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갈증, 실컷 논 아이가 명문대 간다
이미경.이화득 지음 / 서울문화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교육공화국>이라고 불리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공화국 시민으로서 행복한 학생들은 얼마나 될까?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교육열과 막대한 사교육비 지출비율,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학생들의 공부 시간...너도나도 교육을 이야기하고 좋은 대학이 목표가 되어 엄마 아빠 아이, 아니 온 집안이 함께 뛰고 있는 이 대한민국에서 교육때문에 행복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초등학생이 된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 여전히 매일 드는 의문이자, 나를 늘 긴장하게 하는 물음이다.


아이가 4살쯤이었을까, 강남에서도 유명한 동네에 잠시 살았던 나는 놀이터 나가기가 무서웠었다. 놀이터에 나가면 3~4살쯤 되는 우리 아이 또래들 엄마들이 늘 나와있었고, 항상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떨게 되면 늘 결론은 항상 아이들의 교육이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당시에도 조기 한글교육 바람이 거세게 불 때였고, 각종 한글교육 교구들이 -그것도 아주 고가의- 범람하던 때였기에 엄마들은 늘 어떤 것이 좋다, 어떤 것을 시켜야 한다...등등의 정보들을 주고 받았다. 나도 첫 아이라 교육에 관심이 무척 높았고 경험없는 육아를 하며 도대체 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늘 확신이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그 엄마들의 말에 귀기울이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교육 정보에 목말라 있는 상태였다고 하더라도 아닌건 아니다 싶었다. 3~4살..기껐해야 3돌이 채 지나지 않은 아이를 위해 백만원이 넘는 한글교육 프로그램을 시켜야 하는 이유 자체에 공감할 수 없었고, 다른 무엇보다 그것이 꼭 거쳐야 하는 일종의 진리처럼 여겨지는게 아주 불편했다. 엄마들은 그런 교구는 일단 기본이었고, 그 외에 부가적으로 어떤 것들을 시켜야 하는지 날이면 날마다 정보를 주고받았다. 그래...정보를 주고받는 것 까지는 괜찮다 치자. 더 가관인것은 그런 교구를 사지도 않고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지도 않았던 나를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엄마, 아이를 방치하는 나쁜 엄마로 여기는 그들의 태도였다. '어떻게 4살이나 되었는데 한글을 아직도(!!) 안 가르치냐...'는 것이 그 엄마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난 지금 궁금하다. 그 엄마들은 지금 그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시키고 있는지...그렇게 비싼 교구로 '남보다 빨리' '먼저' 한글을 가르치고 싶어했던 그 마음으로, 여전히 선행 학습과 비싼 학원 순례로 아이들을 돌리고 있지나 않은지 심히 걱정된다. 중간에 어떤 깨달음으로 아이들을 편안하고 여유있게 키우게 된 엄마들이 생겨났길 진심으로 바란다. 솔직히, 이렇게 말하는 내가 아이를 잘 키웠다고 말하기엔 스스로 부끄러운 점이 많다. 하지만 그때, '4살임에도 한글을 몰랐던' 우리 아이는 지금 책을 너무나 사랑하고 교내 글쓰기 대회에서 상도 잘 받아오며, 성적도 좋은 그런 아이이다.


서론이 길어졌지만, 어쨌든 옛날부터 조기교육과 엄마의 조급함이 근원이 되는 학습에 늘 의문을 가졌기에 이 책은 나에게 또 한 번의 시원함을 선사한다. 이 책의 저자는 고등학교, 중학교에서 오래도록 지리과목을 가르치고 계신 현직 선생님이자, 세 아이들의 아빠인데 조기교육, 선행, 학원, 과외...이런 것들의 폐해에 대해 현장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아주 세세하게 풀어내면서 어렸을 땐 아이들은 무조건 놀리라~는 주장을 한다. 이 책은 내가 평소때 가지고 있던 소신을 확신으로 바꿔주었다고도 말 할 수 있을 정도로 근거가 있다. 어떤 학술적인 데이터나 이론, 저명한 학자의 연구 결과로 도배된 다른 학습서에 비하면 이 책은 그저 학부모들에게 조언하는 선생님의 '조근조근한 말투'로 씌어진 평범한 책이라고 할 수 있지만, 겪어보지 않고서는 도무지 경험할 수 없는 생생한 아이들의 실제 사례들을 현장에서 보고 느낀 바 그대로를 기술했기에 가치가 있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을 둔 엄마들이 초등학생 아이들을 둔 엄마들을 만나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있다. "초등학교 때는 놀려.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초등생 엄마들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대학입시와 직접적으로 하등 관련없는 초등학교 시험에도 일희일비하고, 옆집 아이 뒷집 아이, 하다 못해 건너 건너집 아이의 성적과 경력까지 쫙 꿰고 앉아 우리 아이가 그 아이보다 더 잘하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비는 것. 누구나 자기 아이가 탑이 되길 바라고, 발군의 실력으로 경쟁에서 이기기를 바라는 마음. 그 어느 엄마들 보다 초등생 엄마들이 그것이 가장 심할 것이다.


얼마나 시야가 좁은가...고등학교 때가 되어 진짜 공부해야 할 시기에 아이들은 나가 떨어진다. 물론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를 잘 했던 아이가 죽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잘 하는 케이스들도 많지만, 반대로 그렇지 못한 경우도 상당하다. 그렇다면 그 아이들의 자리엔 초등학교 때는 튀지 않던 그 누군가가 뒷심 발휘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인가? 이 책에선 잘하다가 떨어지는 아이들과, 잘 못하다가 올라오는 아이들에 대한 생생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고, 그것이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엄마 아빠도 잘 모르는 우리 아이의 학교 생활, 그 중심에 있는 현직 선생님의 경험담과 조언은 막연한 추측과 예상으로 아이의 미래를 보고 있던 나에게 하나의 좋은 실례로 다가오니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과의 경험담 이외에, 큰 아들(지금 대학생)을 키운 이야기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례가 된다. 게다가 이 아들의 중학교, 고등학교, 수능 성적표를 실사로 공개하며, 초등학생 때는 충분히 놀고, 중학교 때까지도 중간 성적으로 신나게 놀던 아이가 고등학교 때 어떻게 마음을 먹고 공부를 시작하게 되고 대학을 가게 되었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 책은 소수 공부 잘 하는 몇 %의 아이들을 위해 쓰여진 책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다. 저자도 밝히고 있지만 늘 놀기 좋아하고 놀고 싶어하는 중간 정도의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둔 부모를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실컷 놀려라~라고 하는 것을 방치와는 다르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놀려라>라는 말 속에는 중,고등학생 아이들에게 충분한 휴식과 수면을 보장해 주라는 것, 인스턴트 식품 말고 집에서 정성이 들어간 밥을 먹이라는 것, 채근하지 말고 공감하라는 것, 책도 자기가 스스로 선택하게 하라는 것...등이 포함된다. 실컷 놀려라~라는 말속엔 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원하는대로 그대로 내버려 두라는 말이 아니라, 엄마 아빠와의 충분한 교감속에 아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라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놀리는 것>과 관련해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주었던 구절이 있는데...


"눈치 보고 야단맞으면 노는 것과 마음 편하게 실컷 노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눈치 보며 노는 아이는 아무리 많이 놀았어도 '한번도 제대로 놀아보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마음 편히 논 아이는 별로 많이 놀지 않았어도 난 '실컷 놀았다'고 생각한다. – 137쪽"


"공부할 마음이 없다면 차라리 놀리는 게 낫다.-쓸데없이 학원비 내면서 선생님들 눈치나 살피고 시간만 때우다가 집에 가는 허접한 생활태도가 아이에게 습관으로 굳어져버리면, 그건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미래를 걱정해야 할 만큼 심각한 문제가 된다...'난 실컷 놀았다'는 기억이라도 심어주어라. '난 실컷 놀았다'는 기억-그것은 나중에 철이 들었을 때 '나도 공부를 하고 싶다'는 강한 동기를 만들어준다. – 133쪽"


"공부시간도 아닌데 공부 소리를 계속해 대는 것도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행동이며 부모가 공과 사를 구별하지 않는다면 (계속 공부 소리만 해대면) 아이 입장에서도 공과 사를 구별하지 않는다.(계속 놀려고만 한다.) – 92쪽 "


얼마나 찔리는 말이던지. 왜 우리 큰 아이가 노는 시간이 그렇게 많으면서도 어디 나가서는 공부만 한다...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엄마가 보기엔 하루 30분 공부 외엔 계속 노는 것 같은데도 아이는 뭐가 불만일까 고민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가 놀면서도 엄마 눈치를 보게 만들었단 걸 깨달았다. 솔직히 밑도 끝도 없이 노는 아이를 바라보는 조급하고 욕심섞인 우려의 마음은 특별히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 될 수 밖에 없다는 것.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내 그런 의도가 아이에게 은연중에 전달되어지길 바라는 무언의 압력...이것도 일종의 폭력이리라. 놀 권리, 자기 시간을 마음껏 쓸 권리가 있는 아이들에게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조언이 아닌 지시와 압력이 아이들을 결국 병들게 하는건 아닌지 반성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정말 어떻게 하면 될까? 한 번 나가면 저녁 해지고 나서야 들어오는 아이들을 키워 본 엄마라면, 반신반의하겠지. 그렇게 하다가 우리 아이 망치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고..솔직히 나도 그런 생각이 아주 안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놀리라'는 것은 아이에게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고 거기엔 여러가지 다중적인 의미가 포함된다. 요새 '놀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아이'는 '학원을 많이 다니지 않는 아이'와도 같은 말이다. 많은 아이들이 학원을 다녀오고 저녁 먹기 전 시간 30분~1시간 정도만 놀 수 있다. 그것도 엄마가 너그러운 부류의 아이들에 국한된 이야기이다. 그러니, 실컷, 마음껏 놀려면 학원을 다닐 수는 없다. 과연 학원을 안다니고도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잘 따라갈까? 학원에 과외에 선행을 하는 아이들과 경쟁하려면 좀 더 해야될 처지에?


"학원 위주로 공부한 아이들의 실력엔 거품이 많다. - 학원을 다니지 않거나 다니더라도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혼자 공부했던 아이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성적이 올라간다. 당연하다. 누군가 떨어졌다면 누군가는 올라가야 앞뒤가 맞는다. – 121쪽"


"학원에서는 오랜 경력의 기술자들이 엑기스만 쏙쏙 봅아 반복 훈련을 시키고 시험을 앞두고는 방대한 기출문제 중에서 골라 뽑은 족집게 문제로 마무리 공부를 시켜준다...혼자 공부하는 아이들은 이렇게 프로들의 후원을 받는 아이들을 결코 따라갈 수 없다. 특목고는 그렇게 훈련시킨 아이들 중에서도 뽑혀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하지만,범위도 예상문제도 없이 자기 실력으로 풀어야 하는 고등학교 모의고사를 보면 중학교 때 받았던 등수 뒤에 동그라미 하나가 더 붙는 아이들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 124쪽"


"언어는 사교육비를 많이 쓰는 학생일수록 점수가 낮게 나왔고, 영어는 사교육비와 아무 관계가 없었고, 수학도 1,2등급 맞는 학생이나 5등급 이하로 맞는 학생들에겐 사교육 효과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 140쪽 " 된다.



난 저자가 말하고 경험한 것들이 사실이라고 '믿고'싶다. 그리고 내 소신도 그러하다. 지금 내 또래 엄마들은 당장의 학교 점수와 석차와 수상경력에 눈이 멀어 아이의 더 먼 미래와 꿈을 간과하고 있다. 학원으로 과외로 좀 더 좋은 교육 정보로...중고등학교 아이들은 학교 수업 시간에 잠을 자고 학원과 인강으로 공부를 하는 세상..소신있게 살고자 하는 엄마들은 이상주의자에 잘난척 하지만 곧 후회하게 될 왕따 엄마가 되는 이 세상에서...


책 뒤에는 아빠의 관점이 아닌 '엄마'의 관점에서 쓴 챕터가 있다. 엄마는 훨씬 더 현실적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직장인으로 사는 것, 이상주의자 아빠와의 교육관에서의 갈등, 마냥 놀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는 조급하고 곱지 않은 시선...어쨌든, 난 엄마로서 아빠의 이상주의적 교육관에 힘을 얻었고, 엄마의 현실적 고민과 갈등에 공감할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늘 바른 교육과 건강한 배움을 부르짖지만 몸과 마음은 잘 따라주지 않는 현실과 타협하는 이상주의자이니까 말이다.


지금은 아이들이 컸기에 '한글 조기 교육 바람'에서는 벗어났지만 매 순간 그런 유혹들과 '바람'들은 엄마인 내가 맞닥뜨려야 할 과제다. 지금 초등학생들은 과도한 학습과 과외, 선행의 유행에서 시들어가고 있다는 것. 여전히 학원을 보내지 않고 선행을 시키지 않으면 아이를 망치는 지름길이라 믿는 엄마들 틈에서 고군분투해야 한다는 것. 무슨 경시 무슨 경시에 아이를 내 보내고 각종 인증시험을 위해 오늘도 아이를 쥐잡듯 잡는 엄마들 틈에서...그냥 맞닥뜨리거나 피한다고 끝날 문제도 아니다. 나에겐 늘 마음에 부담감이 있다. 이 책의 저자가 이미 경험했던 현실과 사실을 엄마들에게 좀 더 알리고자 하는 노력까지 해야 할 거룩한 의무마저 든다.


아이들이 엄마 아빠 눈치 보지 않고, 성적에 매여 초등 시절, 중등시절 꽃 같은 시간을 문제집과 학원 숙제에 치여 살지 않고, 자신이 살아갈 세상에 대해 꿈을 꾸고, 그 길을 찾아가고, 실패와 성공을 맛보아 가며 그렇게 활기차게 살 세상을 꿈꿔 본다. 그렇게 자신을 믿어주고 용기 북돋아 주는 부모와 더욱 긴밀한 관계가 되는건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세상에서 제대로 역할을 감당해 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더 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낄 부모로서의 내 자신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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