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는 남원 광한루원...저기 광한루와 오작교가 보인다.

남원에서 일을 마친 후 오게 되었는데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 태풍'산산'으로 비가 간간히 내렸지만...
오작교 위를 걸어보니 의외로 길고 운치가 있다.

오작교 아래 수십년된 비단잉어들...실제로 보면 그 크기에 깜짝 놀란다.

연못 속에 비친 광한루, 이몽룡과 춘향이의 사랑이야기가 시작되는 곳...

광한루도 멋있지만 그 아래로 보이는 거대한 기둥들이 더 인상적이다.

연못 안에 세 개의 섬이 있고 운치있는 다리들로 연결되어 있다.

보면 볼수록 옛분들의 멋스러움에 감탄한다.

옛사람의 손으로 만들었으나 세월이 쌓이면서 그냥 자연이 되었다. 지금사람들이 잘 지켜나가야하는데...

며칠 고단했던 몸과 마음에 쉼을 준다.

저 건너편으로 춘향이가 타던 그네를 볼 수 있다. 그 날은 여학생들이 열심히 타고 있었다.

연못에 물이 들어오는 곳....물은 지리산의 천갈래 계곡물이 모여 된 강에서 온다.

보물 제281호. 조선시대의 재상 황희(黃喜)가 남원에 유배가서 1418년 현재보다 규모가 작은 누를
지어 광통루(廣通樓)라 했는데, 1434년 남원부사 민여공(閔汝恭)이 증축했고, 1444년(세종 26) 전라
관찰사 정인지(鄭麟趾)에 의해서 광한루라 불리게 되었다.
광한루란 말은 달 속의 선녀가 사는 월궁의 이름인 광한전(廣寒殿)의 '광한청허루'(廣寒淸虛樓)에서
따온 것이다. 1461년 신임부사인 장의국(張義國)이 요천강(蓼川江) 물을 끌어다 연못을 조성하고 4
개의 홍예로 구성된 오작교를 화강암과 강돌로 축조하여 월궁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584년 송강 정철에 의해 수리될 때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의 삼신산(三神山)을 연못 속에
축조하므로 광한루, 오작교와 더불어 월궁과 같은 선경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뒤 정유재란으로 전소
된 것을 1638년(인조 16)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렀고, 춘향전에 의해 많이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