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사랑 - 다섯 영혼의 몽환적 사랑 이야기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늦은 밤. 식구들은 오늘따라 각자의 사정으로 귀가가 늦어지고
집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있는데 거기에 날씨까지 흐려주면
이 상황은 바로 공포물 접하기 최고이면서 동시에 최악의 조건이다.
하필 내가 새빨간 사랑을 손에 든 날이 그러했다.
가족들의 갑작스런 늦은 외출과 적당히 흐린 날씨...
게다가 나는 사실 겁도 많아서 무서운 이야기를 접하면 며칠동안은 자꾸 뒤를 돌아린?되고
혼자 오싹한 기분이 들어서 벌벌 떠는 주제에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한다-_-;
그렇게 최고이면서 그래서 최악인 조건에서 나는 새빨간 사랑을 읽게 되었다.

책을 처음 접했을때의 표지의 아름다운 소녀의 강렬함은 첫번째 이야기 <영혼을 찍는 사진사>를 읽은 후에는 오싹함으로 변해버렸다. 소녀는 잠든 걸까 죽은 걸까 하던 의문을 날려버림과 동시에 소녀의 생사여부를 떠난 인간의 경악스러운 욕망으로 몸서리쳐졌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죽은 자가 아니다. 살아있는 사람. 뒤틀린 욕망을 움켜잡으려고 숨죽여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었다. 멈출줄 모르고 폭주해버린 욕망이 죽은 자를 또 한번 죽게 하고 새로운 희생자를 만들어냈다.
첫번째 이야기의 으스스함에 잠시 호흡을 고르고 두번째 이야기 <유령소녀 주리>로 넘어가자 이번에는 견딜 수 없는 쓸쓸함이 나를 덮친다.  평소에도 친구들로부터 '애정결핍자'라는 놀림을 받는 나에게 주리의 상황은 받아들이기 힘든 버거움이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못하고 아무도 내 말을 듣지 못하는 소통의 단절. 게다가 그 단절은 일방적이라서  서글픈 메아리만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슬픈 메아리를 끝낼 수도 없는 상황이 영화 '하이랜더'를 떠올리게 했다.
절대 죽지 않는 운명의 주인공. 다른 사람들의 삶은 곁에서 끝까지 지켜봐줄 수 있지만 정작 그 자신의 삶은 끝도 없고 그래서 누구도 그 사람의 끝은 지켜봐 줄 수 없는... 늘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을 반복해야만 하고  또 떠나보내기 위해서 다시 맞이해야 하는 자의 슬픔과 고독. 그래도 '하이랜더'의 주인공은 "관계"를 통해 형성된 상호간의 슬픔과 고독이지만 <유령소녀 주리>는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마음 밖에 없는 존재"
그 마음을 전할 수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받을 수도 없다.
그야말로 마.음.만 존재하는 유령소녀 주리.
씁쓸한 말투가 아닌 오히려 당당하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툭툭 내뱉던 주리의 말들이
점차 그 아픔을 토로하며 급기야 너무도 나약한 진심을 바닥까지 드러내 보였다.
자신을 향한 진짜 웃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을 수 있었던 지금이 너무도 늦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체념하면서...
세번째 이야기 <레이니 엘렌>
시부야거리에서 사하라는 생각한다. 거리의 인파들은 수조속의 열대어같고 자신은 흙냄새나는 민물고기같다고.
소설가가 되고 싶던 꿈은 종말을 맞이하고 감흥없는 상대와 욕구를 해결하며 사하라는 표류하고 있었다.
서로의 등만 바라 볼 수 있을 뿐인 거리에서 사하라는 그리고 리카는 무엇을 찾아헤매던 것일까.
그들만의 마쓰리로도 그들의 공허함은 채울 수 없을텐데... 그저 너울너울 춤추는 풍선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네번째 이야기 <내 이름은 프랜시스>
이번에는 미니디스크를 통해 녹음된 R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조금 소외된 학생이었던 R의 담담한 이야기인가 했는데 R은 자신의 악벽을 털어놓고 그 악벽으로 인한 상처와 그 상처보다 더 큰 가족들의 외면이 가져온 전혀 다른 방향의 인생을 말한다. 지금까지의 사연으로도 충분히 기구한 삶을 산 R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 사연은 앞으로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였다. 진짜 이야기는 M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저 두 사람은 영혼으로 묶여 있구나.'
하고 M이 데려간 테이블나이트에서 깨달은 순간 내렸을 R의 결정은 이미 예상할 수 있던 결정이었음에도 충격적인 행동이었다. 그저 스토리만으로는 경악할 법한 이 이야기에서도 작가의 확신어린 문체로 나는 결국 설득당해서 '그렇게라도 해서 좋다면 뭐 그건 그것대로 좋겠지' 싶은 마음까지 들고야 말았다.
다섯번째 이야기 <언젠가 고요의 바다에>
소년 가쓰야가 소네 아저씨 그리고 공주님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월성인인 공주님이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것은 바로 달의 물뿐이다. 그리고 그 유일한 음식을 모으기 위해 필요한 월광렌즈. 그리고 월광렌즈의 비밀.
고요의 바다에 가고 싶다는 공주님의 말에 언젠가 자신이 데려다 주겠다고 약속한 가쓰야는 월광렌즈의 비밀을 알고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주인공도 소년인데다가 월성인이라니. 이번 이야기는 꽤 귀엽네. 하는 순간 뒷통수를 맞고 말았다.
이 굉장한 이야기꾼에게 또 당하고 만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떠드는 반전따위가 아니다.
<유령소녀 주리> <내 이름은 프랜시스>는 제목에서 이미 내용 혹은 장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가 끝에 가서 한번 더 살며시 하지만 확실하게 내 심장을 조여왔다.
옮긴이의 말처럼 그저 공포물로만 보려면 부족한 점이 많을 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작가만의 따스하면서도 서글픈 감성으로 다른 흔한 공포물보다 더 묘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도시의 그늘에 서식하는 다섯영혼의 사랑이야기'라는 번역가의 말.
도시의 그늘 그 외로운 곳에서.
외로운 자매, 샐러리맨 사하라, 유령소녀 주리, R 그리고 소년 가쓰야의 새빨갛게 강렬해서 더 외로운 다섯 가지 사랑이야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의 설렘
히피의 여행 바이러스 - 떠난 그곳에서 시간을 놓다
박혜영 지음 / 넥서스BOOKS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만 유독 심한거 같은 출판계의 유행

최근의 출판계는 2가지 종류의 서적에 집착하는 것 같다.

바로 여행서적과 자기개발서적.

넘쳐나는 여행서적 중의 하나인 "히피의 여행 바이러스"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은 제목이였다.

히피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기분좋은 방랑과

바이러스라는 뿌리칠 수 없는 느낌이 이 책을 잘 요약해주었다.

 

시간순서도 공간순서도 없는 이 책은 구성에서 마저도

저자의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여행지 자체의 소개나 숨겨진 명소를 털어놓거나

화려한 문체로 사람들의 마음을 확 사로잡는 기교도 없는 이 책의 매력은

떠난 자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가 아닐까?

어디에 있는 무엇은 유명하니깐 꼭 보고 어떤 나라에 가면 반드시 무엇을 해보고

하는 식의 치밀함이 없는 작가의 여행 방식이

나를 편안하게 자신만의 여행길로 안내해주었다.

동행자가 아닌 너만의 여행을 너도 언젠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조용히 격려해주는 태도로.

수많은 여행서들이 자신만의 여행담을 늘어놓으면서

조금은 뻐기는 듯한 태도로 나는 여행의 베테랑!

이라고 외쳐대는 듯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진짜 여행의 베테랑 같은 그녀는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해주었다.

어쩌면 불완전한, 그래서 더 공감할 수 있는 그녀의 여행이야기.

 

그녀의 말처럼 여행은 돈.이 아닌 용기.가 필요한 거 같다.

떠날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 하나만 있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나만의 여행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겠지...

차분하게 읽을 수 있는 여행서임에도 다른 여행서에 비해 더 오래 더 멀리 떠나고 싶게 만드는

확실한 바이러스를 가진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케터는 새빨간 거짓말쟁이 - 마케팅을 강력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의 힘
세스 고딘 지음, 안진환 옮김 / 재인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한때 광고기획자를 꿈꾼적이 있었다.
문화를 반영하고 때로는 이끌어 가기도 하던 신선함의 상징 광고!
하지만 막상 광고에 대해 깊이 들어가서 공부하게 되자
광고는 마케팅이라는 거대한 공간에서 작은 부분일 뿐이란 것을 깨닫고
큰 그림인 마케팅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접하게 되는 이 책 "마케터는 새빨간 거짓말쟁이"가
나에게 마케팅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것인지 큰 기대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 '세스 고딘'은 그 유명한 '보랏빛 소가 온다'의 저자였다!
베스트셀러일때부터 계속 봐야지 봐야지 했던 그 책은 매번 기회가 닿지 않았는데
결국 그의 신작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책만으로도 그가 왜 그토록 유명한지! 그의 책이 어째서 화제가 되고 신뢰받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마케팅.
그래서 시대에 따라 사람들의 삶이 변화하듯이
마케팅도 시대에 발 맞추어 변화하게 마련이므로
원론적인 책들보다 마케팅에 대한 새로운 전략과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이 책이 고마웠다.

이 유쾌한 저자는 갑자기 마케터는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오히려 소비자들이 거짓말쟁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와는 별개로

자신이 믿고 있는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따로 있고
그럼에도 믿는 것과 별개로 행동하기도 한다.
이러한 언행불일치의 소비자들이 마케터보다 더 심한 거짓말쟁이라는 저자의 말에 누가 반박할 수 있을까?

내가 배운 얄팍한 지식의 마케팅은 대상선정, 분석등이 였는데
저자는 이러한 대상선정 자체에도 사람들의 다양성, 세계관의 차이등을 이야기하면서
얼마나 사람들을 몇몇 집단으로 나누어 마케팅을 행하는 것이 위험한지,
소비자들의 욕구에 일원화란 있을수 없으므로
그들을 한 집단으로 통일체로 크게 보는 것은 말도 않되며
심지어 그들을 모두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조차 위험하다고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소비자들이 얼마나 비이성적인지는 개개인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저자가 지적했듯이 광고의 영향력은 이미 현저히 낮아졌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이성적인 소비보다는 비이성적인 소비를 더 많이 하고 있다.
이런 비이성적인 소비가 가능한 것은 우리가 최초의 판단에 부합하도록 지각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졌고
꼭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들도 너무 많아져서 그런지
소비자들은 잔인한 공격에서 살아남기위해 순간적인 판단을 내린다.
그 순간적인 판단이 비이성적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러한 소비자들의 비이성적인 그래서 어떤 선택을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을
저자는 "스토리"로 해결해보자고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변화시켜서
팔고자 하는 물건을 그 사람에게 설득하는 것이 마케팅이라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사람들의 세계관을 변화시키는 것은 시간과 돈이 충분하지 않으니
차라리 특정한 종류의 세계관을 지닌 사람을 찾아서
그 세계관에 맞춰서 당신 스토리의 프레임을 짜라고 한다.
마케터들이 자신들이 강조하고 싶은걸 강조한다고
소비자들이 그걸 믿을수는 없다. 오히려 의심할수는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그들이 내세우고 싶어하는 그 무언가를 "스토리"로 알아내고 발견하면
마케터들에게서 들었을때보다 몇천배는 더 믿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품이야 어찌되었든 결국 광고대신 "스토리"로서 포장만 잘하면 마케팅은 성공하고
책 제목처럼 "마케터는 새빨간거짓말쟁이"가 되어도 된다는 걸까?
대답은 "아니다"
여기에 저자는 한가지 조건을 붙였다.
속임수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는 있지만
또한 망하는데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신뢰를 얻는것이 관심을 얻는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않고 이야기해 주었다.

"스토리"로 마케팅은 완전히 성공할 것이라는 둥의
달콤한 이야기만 해주는게 아니라 "스토리"를 통한 가능성과 왜 그래야 하는지를
책 하나 팔고자 하는 판매원의 입장이 아닌 자상한 선배의 입장에서 들려주면서
책의 마지막까지도 계속 귀여운 참견을 멈추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주받은 피 블랙 캣(Black Cat) 13
아날두르 인드리다손 지음, 전주현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너무도 인간적인 추리소설!

작품 해설을 통해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의 집필 당시 전제조건을 보고
추리소설이 이렇게까지 인간적일 수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흥미를 위해 튀는 캐릭터를 만들고 자극적인 소재를 더욱 자극적이게 묘사해 나갔다면
이 소설은 그저 한편의 적당한 추리소설밖에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은 집필 당시
'아이슬란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쓴다'
란 단순하고도 의미있는 전제조건을 걸고 이 작품을 완성해 감으로써
진실함으로 독자들의 내면 깊은 곳까지 침투해 올 수 있는 특별한 추리소설을 써낼 수 있었다.
 
아이슬란드.
이 낯설고도 멀고먼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란 무엇인가?!
"단일민족 국가인 데다가 다른 민족과의 결혼이 드물기 때문에 아이슬란드는
그야말로 유전학 연구를 위한 산 실험실과 다름없다는 것이었다."

라는 구절이 작가가 이 소설을 써내며 염두에 둔 기본사항을 잘 나타내준것 같다.

도입부의 살인사건으로 밝혀진 피해자에 의한 더 심한 희생자들...
피해자의 피로 얼룩지게 된 희생자의 또 다른 작은 생명.
저주 받은 피는 단순한 의미의 "저주"가 아니였다.
중반부에 들어설 즈음에 느낀 제목의 타당성이
후반부로 갈수록 또 다른 더 큰 의미의 타당성으로 마음을 아프게 흔들었다.
저주 받았지만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작은 생명은
또 다른 의미로 이미 저주 받은 피를 지니고 있었다.

범인을 쫓는 것이 아닌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 이 소설의 방식이다.
미련할 정도의 구식수사 방식으로 때로는 시간도 낭비하고
희생자 가족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는 이 소설의 주인공 에들렌두르 형사는
자신의 자식도 제대로 건사 못하는 불완전한 캐릭터로

조금은 나약한 그래서 더 친근한 평범한 아버지이자 한 인간이다.
그래서 그를 통해 알게 되는 사건의 진실들은
명석하고 때로는 장난스럽고 날카로운 다른 추리소설 캐릭터를 통해 보는 사건과는 전혀 다르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사람다운 사람이 마주보게 되는 사건은 그저 흥미를 유발하는 소재가 아닌
우리와 가까운 현실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죽은 것들은 우리 세계에서는 쓸모없는 것들입니다.
시체도 마찬가지죠. 감성적이 될 필요도 없어요.
영혼은 이미 떠났으니까.
찌꺼기만 남았고, 찌꺼기는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의학적인 관점에서 이걸 보셔야 합니다.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시겠어요?"

일부이겠지만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의 위에 있다는 의식을 가진
의사들의 편협한 이기심을 살며시 비춰주고
피해자들을 또 한번 더 심한 피해자로 만들어버린 권력남용의 경찰의 추악한 모습으로
사회의 외면하고 싶던 어두운 면도 마주하게 한다.

마지막의 시원한 결말을 원하는 독자에게 이 소설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작가가 결말을 내주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작가가 사건 해결을 모호하게 했다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에 얽힌 인물들이 마치 내가 아는 사람인것 처럼
그들의 아픔과 슬픔이 전해져 오기 때문에 책을 덮고서도
한참동안 무거운 마음을 씻을 수 없다.

쥐어짜듯 인물들의 슬픔을 묘사한것도 아닌
오히려 담담하다고 할수 있는 작가의 묘사에도 이상하게 그 담담함에
작가의 서글픈 마음이 전해져 온다.
두뇌회전에 회전을 거듭하고 빠른 전개를 원하는 독자라면 결코 얻을 수 없는
무거운 진실과 슬픔을
완전치 못한 형사를 통해 더욱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머나먼 아이슬란드의 한 사건이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모리 히로시 지음, 안소현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조금 수상한 음식점,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점은 일단 다른 곳에서는 맛볼수 없는 맛있는 요리에
적당히 깔끔한 인테리어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에 적당한 곳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발길을 끊을 수 없었던 이 조금 수상한 음식점은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찾고 싶을 정도의 맛은 아니고
이름은 커녕 장소조차 정해져 있지 않은
그리고 결코 누군가와 함께 갈 수도 없는
오로지 혼자서만 갈 수 있는 그야말로 수상한 음식점이다.

이곳에서 고야마는 늘 새로움을 접하게 된다.
그 새로움은 장소, 사람, 음식으로 음식점에 포함된 모든 것이다.
심지어 음식점 여주인조차도 다시 만났을때야 비로소 '아 이런 얼굴의 사람이었지'
할 정도의 희미한 사람으로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이런 조건들은
1회용 만남
1회용 식사
1회용 상대를 만들어낸다.

단 하루만 만나서 식사를 하고 약간의 대화를 하고 헤어진다.
혹은 아예 그 약간의 대화조차 없는 상대도 있다.
그리고 다음에는 다른 새로운 사람과..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새로운..

술집의 접대부처럼 외로움이나 경박한 향응을 위한
단 한번의 만남이 아니다.
오히려 때때로 더 고독하게 하고
누군가와의 만남이 아닌 사실은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되는 시간.
부담도 없고 목적도 없다.
그저 함께 식사를 할뿐.
그래서 맛볼수 있는 오랜만의 해방감과 순수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
고야마를 해제시키고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들여다 볼 수 있게 하였다.
타인을 통해서 보게 되는 또다른 나
타인을 통해서야 말로 진정한 나 자신을 알게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매번 조금 특이한 아이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단 한번뿐일 만남을 통해서 상대를 꿰뚫어봄으로써 자신에게 더 다가서는 고야마.
슬슬 위험한 책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고야마의 생각들을 그저 따라가지 않고 그 생각에 동참해서 함께 생각해 버리기 시작하면
머리가 핑핑 돌 지경이 된다.
결코 어려운 이야기가 아님에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에 대한 반문을 받는 것,
아니 어쩌면 인식했지만 외면하고 싶던 우리들 삶의 이야기들.

아라키가, 그리고 고야마가 자꾸 이곳을 찾게 되는 이유도
그것도 매일매일 미친듯이 찾는 열성이 아닌
기분 좋은 음식점으로 머리속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가
어느날 문득 '오랜만에 가볼까' 정도의.
음식점 자체에 대한 인상도 조금 특이한.
나오는 상대도 조금 특이한.
이런 '조금' '특이함'이 작가가 바라는 사회와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었다.
아주 특이한 것은 괴리감이 들겠지만
조금의 특이함이라면...
도가 지나치지 않는 적당히 조금이라면
새로운 것, 낯선것도 거부감이 들지 않고 오히려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조금 특이한 그 무엇이 사실은 "진실"이고
평범함은 오히려 두번째의 그녀가 이야기하듯이 추상성의 모습을 하고
상대에 대한 다정한 배려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나 자신이 원만하게 지내고 싶었던 이기심 때문은 아닌가하는
고야마의 생각에 끄덕이게 된다.

순수한 만남 그 자체를 가질 수 있는 곳
그래서 아라키도 고야마도 그곳으로 향하는 발길을 거둘 수 없었으리라.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계속 해제시켜서 무방비상태로 만드는 것도 알 수 없었겠지...
가상의 공간임에도 매력적인 음식점이다.
한번쯤 나도 가보고 싶은 곳이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리석은 쪽인지
나는 고독하지 않고 고독을 받아들이는 쪽도 아니다.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점은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임에 안도한다.


다 읽고 나서 다시 살펴본 각장의 제목들이 오싹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처럼 한발자국씩 한발자국씩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느낌이 들어서다.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조금 더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아주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더더욱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그저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아직도 조금 특이한 아이, 있습니다
조금 특이한 아이, 끝났습니다

판타지적 요소는 어디에도 없으면서
판타지 분위기에 심지어 추리소설 기분이 난 이 소설로
혼란스러운 한편 이 작가에 대한 깊은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그래서 조금 두렵다.
소설속 고야마나 인물들의 직업이 이 작가의 원래 직업과 일치하는 면이 있어서
자전전소설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래서 이 작가도 어느날 갑자기 아라키처럼 증발해버리지나 않을까 싶어 너무나 걱정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