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
김별아 지음, 오환 사진 / 좋은생각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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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온전히 김별아 작가의 이름과 제목에 반한 책이다.
그렇게 들은 이 책에서 난 작가 김별아의 에세이와 오환 사진작가님의 사진을 통해 나를 투영해 보았고, 세상을 돌아보게 되었다.

가끔 세상을 바라보면, 무미 건조한 바람이 부는 콘크리트의 사막 같았다.
밤을 밝히는 가로수와 건물의 빛들은 오아시스의 신기루 같이 멀게만 느껴졌다.
사회 초년생을 벗어나 회사에서 중간급이 되면서 시달리는 압박과 경쟁은 마음속을 사막과 같이 황폐화시켜가고 있었고, 학교에서 12년 넘게 배운 도덕은 저 화성에서 발견되었다는 생명체보다도 못한 관심사 밖의 일이 되어버렸다.
특히 회사내 사정이 안 좋아져 한달간 대책 회의와 업무에 시달리다가 지쳐갈때쯤 만난 것이 바로 이책이었다.
20살 예뻤을 때로 시작된 에세이는 마치 잔잔히 보슬보슬 오는 봄비처럼 조용히 어느새 촉촉히 젖어들었다.
김별아 작가님의 글은 샤워 후, 욕실에 가득한 삼퓨와 비누향이 가득한 정갈하고 익숙하며 촉촉한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먼지 바람만 불던 내 육신과 마음을 촉촉하게 해주었다.

김별아님의 에세이뿐만 아니라 오환 작가님의 사진들도 언젠지 기억도 안나는 미소를 살며시 짓게 해주었다.
난 여러차례 오환 사진 작가님 사진속 얼굴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졌다.
친구들과 웃고 있는 아이, 고된 할아버지를 환하게 웃으며 바라보던 아이, 거수경례를 하는 아이, 소독약 냄새에 코를 집는 아이.
그 아이들 속에 내가 있었고, 미래가 있었기에 만져주고 싶었다.
하지만, 감히 삶의 무게에 범접할 수 없는 이들의 사진속에서 현재의 나와 희망을 바라보게 되었다.
담배를 피우시는 할아버지, 장기를 두시는 할아버지들, 아슬아슬 배달할 음식을 머리에 이고 배달하는 아주머니, 비록 가난한 동네에 살지만 하늘을 쳐다보고 호방하게 웃는 아주머니와 친구들, 그리고 아주머니들과 마늘까던 아이.
사진 역시 흑백이기에 우리의 기억처럼 추억처럼 더 느껴졌다.

나는 이책을 두번 읽었다.
처음에는 김별아님의 에세이를, 두번재는 오환님의 사진을 읽었다.
처음 책읽기를 시작할 때는 같이 에세이를 읽고 사진을 보면서 진행하였지만, 워낙 두가지를 동시에 할수 없는 성격이기에 온전히 글과 사진을 한꺼번에 소화해낼수 없었다.
두번을 거쳐 만난 이책은 참 비슷하고 닮아있었다.
화려하게 반짝이지는 않지만 마치 원석처럼, 읽고 마주할수록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고 감동을 주었다.

어린시절 철없던 나도 만났고, 가장 아름다운 봄인줄도 모르고 허무하게 보낸 스무살의 나도 만났으며, 채바퀴속에서 무서운것도 모르고 구업을 짓고 사는 현재의 나도 만났고, 언젠가 미래에 다가올 죽음도 생각해 보았다.
에세이를 읽는 즐거움중에 하나를 맛보았고, 사진들 속에서 희망을 더듬어보았다.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김별아 작가의 에세이와 오환작가의 사진들을 만남녀서 소통한 시간을 보낼수 있어서 오랜만에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수 있었다.

세상은 변한다.
김별아 작가님도 이 글 에세이속에서 많이 달라진 모습과 달라지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오환님의 사진은 이미 추억의 한 페이지로 넘어가는 우리의 삶을 담고 있었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많이 변하였고, 많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이 에세이 속에 사진속에 있었고, 세상의 희망 역시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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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숨 장편소설
김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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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특하고 독특하고 또 독특하다.
매우 실험적이고, 매우 용기있는 작품이었고, 많은 두려움과 걱정이 함께 하였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 불, 소금, 금, 공기라는 성질이 중심으로 이들을 한 가족으로 묶어 이야기를 진행해 간다.

철저히 1인칭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중간에 2번 엄마인 물의 고백이 있는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큰딸인 소금에 의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엄마는 물이며, 아빠는 불이며, 큰딸은 소금이고, 두번째 달이며 소금의 쌍둥이 동생은 금이고, 막내 딸은 공기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자매의 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상처투성이에 문제 투성이일 뿐이다.

엄마 물은 수증기와 물 그리고 얼음인 세 상태를 반복한다.
반복적으로 발작성 마비가 찾아오는 상태인 얼음으로, 한결같은 물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아빠 물은 아내인 물이 자신을 평안으로 이끌어 주길 바랬지만, 평안이 아니라 파괴와 소멸이 존재할 뿐이라, 그녀를 떠났고, 14년 만에 다시 돌아온다.
소금인 나는 25살 연상의 이혼남과의 결혼과 이혼으로 순수성을 잃었고, 날카롭게 각을 세우고 살게 되어, 엄마인 물의 곁에서 소금이 녹듯 망각하길 바란다.
금은 반짝반짝 빛나는 외모를 갖고 있어, 많은 이들에게 욕망르 불어 일으킨다.
여섯살에 유괴당한 금은 여섯살의 정신세계에 멈춰버렸다.
이런 모자란 금을 소금은 질투하고 시기하고 있다.
공기는 가벼이 cool할 것 같지만, 종교에 빠져 모든 빛을 흡수하는 검을 옷을 입고, 자유로움이 아닌 속박을 선택한다.

이처럼 이 가족은 서로에게 갈망의 대상일뿐, 함께 함으로써 갈등과 파멸에 이르게 하는 존재일뿐이다.
이 가족은 모두 각자 가족들에게 원하고 갈망하는 바가 있었다.
주인공인 소금은 엄마의 물에게 망각이라는 평안과 휴식을 원했고, 25살 연상의 남편이 돌아올 거라 예상했다.
엄마인 물은 물인 아이를 낳기를 원했고, 딸들과 집으로부터 멀리 떠나길 바랬다.
남편인 불은 소금과 같은 것을 아내 물에게 원하고 기대했고, 딸 금이 손주로 금을 낳기를 바랫다.
공기는 불이 저수지의 삼백만톤의 물을 없애고 지은 집을 원했고, 기도원으로 만들기 바랬다.
그러나, 이들은 아무것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고, 소금은 물을 떠나보내고 증오하는 불의 곁에 남아 있어야 했고,
물은 물인 아이를 낳지 못했고 평생 그집을 떠나지 못했다.
불과 공기 역시 원하고 바랬던 것을 하나도 얻지 못했다.
그저 그들에게는 그 집만이 남았을 뿐이다.

책을 모두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 왜 [물]인지에 대해 오랜동안 생각했다.
나름대로의결론은 물은 운명과 숙명에 대한 순응이 아닐가 싶다.
마치 저 흘러가는 계곡물과 강물 그리고 바다처럼...
어느 누구도 갈망한 것을 이룬 이는 없었다.
결론적으로 이룬것이 없다고 불행한 이도 없었다.
집도, 가족들도 모두 숙명에 맞게 운명의 씨줄과 날줄대로 제자리를 찾아갔다.
물은 어디든 담겨져서 형태를 이루고, 절대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소금이 낭송한 프랑시스 퐁주의 시 [물]이 핵심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 ~중략~
물은 희고 반짝이며, 형태없고 신선하며, 수동적이라 못버리는 한 가지 아집이라면 중력.
그 아집을 못버려 온갖 비상 수단 다쓰니 감아돌고 꿰뚫고 잠식하고 침투한다.
그 내면에서도 그 아집은 또한 작용하여 물은 끊임없이 무너지고, 순간순간 제 형상을 버리고, 오직 바라는 것은 저자세,
오체투지의 수도사들처럼 시체가 다 되어 땅바닥에 배를 깔고 넙죽이 엎드린다.
언제나 더 낮게, 이것이 물의 좌우명 "향상의 반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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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8 제너시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2058 제너시스 내인생의책 푸른봄 문학 (돌멩이 문고) 7
버나드 베켓 지음, 김현우 옮김 / 내인생의책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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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주말에 몰아서 책보기를 하는 나는 주중에도 책을 놓치는 못하는 편이다.
하지만, 주중에는 회사 업무와 피로가 겹쳐 잘 읽지 못한다.
그러나, 이책은 퇴근 후 읽기 시작하여 새벽 3시까지 단숨에 읽어버렸다.
우선 책 페이지가 얇다는 점도 작용하였겠지만, 책에 몰입할 수 밖에 없는 작가의 멋진 이야기와 번역가의 노력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한없이 빠져들고 빠져들다가 놀라움과 함께 책을 다 읽고 말았다.

[2058 제네시스] 처음 이 책 제목만 보고 모 치약이름과 모 자동차 이름이 겹쳐 생각났지만, 이 책은 굉장히 심도깊은 철학적 내용을 미래 공상이라는 배경에 담아놓았다.
아낙시맨더라는 한 소녀가 최고의 엘리트 기관인 학술원에 지원하여 시험을 치르는 형식으로 시험관들과 아낙스의 문답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형식조차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문답 형식으로 오류와 모순을 탐구하는 철학적인 탐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또한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고대 철학자의 이름들을 갖고 있었다.
이처럼 여러가지 면에서 이책은 철학을 담고 있다는 것을 표출하고 있지만, 형식은 과거도 현재도 아닌 2058년 미래이다.

공간적 배경은 한 섬에 구축된 공화국이다.
플라톤은 지구 인류의 위기의 순간 한 섬에 노동자, 군인, 기술자, 철학자의 계급 사회인 공화국을 건설하게 된다.
섬밖의 인류와 경계를 지고, 외부인의 침입을 철저히 진압하고 제거하는 폐쇄적인 사회에서 아이들은 부모가 아닌 공화국에 의해 길러진다.
인류애나 개인적 개성보다는 전체와 공화국이 우선시 되는 사회가 건설된 상황이다.
마치 안정되고 조용한 것 같던 공화국에 커다란 파문이 일게 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인 아담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배를 타고 공화국 경계안으로 들어온 한 외부의 낯선 여자아이의 눈과 마주치면서 아담은 공화국의 원칙과 법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아담은 공화국의 불법자 신세가 되지만, 그의 행동은 인간적이며 즉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화국 시민들도 모두 인간이고, 인간으로서 감정과 동정이 발동하여 다행히 아담은 사형을 면하게 된다.
이렇게 목숨을 얻은 아담은 대신 기계인간인 아트와 같이 갇히게 된다.

이러한 공화국의 역사를 공부하는 역사학도 아낙스는 학술원 시험 주제로 공화국의 역사와 공화국 역사의 논란거리인 아담을 선택한다.
1교시에서 등장하는 공화국 역사 이후, 2교시 3교시에는 아담으로 주제가 차츰 옮겨간다.
아낙스는 아담에 대해 시험 주제 이상의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었고, 때로는 아담을 보호하고 대신 방어하려 하였다.
그녀의 눈을 통해 드러나는 아담의 진실은 매우 인간적인 편이었다.

'관념', '정신', '인간 본질', '우월성'에 대한 다양한 질의 응답이 아담과 아트의 또다른 소크라테스식 문답으로 등장하면서, 오류와 모순 그리고 새로운 질문들이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인간과 기계를 차이나게 하는 것이 무엇이며,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이 꼬리를 물고 계속된다.
인간의 자만심이 얼마나 모순된 이야기인지를 기계인 아트를 통해 신랄하게 비판되어지며, 반대로 인간으로서의 고뇌와 특징은 아담을 통해 들어나게 된다.

만약 이 책의 형식을 규명하라고 한다면, SF 공상 과학 미스터리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예상치 못한 미스터리의 형식이 이 책의 마지막에 충격에 가까운 허무함과 허탈함 그리고 감탄과 경이로움에 빠지게 한다. 
미스터리 형식 뿐만아니라 진중하고 깊이 있는 철학적 내용을 미래 시대 공화국을 배경으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도 놀라운 시도라고 생각한다.
지루하고 말꼬리 잡기식의 소크라테스 문답법이 시험이라는 형식과 대화라는 형식에 자연스럽게 담겨 있어서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았다는 점도 높이 살만하다.
또한, 작가의 멋지고 매력적인 필체가 미래사회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였다.
너무나 멋지고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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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해도 될까요?
제임스 패터슨.가브리엘 샤보네트 지음, 조동섭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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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해도 될까요?]는 '상상 친구'라는 개념이 도입된 변하지 않는 진정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상상친구라는 것이 동수? 라는 우스운 개그 코너가 연상되게 하였는데 거의 유사한 개념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개그와는 거리가 먼 로맨스 소설이었고,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가? 변하지 않는 운명같은 사랑은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에 대한 소설이었다.

제인은 참 외로운 아이이다.
사랑하는 부모도 있지만, 부유한 가정환경이지만 제인이 필요할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엄마인 비비엔 마고는 브로드웨이 유명 제작자로서 매우 바쁜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아빠 케네스는 비비엔과 이혼하여 따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제인에게는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제인은 행운아이다.
마이클이라는 상상 친구가 항상 그녀 옆에서 함께 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마이클은 제인이 만들어낸 친구일거라고 생각했지만, 개그 코너를 바탕을 둔 나의 상상은 잘못된 것이었다.
마이클은 실재하였고, 다만 제인에게만 보일뿐 분명한 하나의 인간도 천사도 아닌 존재하는 제인의 친구였다.

작가는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헤어지지 않아'라는 어린 아들의 말에서 이 책의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제인도 같은 이야기를 하지만, 상상 친구인 마이클과 9살 생일날 뜻하지 않게 헤어지게 된다.
마이클과 제인 모두 그 헤어짐이 영원한 이별이 될거라 예상했지만, 그들의 헤어짐은 23년간의 멀어짐일 뿐이었다.
마이클도 제인도 서로 잊지 못하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억은 제인에게 [고마워요 하느님] 이란 연극을 만들게 하였고, 마이클에겐 23년이 지난 제인을 발견하고 만나게 해주는 용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23년만의 만남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은 절대 헤어지지 않아'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남녀간의 사랑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면 호르몬의 작용이라고들 한다.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의 호르몬 작용으로 6개월동안 절정에 달하고, 그후에는 호르몬의 양도 줄고 사랑도 시들어 간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이론이라면 변하지 않는 운명적인 사랑은 불가능하다.
그런 사랑을 꿈꾸는 것조차 불가능을 소망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사람은 누구나 불가능을 꿈꾸고 바란다.
그래서 더 변하지 않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서 행복하고 모든 것을 다 이룬듯한 충만함과 함께 사랑하는 이와의 헤어짐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모두 이 책속에 있다.
상상친구라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변하지 않는 운명적 사랑과 잘 맞아 떨어졌다.
아이디어가 좋은데 반해서, 사랑에 이르는 과정이나 만남이 모두 우연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우연성의 설명이 하느님의 뜻, 운명으로 귀결되는 단순함이 아쉬웠다.
좀더 심리적 갈등의 묘사가 있었으면, 깊이 있는 연애 소설이 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한편으로 있기는 하였지만, 빠른 스토리 전개가 부담감없이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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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사라지던 날
유르겐 도미안 지음, 홍성광 옮김 / 시공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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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투모로우], [2012] 같은 영화가 유행하고, 이상 기후가 이어지자 다시 지구 종말론이 스멀스럼 기어나오는 분위기이다.
그래서, [태양이 사라지던 날] 역시 이런 부류의 하나로 여겼고, 왜 로렌츠 혼자 이 세상에 살아 남았고, 태양이 왜 사라졌는지 궁금하였다.
하지만, 이 책은 "왜"인지와는 거리가 먼 책이었다.

사랑하는 아내, 마리를 잃은 프리랜서 사진작가 로렌츠는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
한 여름 7월 17일, 태양이 사라지고 어둠과 추위가 습격하고 눈이 내리던 날 모든 살아있는 동물들은 사라졌다.
단지 로렌츠만을 제외하고.
로렌츠는 이 사실을 인지하면서 불안과 공포에 빠졌으나, 한편으로 자신의 아파트를 아지트로 만들며 살아갈 대비를 한다.
그는 독서를 하고, 음식을 먹고, 글을 쓰고, 잠자기를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지낸다.
그렇게 지내다 태양이 사라지고 난 후, 29일이 지난 후 기록을 하기 시작하면서 이 책은 시작된다.

철저한 일인칭 시점은 로렌츠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불안, 공포, 두려움을 고백하고 있어 마지막 남은 자의 처절한 기록인 듯한 기분을 준다.
태야이 사라지고 추위, 어둠, 눈, 안개 소음 등 외부 환경의 변화와 고요한 정적과 적막함에 대한 로렌츠의 심리적 반응이 잘 담겨져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로렌츠를 지배하는 것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죽은 아내 "마리"였다.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었던 마리를 배신한 죄책감과 아내를 잃은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리의 곁에서 죽을 결심을 하게 할 정도로 죄책감과 상실감이 그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가 죽기로 선택한 순간, 아이러니하게 그에게 다시 새로운 순수한 사랑이 찾아온다.
로렌츠에게 찾아온 두번의 사랑은 안락이 보다는 그의 문제점을 인힉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준다.
'더이상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
기억이 삶을 갉아 먹는다.
기억은 나를 죽음으로 끌고 간다.
바로 내 뒤에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왜 사람들과 동물이 사라졌는지 왜 태양이 사라졌는지는 중요치 않다.
어쩌면 로렌츠는 태양이 사라지기 이전에 이미 태양이 사라진 상태였을지 모른다.
즉, 마리가 죽은 이후에 사람을 기피하고 자신 속에 틀어 박혀버려 이미 태양과 세상이 사라져 단절된 세상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내면의 빈곤함과 적막감이 그가 속한 외부 환경보다 더 척박했다.
로렌츠 뿐만 아니라, 우리도 어떤 고난과 상실감에서 도망쳐 자신만의 동굴속에 종종 숨는다.
'기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라는 말이 있지만, 동굴속에 숨어버린 상태에서는 시간도 멈추게 되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게 된다.
문제로부터 숨거나 회피하거나 틀어 박혀서는 그 무엇도 변화하지 않는다.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삶의 기회 조차 잃는 것이다.
로렌츠 역시 새로 순수한 사랑을 만난 이후 빛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우리의 삶은 빛과 어둠이 반복된다.
마치 태양이 지고 밤이 된 후 다시 새벽이 오듯.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를 어둠에 가둘 필요가 없다.
또 다가온 어둠에 좌절하여 어둠 속의 삶을 원망하거나 포기해서도 안된다.
어둠도 삶의 일부이지만, 곧 지나갈 과거라 믿고 "사람은 언제나 다시 새로 시작할수 있어"라는 마음가짐으로 시간의 속에 흘러 보내야 한다.
다가온 운명이라면 맞서면 되고, 설사 숙명이라 하더라도 지나가면 그만인 것이다.
우리는 운명과 숙명속에서 자유로운 존재이며, 선택은 온전히 우리의 몫인 것이다.
우리 삶속에서 태양은 사랑이고, 태양이 사라지던 날, 다가올 태양이 빛나는 날을 기다리고 준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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