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빈리 일기
박용하 지음 / 사문난적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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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색깔의 제목과 삽화가 은은한 오빈리 일기는 표지부터 단아하다. 어느 달에는 어떤 농사일을, 어떤 휴식을 취했는가 어디가 아름다웠는가 사진도 가득한 그런 잔잔한 에세이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자의 서문을 읽어내려가자 저자가 어떤 마음으로 오빈리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일년동안 억지로 기록하기 시작했다는 매일의 글짓기가 바로 이 책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빈리에 오기 전 도시 생활을 하다가 2001년에 경기도의 한 시골로 이주했다는 글부터 시작된다. 백여호쯤 되는 마을에서 인심이 고약했다고 한다. 도시에서의 냉혈한 모습, 돈밖에 모르는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있었던 것이다. 지독히 배타적이면서 함부로 간섭하는 사람들에 치여서 살았나보다. 치를 떨다 이 곳 오빈리로 다시 옮긴 것이 2008년이고 이 글은 2008년을 걸쳐 2009년까지의 기록인 셈이다.

 

오빈리에서의 삶의 시작은 의외로 쉬웠다고 한다. 먼저 손을 내밀어 인사해 준 이웃집 할아버지는 350여평의 땅도 조건없이 부쳐먹으라고 빌려주셨고 흙냄새를 맡으며 글을 쓰는 일이 시작되었다. 그런데....저자의 이 서문에서 나는 요 근래 겪었던 일들이 생각났다. 정말 인간에게 치사하고 더러웠던 일...예전에 겪지 못했던 일을 한 번 겪었던 것이다. 많은 정성과 시간을 쏟았던 곳에서 그냥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이유도 모르는 채로..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칭찬할 때는 살랑살랑 구름마차도 태웠다가 혹은 뭐든지 자기가 아는 것이 진리인양 하다가.. 뭐가 제대로 되지 않는 부분을 못참아 하는지라 총대를 매고 살짝 지적했더니 밑도 끝도 없이 쟤 싫으니 아무것도 시키지마 하는 데에는 그 억울함이야 말할 것도 없고....암튼 저자의 그런 마음이 이해가 되었고 오빈리에서 느꼈던 정들이라도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오빈리에서조차 비슷한 사람들만 있었으면 어쩔 뻔 했는가..

 

저자가 적어내려가는 오빈리 생활은 농사일도 물론 적혀있고 자연의 모습도 아름다운 부분들이 많지만 세상살이에서 느껴지는 연륜과 생각들이 거침이 없어서 너무 신선했다. 그리고 시원했다. 그가 내뱉는 일갈과 한숨에 그리고 기쁨에 푹 빠져서 읽었던 것 같다. 어느날은 여호와의 증인이 왔다. 딸내미가 1박 2일 수련회를 갔다. 강릉에 계시는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다. 햇마늘, 민들레 말린 것, 어머님편에 보냈다. 나흘만에 잡초를 제거했다. 점심때 뒷집에서 떡라면 끓여놓고 불렀다.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먹고 커피까지 얻어마시고 왔다...등등 매일매일의 일상을 어떤 날은 단 한 줄이라도 적어내려갔다. 와....이거 속풀이 되겠다 싶다. 나도 이제부터 일기를 써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거침없이 나만의 하루를 그냥 적어봐야 겠다는...

 

그러다 어느 날은 아침부터 갑자기 분노가 끓어올랐다는 일기...우울증 환자가 내일부터는 정말 밝은 일들만 있을거야 아무리 다짐을 해도 다음날이면 우울해 지듯이 그도 지난날의 일들이 자꾸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 자꾸 떠올려서 뭐해...아..딱 내 심정이었다. 뭐 그리 집착해..화 내봐야 너만 손해야 라고 자신을 향해 써놓은 글들이 마치 내가 써놓은 글들 같았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책...시골로의 귀농의 삶을 꿈꾸는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책...무엇보다 내게 좋은 책이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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