읽고 말았다.
누군가는 그래도 불륜은 불륜이지, 라고 말할테다. 누군가는 아 이소설 진짜 뭐 이래,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다 읽고 나면 이 쓸쓸한 이야기에, 그 쓸쓸함을 돋보이게 하는 작가의 문장들에 이미 빠져들고 난 뒤일 것이다.
"아버님은 그녀를 사랑하셨어요?"
라고 묻는 며느리에게
"그건 점선으로 이어진 삶이었다고 생각해...... 아무것도 없다가 무언가 있고, 다시 아무것도 없다가 무언가가 있고, 그러고 나면 또 다시 아무것도 없고 그랬어....... 그래서 세월이 아주 빨리 지나갔지.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일이 겨우 한 철밖에 지속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한 철도 아니고 그거 한 줄기 바람, 하나의 신기루였던 것 같아...... 우리에게는 일상의 삶이 빠져 있었어."라고 회상(고백) 할 수 밖에 없는 남자의 쓸쓸한 목소리.

사랑이 뭘까, 라는 물을 던질 수 밖에 없었던 이야기.
나라면 어땠을까, 내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해서 떠난다고 한다면. 혹은 다른 여자를 사랑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가정으로 돌아와 적어도 겉으로는 최선의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것을 본다면.... 이라는 가정을 수없이 던지게 했던 이야기.
참, 쓸쓸하다. 산다는 게. 사랑한다는 게. 라는 말을 읊조리게 했던 이야기.

남자(시아버지)의 사랑이야기를 다 들은 여자(며느리)가 어떤 위로를 받았는지 알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더 절망했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곧 털고 일어났을거다. 밑바닥까지 내려갔을지는 몰라도 곧 다시 자신의 자리로, 자신의 삶으로 돌아왔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게 결국은 사랑의 힘이 아닐까. 결국엔 그러니까 모든 게 사랑으로 가능한 일이 아닌가.

"나는 '그래, 울자. 이번을 마지막으로 한바탕 오지게 울자. 눈물이 마르게 하자. 스펀지를 꾹꾹 눌러 짜듯이, 이 슬픈 몸뚱이에서 물기를 빼버리자. 그러고 나서 이 모든 것을 지난 일로 돌리자. 모든 걸 새로 시작하자.' 하고 생각했다.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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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자들 창비청소년문학 76
김남중 지음 / 창비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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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에겐 투와 함께 걷는 삼십 분을 위해 나머지 하루가 존재했다. 첫사랑은 폭풍처럼 오지만 드물게는 안개처럼 오기도 했다. 지니는 서로를 바라보며 폭주하는 기쁨보다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 안정감이 좋았다. p13

사랑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가장 큰 가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어느 성경구절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누구나 사랑을 하고,
사랑에 실패하지만 다시 사랑때문에 힘을 얻는 것이 사람.

그런 사랑을 봉쇄당한 사람들이 있다.
국가의 승인이 없이는 '사랑'도 '사랑에 동반되는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사회.
그들은 정말, 사랑없이 살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이 소설, <해방자들>에 있다.

 

 창비 청소년 문학 76, 이라는 이 소설은 청소년소설로 국한 하기에 아쉬울 만큼 재미 있다.
청소년 문학이 뭐지. 청소년들을 위한 문학이라는 건가, 청소년들을 우선으로 하는 문학이라는 건가.
그런 구분이 굳이 필요없을 만큼 누구라도 이 소설에 빠져들 것이다.

다압이라는 곳에 사는 지니는 전수학교를 다니며 보육자격시험에 합격해 렌막으로 나가 사는 게 꿈이자 희망이다.
다압에서는 희망도 없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스무살도 되기 전에 애 엄마가 되거나, 동전 몇 푼을 벌기 위해 평생 힘들게 힘들게 일하거나, 밤 골목에서 남자들의 팔에 매달리는 하루하루(p33)'를 살아가게 될터였다. 지니는 50등 차이로 보육교사 시험에 떨어졌지만 결국 밀입국을 해서라도 렌막에 가기로 결정했다. 그곳엔 이미 직업 시험에 통과에 렌막으로 간 사랑하는 '투'도 있었다. 그곳에만 가면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렌막은 국가의 승인을 받은 이들만 아이를 낳고, 양육 교육을 받은 뒤에만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사람들에게는 개인적인 감정, 사랑을 위해 어떤 행위도 용납되지 않았다. 렌막에 사는 사람들은 일 년에 한번 의무 검진을 받아야 했고 의무 검진에는 복합 예방 접종 주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을 중성화 시키는 성분이 들어 있는 주사. 렌막에서 나고 자란 '소우'는 지나치게 주사를 두려워 한 탓에 갖가지 방법을 동원에 주사를 맞지 않았다. 그래서 소우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성적인 충동'에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지니는 렌막에서 사랑하는 '투'를 만날 기대에 부풀었지만 다시 만난 투는 예전에 서로 사랑하던 투가 아니었다. 새로운 사회에 적응한 투(이미 복합 예방 주사를 맞았을 것)는 지니에게 좋은 친구로 남자고 말하고 지니는 절망한다.

이렇게 보면, 이 소설은 단순히 사랑을 제한 당하는 사람들이 사랑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소설로 비춰질수 있지만 그 뒤에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국가에 대항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시민들의 이야기가 작가의 필력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최근에 읽었던 윤이형의 <졸업>이라는 소설에서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합격증을 받아야 하는 소재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국가는 철저한 기준에 의해 합격한 이들에게만(대부분 10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자격을 주었고, 그렇게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국가가 양육을 책임지는 식이었다.

거기에 '사랑'은 철저히 배제된다.
결국 국가는 국민들의 '사랑'까지 통제하며 권력을 휘두른다. 무시무시한 일이다.

이 소설은 마지막까지 흥미진진하다. 지니와 소우의 이야기가 어떻게 끝을 맺을지 궁금해서 쉽게 중간에 멈출 수 없었다. 힘없는 국민이 부조리한 국가에 대항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결국 버텨낼 수 있을지 끝까지 긴장하면서 읽어 내려 갔다.

"복합 예방 접종을 맞으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렌막 시민의 삶으로 돌아갈수 있다. 학교에 다니고, 운동을 하고, 친구들과 놀고, 능력만 된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삶, 누구라도 꿈꾸는 삶이다. 스파다인에 다녀온 지금, 소우는 시민의 삶이 선택된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얻으려는 그 혜택을, 소우는 단 하나만 포기하면 다시 누릴 수 있다. 그 하나가 무엇인지 생각하자 소우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p209'

'그 하나' 때문에 사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그것을 포기해야 평범하게 살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 였다면 난 아마 '소우'라는 캐릭터에 흠뻑 빠져 헤어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 멋진 소년.
그리고 아름다운 소녀 지니. 그들의 미래가 절대 국가와 타협하지 않고도, 멋지고 당당하게 펼쳐지길 바란다.

이 소설을 읽는 청소년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들이 뭐가 중요한지 잘 아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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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의 꿈, 서른아홉의 비행 - 파일럿 조은정의 꿈을 이루는 법
조은정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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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그리고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가 꿈과 열정이다. 그래서 처음 책을 받았을 때, 설렜고 그만큼 겁이났다.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낸,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늦지 않았어. 다시 시작하는거야'라는 마음을 갖게 될 거란 기대감에 설렜고, 그와 함께 현재의 게으른 내 모습을 바로 마주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스물 아홉. 서른을 앞두고 앞으로 내가 살아가게 될 삼십대를 그려본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은 내 앞에 닥친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 나름 안정적이었던 직장. 늘 새로운 삶을 꿈꿨지만 언제나 내 발은 현재의 땅을 밟고 서 있었다. 만약 그 때, 좀 더 내 삶에 대해 적극적이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쯤 내가 꿈꾸던 삶에 조금 더 가까워지지 않았을까.

 

디자인을 전공하고 호텔리어로 안정적인 삶을 살다가 새로운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 그녀의 이야기는 그래서 특별하게 다가왔다. 담담하게 이야기 하고 있지만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녀가 보내야 했을 무수히 많은 노력의 시간들, 포기해야 했을 안정적인 환경들, 극복해야 했을 주변의 우려섞인 말들, 혼자 견뎌내야 했을 외로움의 시간들이 전달 되는 것 같았다.

 

꿈이 없는 사람도 없고, 목표를 세우지 않는 사람도 없다. 다만 그것을 매일 생각하는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하는지, 낯선 곳으로 걸어 들어 갈 용기가 있는지, 얼마나 절실한지, 그 양과 깊이가 다를 뿐.

어쩌면 기세등등하게 시작했다가 처음 만나게 되는 장애물 앞에서 그래, 이럴 줄 알았어. 하고 주저 앉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고.

 

삶이 늘 선택의 연속이라는 걸, 그리고 그 선택에는 꽤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깨닫는다.

미술선생님을 꿈꾸던 아이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청년으로 다시 호텔리어의 삶으로 그리고 파일럿의 삶으로 그녀를 이끈 것 역시 어떤 순간마다 정확하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선택할 수 있었던 그녀의 용기.

용기를 낼 수 있었기에, 본인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기에 더 부지런히 달려 갈 수 있었을 거다.

 

내가 늘 어떤 선택의 순간에서 나 자신을 제일 앞에 두지 못했던 것이 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스스로에게 미안해 졌다.

 

마음 속 깊숙이 담아 둔 '꿈'을 다시 꺼내 본다. 그리고 소리내서 이야기 해 본다.

알고 있다. 나 역시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을.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읽을 많은 사람들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지금 바로 시작하면 된다는 것을. 그녀가 우리에게 해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곧, 나와 당신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싶다.

 

그녀의 말처럼, 천둥 번개를 견디고 나면 새로운 태양이 둥글게 떠오를 테니까.

 

[나는 비행을 하면서 늘 보고 느낀다. 아무리 비가오고 바람이 불어도 일단 비구름을 뚫고 올라서면 눈이 부시도록 파란하늘이 펼쳐진다는 것을.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지금 당신이 걱정하고 있는 그 비구름을 뚫고 올라서면 분명 파란하늘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 너무 힘들고 꿈도 멀리 있는 것 같지만, 천둥 번개를 견디고 나면 새로운 태양이 둥글게 떠오를 것이다(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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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스밴드를 기다리며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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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애인, 딸, 제자, 엄마라는 이름을 빼고는 모두 가진 한 여자. 그 여자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 여자의 남편은 여자의 애인으로인해 죽음에 다시 다가서야 했다. 절친한 친구의 죽음으로 이미 죽음을 가까이 본 남자는 죽음을 가지고 오는 끈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한다.

브라스밴들를 죽기 진전까지 기다린 여자는, 어쩌면 현생에서의 숨이 끊어지는 순간 자신 앞에 브라스밴드의 행렬이 이어져 그 행렬을 쫒아간것은 아닌지......

여자에게 브라스 밴드의 의미는...(죽음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흔적을 모두 없애려 했으면서도 브라스밴들 만은 부여쥐고 있던 여자) 남편에게 자신의 아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브라스밴드의 의미는...(애인이 아닐까라고 까지 생각한) 무엇이었을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때 제일 먼저, 죽고 싶었던 여자.

누군가에겐 죽음이란, 그 죽음이라는 끈이 조금씩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것은 아닌지.
그 브라스밴들는 모든 걸 알아버린 자들에게 보내는 하늘의 작은 위로가 아닐런지......

김인숙의 소설들을 읽는 내내 죽음이라는 꼬리표가 내 뒷목에 붙어다녔다. 죽음에서 벗어나고 싶어 몇 번이고 책을 덮어버리려고 할때마다 다시...... 더 집중하게 된것은. 내게도 브라스밴드가 신호를 보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들었다.

김인숙이 바라보는 죽음의 시선에 소름이 돋도록 아프다. 그래서 더... 자꾸... 작가의 시선에, 작가의 기침에 신경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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