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축복 속에서 자란다 - Happy Together, 우리 딸 당차게 키우기
버지니아 빈 러터 지음, 박혜란 옮김 / 들녘미디어 / 2001년 12월
평점 :
절판


첫 딸을 낳고 병원에 있을 때 29번째 생일을 맞은 기억이 있다. 수술을 한 터라 여러 가지가 불편하기도 하고,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쁨과 생소함이 엇갈리는 심한 감정의 기복을 경험하고 있을 때였다. 병원에서 주는 미역국을 먹으며, 말똥 말똥 천장만 쳐다보는 아기를 옆에 뉘어 놓으며 29번째 내 생일날 아침에 겪었던 미묘하고도 가슴 벅찬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29년 전 나의 엄마도 이렇게 나를 낳아 이런 기분을 느꼈겠구나… 29년 전 내가 태어나 생명을 갖게 되고, 이제 29년이 흘러 나도 한 생명을 잉태했구나…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때, 아니 훨씬 더 그 이전의 할머니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잉태와 생명의 신비…나와 우리 딸은 생일이 몇 일 차이로 있어 더더욱 시간을 뛰어 넘는 어떤 강한 끈으로 묶여져 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었다. 그때 흘렸던 눈물은 아마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우리 남편은 내가 생일날 선물도 못 받아서 섭섭해 하는 줄 알고 아무 말 없이 장미꽃 한 다발을 사다 주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니 그 날의 그 감동이 새록새록 하다. 목욕하기, 품어주기, 머리 빗겨주기, 옷 입히기, 치장하기, 이야기 하기, 운동과 월경, 성년과 성… 
등의 목차만 보았을 때에는 딸을 키우는 어떤 구체적인 방법론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그것보다는 엄마와 딸이 여성으로서 가지는 정신적 유대감과 그 신비한 끈을 엮어 나가는 고귀함에 초점이 더 맞추어져 있다. 

목욕이라는 행위는 물(여성의 근본이라고 설명한다)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해주고 진정한 여성성을 회복하는 것으로 풀이되며 엄마와 딸이 함께 함으로써 여성으로서의 하나의 의식이 되는 것이다. 그저 갓난 아기니까, 씻어야 되는 거니까 목욕을 시키고 안아주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을 뛰어 넘어 이 아이가 한 여성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신감을 함께 공유하고 나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성을 강조한다고 하여 사회적 통념을 그대로 따라 여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당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여성으로서의 고귀한 특성을 살리기를 권유하지만 그렇다고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순종적인 여성, 상냥한 여성 따위를 가치로 내세우지 않는다. 그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가치를 살리고 그 안에서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이다.

엄마로써 내 딸에게 비춰지는 나는 어떤 여성일까… 두렵기도 하지만 기대도 된다. 벌써 11살이 된 우리 딸과 지금이라도 여성으로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정신적 부분에 더 초점을 맞추고 싶다. 남자들이 우세하고 강하게 득세하는 이 사회에서 남자를 통해 자신을 비춰보는 자신 없는 여성이 아니라 당당하고 생동감 있는 여성으로 딸이 컸으면 좋겠다. 함께 목욕하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머리를 빗겨주고 옷을 입히고… 조금 더 딸 아이가 커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고귀한 능력에 대해 함께 나눌 수 있는 그 시간이 벌써부터 기다려 진다. 

한 여성으로서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을 찾게 해준 이 책도 참 고맙기만 하다. 나는 딸 아이와 생일이 비슷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남편이 사다 준 장미꽃도 고마웠지만 더 귀한 우리 딸을 생일 선물로 받았으니 말이다.

[인상깊은구절]
우리가 딸들을 믿고 예찬한다면 어린 딸들은 더 강한 독립심, 자기확신,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사춘기 십대라는 바다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가 딸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시험할 기회를 주고, 성장 단계마다 축하해준다면 딸은 어머니에게서 힘을 얻게 된다. 딸들은 건강하지 못한 통과의례를 극복하고 건강한 통과의례를 선택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사내아이들에게 무작정 매달리거나 사내아이들의 관심 없이는 스스로가 무가치하다고 느끼지 않으면서, 스스로가 중심이 되어 자신의 성이 요동침을 느끼면서 자신의 욕망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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