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으며 제자백가를 만나다
채한수 지음 / 김영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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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들의 철학과 삶에 얽힌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면 그 혼란의 시대에 싹튼 모든 것들이 신기하기도 하고 과연 난세가 영웅과 시인들과 철학자들을 만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NHK의 타이라노 키요모리라는 일본 대하사극을 보면서 처음에는 제목에 끌려 이게 뭐지 하고 봤다가 빠져드는 것이었다. 가마쿠라 막부가 생기기 전 1100년대의 일본은 무사세력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혼란 그 자체였다. 타이라씨의 헤이케와 미나모토 가문의 겐지 그리고 천황 가문의 혼세기의 이야기였는데 중앙정권에서 태정대신이라는 막강한 힘을 얻은 타이라노 키요모리가 법황의 아들인 다카쿠라천황에게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어 얻은 아들이 안토쿠 천황이 되면서 우리나라의 외척세력처럼 권력을 휘둘렀는데 키요모리 사후에 헤이케가문이 뿔뿔이 흩어지고 마지막 해상 전투에서 비극적으로 끝났던..아직 어린 안토쿠 천황이 외할머니와 함께 파도에도 수도가 있습니다 라는 말에 이끌려 빠져 죽었고 이후 겐지가에서 동생 요시츠네를 죽이고 요리토모가 가마쿠라막부를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무신들이 집권하게 된 계기가 된 키요모리의 이야기이다. 겐페이 전쟁으로 알려져 게임이나 만화나 사극 주제로 너무나 유명하다. 키요모리, 차나왕 요시츠네, 요리토모, 요시츠네의 부하인 벤케이, 당시 시인과 승려로 유명했던 사이교의 벚꽃아래 죽기를..같은 와카가 아름다웠다라는 점을 보면서 혼란의 전국시대에는 후대에 전해지는 엄청난 불가사의한 무언가가 있구나 느껴졌다.

 

이 책도 마찬가지. 천천히 걸으며 제자백가의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다 보니 그 어지러운 세상에 피어나는 지혜를 읽을 수가 있었고 재미있는 역사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어렵고 지루한 책인 줄 알았는데 일본 대하사극처럼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다 재미있었고 흥미로울 줄이야. 장자에서 한비야 열자의 스승이라는 호자(장자의 생각이나 사상을 대변하는 장자의 분신이라고 여겨짐) 유가 도가 묵가 음양가 법가 명가 종횡가 잡가 농가 등 아홉 유파로 나뉘고 후에 소설가가 덧붙여져 이 때문에 제자백가를 구류십가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에 여러 학파들이 난립했고 그 여러 학파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기 때문에 각각의 파에 얽힌 혹은 사상가에 얽힌 뒷이야기와 사자성어와 역사의 뒤안길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한 난세에는 시대의 부름과 물음이 각각 다양했을 것이다. 그 질문에 답하는 사상가들의 대화를 지은이인 채한수님이 매우 잘 엮었다. 제자백가의 책들을 보기는 했지만 이 책이 가장 접근하기 쉽고 재미있었다. 제자백가의 놀라운 점은 잘 알다시피 기원전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는 서양의 문명만큼이나 발달한 시대로 이러한 사상가들의 사상들이 지금 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고 녹슬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주가 멸망한 기원전 770년 춘추시대가 시작되고 춘추시대를 이어받은 전국시대의 기점이 기원전 480년 전후가 되며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한 것이 기원전 221년이라 춘추전국시대의 기간은 550여년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방대한 제자백가의 저서나 사상을 모두 섭렵하고 아우를 수는 없었고 그들이 남겼던 여러가지 교훈적인 이야기들을 재구성하여 독자들에게 옛 사상가들의 사상들의 경이로움과 지식이 주는 즐거움을 전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한 책 같다. 역시나 대표적인 장자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장자>에 실린 우화들을 소개해 주고 있는데 역시 유명한 사마천의 사기등도 같이 보여주고 있어서 이 책을 한권 읽다보면 온갖 지식을 접하게 되는 것 같다. 장자에 나오는 대표적인 우화인 응제왕편만 올려보겠다. 옛날 설화를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서양의 카오스처럼 중국에서 태초엔 <혼돈>이 있었다. 이런 혼돈에게 숙과 홀이라는 제왕이 자주 찾아왔는데..둘은 혼돈에게 융숭한 대접에 대한 보답을 하기로 하고 일곱개의 구멍을 뚫어 어떤 형태를 주고자 했는데 마지막인 7일째 되던 날 마지막 구멍을 뚫린 혼돈은 홍수처럼 검붉은 피가 쏟아지고 세상은 거대한 홍수가 되었고 태산처럼 세상 중앙에 있었던 혼돈은 친구들의 실수로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이다. 있는 그대로 존재해야 할 혼돈에게 인위적인 무언가는 이렇게 세상을 망하게 할수 있다는 진리를 가져온다. 현대인들에게 특히 자연훼손과 같은 일들은 자연을 죽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어떻게 그 옛날에 이런 교훈을 주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만물은 없다가도 생기고 또 있다가도 없어지는 이야기 속에 의인화된 숙과 홀이 여기에 해당되며 혼돈은 자연 그 자체였는데 숙과 홀의 부질없는 실수로 혼돈이 죽었고 천지는 개벽하고 만물이 분화되어 가지가지 형태로 생겨났다는 것이므로 숙과 홀의 실수를 바로잡는 일 곧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장자의 큰뜻일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600페이지가 넘는 책에 여러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고 저자의 풀이가 잘 되어 있어서 정말 제자백가의 사상들을 조금씩이나마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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