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힘 : 김승옥처럼 《무진기행》 따라쓰기 월드클래식 한국문학 라이팅북
김승옥 지음 / 미르북컴퍼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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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김승옥

가을을 시작하며 필사를 시작하다.


여름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나는 매년 점점 길어지는 여름이 두렵기까지 하다. 긴 장마와 간헐적 폭우, 열대야로 점철된 올여름도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새벽녘에 한줄기 시원한 바람을 영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왔고 동시에 또 새로운 마음이 생겼다. 


  너무 덥고 힘들었던 중1 여름 방학 이후로 참 신기하게도 봄여름을 지나면서는 시들어가는 화초처럼 말라가다가 선선한 바람이 열기를 몰고 가는 그 순간부터 기가 막히게 저 밑 어딘가에서부터 삶에 대한 기대와 의욕이 시작된다. 그러다 긴 겨울을 지내고 다시 후끈한 바람이 시작될 때 시들어간다. 그래서 가끔은 겨울잠이 아닌 여름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여름 내내 덮어두었던 다이어리를 꺼내고 몇 글자 끄적이다 '좋은 글쓰기'에 생각이 멈췄다. 책을 쓰고 싶거나 글을 쓰고 싶은 건 아닌데 1년 넘게 교재를 만들면서 좋은 문장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다. 기껏 긴 글을 쓴다는 게 아주 가끔 쓰는 책 리뷰나 드라마, 영화 리뷰가 다고, 진지한 글들은 건조한 논문이나 교재 지침서 정도이니 제대로 된 호흡으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배운 적은 더더군다나 없는데 지금까지 글쓰기에 대해서 아쉬웠던 적이 없었다. 그러다 이번 가을 첫 바람은 무슨 바람이었는지 '좋은 문장'을 갖고 싶다는 바램을 가져다 주었다. 함께 일하는 과장님에게서 <무진기행>의 김승옥 작가 책들을 필사하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날 바로 검색해서 필사 책을 구매했다.


  문장력을 키우기에는 아무래도 번역서보다는, 비문학보다는 한국 문학이 좋겠다 싶었다. <무진기행>을 듣는 순간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 동하였다. 크게 고민 없이 주문하고 받아보니 김승옥 작가의 다른 단편들도 수록되어 있어 생각보다 꽤 두껍고 묵직하다. <무진기행> 외에도 <야행>, <그와 나>, <확인해 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 <다산성>이 실려있고, 왼쪽에는 작품이 오른쪽에는 노트처럼 구성되어 있어 한 문장 한 문장 읽으며 필사하기 좋다. 꼭 마음에 든다.



눈으로 읽고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 내려갑니다.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어 보세요.

그리고 자신이 김승옥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따라서 써 보세요.

≪무진기행≫을 따라 쓰기 하며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순간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 오랜 고민에 대한 답을 조금이나마 얻게 될지도 모릅니다.

필사의 힘을 온몸으로 느끼실 수 있습니다.

따라 쓰다가 무척 마음에 드는 문구가 나오면 밑줄을 그어도 좋습니다.



  수업 중 몇몇 아이들에게는 필사 숙제를 내주기도 한다. 글씨를 정말 날려쓰거나 조사를 자주 빼먹고 쓰는 경우, 문장력이 없어 글을 써도 해석이 안되는 경우다. 간혹 성격이 매우 급한 친구들에게도 필사 숙제를 내준다. 필사 숙제를 한 아이들치고 글씨가 좋아지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꾸준히만 한다면 문장력도 좋아진다. 필사는 아이들에게는 귀찮지만 참 좋은 연습이 되는 건 분명하다.


  나도 수없이 많은 필사를 했었는데 문학 작품을 필사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손목이 좋지 않기에 하루 두 장씩만, 욕심부리지 않고 매일 꾸준히 하기로 하고, 아침에 도전하고 실천한 지 이틀째다. 책에 줄을 치거나 메모하는 걸 좋아하지 않기에 책에 펜을 댄다는 건 조금 낯설지만, 선선한 바람이 나에게 새로운 시도에 대한 기꺼운 마음을 준다.

<무진기행>은 말해 무엇하랴. 그냥 쓱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르게 좋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나에게 와닿아 그 자리에 내가 있는 것 같다.


다시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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