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한 연구 - 하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1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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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0221221 박상륭.

망각은 축복이다. 나는 이십 년 전에 이 책을 한 번 읽었었다는 것과, 젊은 시님과 여인이 시진하게, 끝장나게 섹스를 하는 장면이 있었다는 것만 기억했다. 막상 다시 읽으니 스님과 장로 손녀딸이 하룻밤 사이 스물여덟 번 교합을 하는 장면은 생각만큼 놀랍지도 그리 길지도 않았다. 어린 나는 그런 일이 있을 수가! 했을 것이고 지금 나는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을 법하지,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헴헴. 어쨌거나 하권을 읽으면서 내 뇌가 거의 깨끗하게 이 책 내용을 씻어 내린 걸 감사할 지경이었다. 읽는 내내 새롭게 재미있었다.

다만 또 잊고 있던 건…하권에 스님의 수난이 나오고 그럼 나는 재미있겠지…했는데, 그전 앞부분 거의 90쪽가량은 나의 수난이었다. 스님이 읍의 장로 댁 예배 모임 같은 곳에서 자신의 ‘죽음론’에 관한 설법을 한다… 지루하고 어렵다… 아니 작가님도 자기가 무슨 말 하는 줄 알고 썼습니까… 그래도 이 책의 고갱이는 하권 중반부 이후에 연꽃잎 속 보석처럼 담겨 있으니… 혹여 하권 앞 몇 페이지 힘드신 분들은 검은 것은 글자요… 하고 잘 버티길 기원합니다…옴마니팟메훔.

2014년 성탄절에 신자도 아닌 내가 갑자기 예수님이 궁금해져서 마태복음을 읽었다. 내용은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다른 건 몰라도 예수님은 좋은 선생님이셨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은 난다. 이 소설은 예수의 앞선 걸음을 따온 듯 스님이 유리에 들어서는 날로부터 열반하는 날까지 40일을 따라가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십자가에 매달리지는 않지만(당장 부활하지도 않는 것 같지만) 비슷하게 나무 높은 곳에 매달리는 죽음을 택한다. 스님을 비롯해 모든 인물의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스님이 서른세 해 삶을 자주 상기해 죽음을 마주하는 나이조차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지금의 나보다는 어리구나… 얼마나 창창한가 서른세 살이라니…) 다만 예수는 자기 죄도 아닌 인류의 죄를 안고 못 박히지만(그걸 가지고 자기 탄생 전 영아 살해에 대해 일언반구도 안 한다고 스님이 뭐라 한 번 함 ㅋㅋㅋ) 스님은 존자 스님, 문하생 스님, 오조 촌장 대사 스님까지 혼자 쓰리킬 하고 그 업으로 한 번 죽으니 앞으로 두 번 더 환생하고 두 번 더 죽어야 하는 거 아닌지… 이건 그냥 갑자기 든 나쁜 생각… 난 이렇게 말로 생각으로 죄 많은 나쁜 놈이니 몇만 번이고 다시 돌아와 쥐로도 굼벵이로도 바퀴벌레로도 뜯겨 죽어야 할 것 같다… ㅋㅋㅋㅋ

직접 언급하지는 않아도 불교와 기독교를 이야기 큰 기둥으로 삼고 있다는 걸 종교를 잘 모르는 나도 짐작할 만큼 여러 인용과 비유가 등장하고, 그 외에도 잘은 몰라도 최소 일곱 개 이상의 온갖 신앙이 차용된 모양이다. 고기, 나무, 온갖 음양 합일의 상징, 그게 다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도 없고 몰라도 상관없었다. 고달프고 힘든 사람의 삶과 노동과 번뇌와 이런저런 죽음, 그 와중에도 소소한 생의 집착을 불러일으키는 보살핌, 사랑, 애욕, 그건 다 아는 이야기이고 읽어도 읽어도 질리지 않는 변주니까… 이야기 속 인물이 괴로울수록 그치 나만 힘든 거 아니지…나만 나쁜 놈 아니지…하는 나란 새끼…

촛불중 새끼가 제일로 미웠는데, 스님을 사랑하는 수도부를 강간하고 죽게 만든 샹놈이라 진짜 죽여버렸으면 좋겠다…야 스님 너 사람 잘 죽이면서 왜 저놈은 안 죽이냐…그랬는데 또 막상 주인공 스님이 혼자 엄청 뛰어나고 어디 가나 다들 그걸 알아보고 유리에서도 읍내에서도 여인들이 촛불중은 안 좋아하고 주인공 스님만 좋아하고 죽은 대사님도 맨날 우리 제자가…그러고 읍장까지 오구오구하는 꼴 내내 보고 그러면 저렇게 비뚤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싶었다. 왜 맨날 악당한테 감정 이입하고 빙의하냐…아닌가 악당 아닌가 칠조 촌장님인가… 촛불중이 칠조된 건지 아닌지는 칠조어론 보면 나오는 건가요… 지금은 말고 아주 나중에요…

+밑줄 긋기
-허나 어쩌면, 먼저 구원해내야 될 것은, ‘종교 없이도 살지 못하지만, 종교와도 살지 못하는’인간이 아니라, 신들인 듯도 싶은데, 발 붙일 곳이 없어 저것들은, 배고픈 외로운 노래나 부르며, 사람들이 사는 언저리로나 비실거리고 다니는 듯싶기 때문이다. (13-14)

-허나 소승은, 한걸음 더 나아가, 지옥이란, 생시에 지었던 죄업으로 인하여 고통받는 장소가 아니라, ‘죽음’ 자체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라는 것을 거듭 강조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한번 죽은 몸은 두번 다시 죽지 못하며, 영은 영생으로 반복되지만, 육신을 잃어 염태만을 갖고 있는 존재에게는, 고문이란 체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만약에 고통으로 하여 죄과를 삭이고, 영혼을 맑혀야 한다면, 이 세상 말고 그런 고장이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적 죄가 완전히 구속되지 않은 혼령이 있다면, 그 혼령을 위해선, 한 번 더, 심지어는 억천만 번을 더 이승에 던져, 그 죄가에 해당하는 살을 입히는 것일 터입니다. 살이란 고통의 전 장소인데, 그래서 이제 지렁이로도, 쥐로도, 박쥐로도, 굼벵이나 소로도 태어날 것인바, 생명은 그 크기나 무게에 있어 비록 같다고 할지라도, 형태가 다르다는 그 비극적 한계에 의해, 비로소 고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굼벵이는 참새에게 쪼이고, 참새는 솔개에게 채이며, 솔개는 뱀에게 휘감기고, 뱀은 독수리 발톱에 찢김을 당합니다. 그렇다고 소승은, 이 세상은 고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승으로서는 몇만 번이고 돌아와, 이 세상은 살 만한 고장이라고 믿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82-83)

-장로와 그의 손녀딸, 그리고 그 큰 집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후덕과 호의의 울타리 속에서 나는, 왠지 짐스럽기만 하던 것이다. 천대와 멸시 속으론 스스럼없이 걸을 수 있었던 나는, 후덕과 호의 속에선 그저 몸이 껄끄럽던 것이다. 후덕과 호의에 내가 길들여본 적이 없었던 짐승이어서 그런지 어쩐지는 몰랐지만, 그 댁에서 내게 던져준 부스러기는 내게 너무 기름졌다. (90)

-나는 이 아침에 기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새 내가 죽고, 내가 썩고, 내가 파사근거려지고, 내가 오소록이 무너나고 싶은 것이었다. 전엔 나는, 나를 한 큰 보자기로나 만들어보려고 애도 썼었다. 거기다 해도 싸고, 달도 싸고, 별도 담을 만큼 담아서, 나 저승 가면, 그 어두운 천장에다 걸어놓고, 나 혼자서라도 좀 덜 춥게, 덜 어둡게 살아보려 했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이 아침에 나는, 갑자기 줄어들어버려, 해도 그만두고, 달도 그만두고, 육안에 보이는 그만큼 한, 어떤 작은 별 하나 삼켜둬둘 터전이 없는 듯했다. (127)

-나중엔, 내 울음에 내가 먹히어들었다가, 내 울음에 내가 놀라 내 울음을 들어보니, 그것은, 구름낀 날 온골 안으로 울려퍼지는 능구렁이의 울음이 되어, 나를 공포에 질리게 했다. 나는 얼마를 더 울어야 좋을지를 몰랐다. 하나의 눈먼 혹성으로, 저 빛나는 세계로부터 제척받아가며,,수내광을 찾으나 그것은 없는 듯하고, 아무 희망도 없는데, 그래도 수락은커녕 포기도 되지 않는, 저 죽음, 저 목숨을 놓고 나는, 글쎄 얼마를 더 울어야 될지를 몰랐다. 울어도 울어도, 울음은 울어도, 울어도 울음은, 울어도 끝이 나지 않고, 그 검은 꼬리를 바르르바르르 떨며, 자꾸 더 깊은 곳으로 자꾸 더 파고들고만 있었다. 그러며 거기서 그것은 또아리를 틀고 앉아 잠잠히 머리를 숙이는가 했더니, 어느덧, 떠나 꼬리를 제 입에 물고, 흰 배를 쳐들어올리며, 괴롭게 뒤집혀지고 있었다. 나의 아비가 나를 신육으로 구워내려고 하기 전에, 그는 먼저, 내 목구멍에다 손을 집어넣어 저 칙살맞은 한 마리의 번뇌를 뽑아냈어야 옳았었다. 유방으로 하여 내게 빨게 하였던, 어머니가 키운 것은 무엇이었는가? 자식이 아니라 한 마리의 독한 벌레가 자기의 젖꼭지를 물고 있는 것을 알았다면, 그 옌네 분명히, 장대 끝으로라도 떠다 불구덩이에라도 던졌을 것을, 그래서 자식이라는 것은 젖꼭지를 물고도 울고, 자다가도 울고, 웃다가도 울기를 시작했을 때, 강보에 싸아서, 분노에 날뛰는 불의 아가리에 던져넣어 태워버려야 할 어떤 것이다. 그러지를 않는다면 처음에 형체가 없는 듯하다가, 특히 눈물맛을 보고 나면, 습기 아래에서 지렁이가 자라듯이, 뭔지 가늘고 길숨한 것이 그 애의 눈물 아래에서 돋아났다가, 세상 달이슬에도 젖고, 계집들 암내에도 쐬이다 보면 어느덧 자라고 굳어져, 그 대가리를 목젖 있는 데까지 뽑아올려놓고, 눈을 번들거리고 있는다. 앙금된 눈물, 살을 입은 슬픔, 그 배꼽에서 줄기를 빼올려 피우는, 저 번뇌의 흙탕 아래 도사린 몸, 업, 업이다. 업이다, 어비다, 어비다, 어버이다, 그래서 나 세상의 아들, 우니노라, 이 바람 찬 세상, 눈에 먼지를 끼얹으며 우니노라, 우니노라. (276-277)

-그녀가 오지 않았다면, 설움이 그냥 설움이었다가, 글쎄 내가 죽고 난 뒤, 서리라도 되어 내렸을랑가 몰랐을 것이, 그녀로 하여 기름이 되어, 지글거리며 나를 튀김을 해댄 탓에, 나도 그리고 피곤했다. 우리는 피곤했다. 모든 것이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신들은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그들의 인간에의 짝사랑이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들에게서 궁합 맞춰지기를 강요했을 때부터, 신들은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신들의 품속에서 허긴 우린, 한 번도 화백 제도였던 적이 없다.
성자들은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마야! 저쪽 건너 동네 니르바나에 앉아서 이쪽 동네 상사라의 붉은 향수물을 바라보는 저 고요한 눈은,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성자들의 눈길 아래에서 우리는 한 번도 죄인이 아니어본 적이 없어서, 저 죄태는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영웅들은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한 번도 명확히 정의되어본 적이 없는 비겁이 그들에 의해 정의되고 그리하여 우리는 인간인 것의 자부심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인간인 것이 무엇보다도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인간인 것은 우리를 진실로 피곤하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피곤해 있다. (298-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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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1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22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12-22 06: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열반인님 리뷰 보고 개정판 구매했는데 완전 기대됩니다. 왠지 필립 로스 느낌도 나네요 ㅋ

반유행열반인 2022-12-22 21:22   좋아요 2 | URL
필립 로스도 좋지만 좀 쌈마이(?) 뭔가 마지막 남성호르몬 남은 거 쥐어짜는 느낌이라면 ㅋㅋㅋ 박상륭은 영혼에 전생이랑 내세까지 쥐어짜고 탈탈 터는 느낌이요 ㅋㅋㅋ올해(몇 권 안 봤지만) 제 최고 픽 소설로 저 혼자 임명합니다 ㅋㅋㅋ

Falstaff 2022-12-22 06: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다시 읽어볼 때가 된 거 같습니다. 근데 언제나 마음 뿐. 정말로 다시 읽을까, 생각할 때마다, 아직 읽지 않고 꽂혀 있는 책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더군요.
전 두 아이들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한 권씩 사줬습니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12-22 21:24   좋아요 2 | URL
이때다 하고 딱 다시 읽으면 좋은 타이밍이 (거의 이십년 만에) 오긴 오네요 ㅎㅎㅎ 저는 저희 어린이들에게는 있는 책 지가 뽑아다 본다면 굳이 안 말리지만 권하지는 않으려구요…니들은 좀 덜 처절한 거만 보고 살렴 실제 세상은 더 각박하니까… 하고요 ㅋㅋㅋ

Falstaff 2022-12-22 21:33   좋아요 2 | URL
책의 내용보다는요, 여태까지 교과서 읽는 건 이도 나지 않은 정도의 아이들 장난이었다, 앞으로 너네들이 겪고 지낼 세상이 이 책 읽는 것보다 더 힘들다, 어려운 것에 익숙해지기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처음 읽으면 열 명 가운데 아홉 명은 첫 문장 읽고 나가 떨어지잖아요. 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2-12-22 21:58   좋아요 2 | URL
강하게 양육하셨군요 ㅋㅋㅋ 저 그럼 열에 하나에 들었나요? ㅋㅋㅋㅋ 그 중 두 번 읽은 건 또 드물겠죠? ㅋㅋㅋㅋㅋㅋㅋ
 
[eBook] 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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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0 루리.

어려서는 갈매기의 꿈이나 꽃들에게 희망을 같은, 동물이 주인공인 책들을 잘도 봤었다. 삼십 년 남짓이 흘렀고, 나는 이제 더는 우화를 즐길 수 없는 어른이 되었다. 그렇다는 걸 이 책 읽으면서 알았다. 동물 주인공이지만, ‘인물’이고, 껍질과 신체 조건만 동물일 뿐 동물 탈쓰고 사실은 인간이 인간 이야기를 하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다. 인간 중심성. 휴머니즘. 생존 본능과 따뜻한 관계 맺음, 보살핌 같은 걸 엮는 일. 그런 이야기가 왠만큼 세련되지 않고서는 그냥 발작 버튼 눌리듯 못견디는 알레르기 같은 게 생겼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감동과 따스함, 이런 걸 느끼며 읽었을 이야기들을 따라가면서도 끝까지 읽는 게 그냥 버티고 견디는 일이었고, 목구멍에 이물감이 느껴지고, 그런 나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뭐가 문제일까, 내가 문제일까 이야기가 문제일까 그냥 취향 차이인걸까,했다. 서사는 별로였고 그림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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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2-12-20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열반인님 저도 이 책 좋다는 얘길 그렇게 들었어도 이상하게 읽기 망설여졌는데 열반인님이 지적하신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2-12-21 22:02   좋아요 1 | URL
그래도 혹시 읽을 기회 되신다면 제가 못 느낀 감동도 같이 느껴주세요 ㅎㅎㅎ제 부족한 감상에 영향 받지 마시구요 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2-12-20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그림에 한표요~~

반유행열반인 2022-12-21 22:02   좋아요 1 | URL
아래에서 올려다 보거나 위에서 내려다 보는 컷을 잘 써서 그런 그림들은 좋더라구요 ㅎㅎㅎ

유부만두 2022-12-21 0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너무 작위적이라고 느꼈어요.

반유행열반인 2022-12-21 22:04   좋아요 1 | URL
모든 서사란 작위적인 것일텐데 제가 유독 남들이 좋게 평하는 이야기에는 박해서 그런 걸까 못된 심리 또 발동한 걸까 했어요. 리뷰 쓰고 다른 리뷰들 보러 갔다 진짜 더 놀라가지고…평점 좋고 감동의 눈물바다 한 가득인데 왜 나만 그 바다에 못 빠져…하고요 ㅋㅋㅋ그래서 동감 감사합니다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2-12-21 23:19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랬어요. 부인하고 딸 죽은 아버지 … 코뿔소도 맘에 안들고 팽귄 케도 영 별론데 사건들이나 깨달음도 으잉? 스럽고 이들의 여정도 들쭉날쭉이고 동물원 탈출 이야기는 너무 흔한데 개연성이 없더라고요. 이게 어디가 감동이며 눈물일까 싶었어요. 저야말로 쌓인 걸 후련하게 풀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어린이 기자 상담실 -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
가메오카 어린이 신문 지음, 요시타케 신스케 그림, 정인영 옮김 / 샘터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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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3 가메오카 어린이 신문.

요시타케 신스케가 그림을 그린 책이라 사봤다. 삽화만 작가가 그렸고 글은 가메오카 지역 어린이들이 신문에서 어른들의 고민에 답해주는 기획 기사들을 모은 내용이었다. 크게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사람 사는 동안 고민과 걱정과 궁금함은 다 고만고만하고, 아이들도 고만고만하게 답해준다.
문득 내 고민은 뭘까, 돌아보는데 당장은 고민이라 할 게 없다! 어릴 때는 한 줌의 사람들, 아니 단 하나의 사람에게만이라도 사랑 받고 싶었고, 시험 전에는 성적 안 나오는 게 고민이었고, 직장 다닐 때는 얼른 직업을 바꾸고 싶다는 게 바람이었지만… 지금은 부족한 것 없고, 고민할 시간에 그냥 문제 풀고 공부하기 싫으면 책을 읽고 삶의 방향을 살살 돌리면 된다. 지금 가진 것들, 받는 보살핌과 사랑, 언젠가는 흩어질 것이라도 그래서 지금 소중하니까 감사하고 잘 간직하면 된다.
그리고 내가 다른 이들의 고민 거리가 되지 않는다면 더 좋겠다. ㅋㅋㅋㅋㅋㅋ그건 나의 문제가 아니므로 패스…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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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gene 2022-12-14 2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다른 사람의 고민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거,진짜 중요합니다.역시 열반인님 잘 짚어주셨네요♡

반유행열반인 2022-12-17 18: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예진님 그치만 전 그 부분에서 제일 자신이 없네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2022-12-20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20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21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죽음의 한 연구 - 상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1
박상륭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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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12 박상륭.

어느 이웃님이 박상륭 전집 모셔둔 사진을 보니 보기에 좋았다. 집에 문학과 지성사에서 20년 전 나온 걸 모셔두고 있다. 스물에서 스물하나 사이에 가출하면서 컴퓨터는 못 들고 나오고 책 몇 권은 들고 나온 짐 속에 이 책이 끼어 있었다. 덩그런 원룸에서 엄마랑 나는 할 일이 없어 책이나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이 진짜 끝내줬다. 그러니까, 아직 만으로 십 대를 벗어나지 못한 내가 환장하는 소설들은 뭔가, 있어 보이는 척 이런저런 철학적 물음과 저 나름의 답변을 찾는 듯, 하면서 사실 주인공이 하는 짓이라곤 미친놈처럼 섹스하는 게 거의 다인 이야기들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백년의 고독은 몇 번을 읽을 동안 죽음의 한 연구는 그냥 잊혀 왔다. 봐야지, 다시 봐야지 하면서도.

그러다 결국에는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어 있지. 종이책 펼치기 귀찮아서 서울시 도서관 전자책을 빌렸는데, 붙들고 읽는데, 이게 왜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지. 그래 이거다. 이것이 내 취향. 그런데 서울시 도서관 전자책 뷰어는 다시 리뉴얼 했다고 하는데 원래도 개쓰레기 같더니 이제는 진짜 못쓸 수준이 되었다. 막 튕기고, 글자 깨지고, 나는 제9일까지 봤으니 이제 제10일 차례인데 막 다짜고짜 제15일이 나오는 것이다… 참고 보다 못 봐주겠어서 다시 책꽂이에서 종이책을 찾았다. 놀랄 만큼 책이 말짱하다. 볕드는 층으로 이사오는 바람에 1년 만에 책등들이 좀 바래기는 했지만.

이 책 떠올리면 기억 속에선 시님이 겁나 섹스만 하고 돌팔이중놈…했는데 역시나 시작부터 사람 죽고, 이 시님 발가벗고 마을 들어가자마자 비구니 엉덩이 스팽킹(…)하다가 폭풍섹스(…)하다가 사람 막 죽이고, 고양이도 죽이고, 하여간에 미친 gta같은 스님이다… 그래서 재미있다. 시님, 저도 마른 늪에서 고기 낚는 중인데 그거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짓인데 시님도 그래서 비 오고 번개 치는 날 미친놈마냥 난리 버거지를 치던데 딱 봐도 보살 같은 임자 스님 버리고 장로님 댁 손녀랑 눈 맞을 분위기인데 야이 나쁜 새끼야… 불쌍한 보살 스님… 저런 새끼를 뭐 예쁘다고 밥해주고 안아주고 기다리고 그런대요…

나는 더 재미있을, 시님은 더 괴로워질 하권이 기다리고 있다… 수학 문제 많이 풀면 상으로 나놈한테 읽게 해주기로 한다… 아 물고기 필요 없고 재미난 책이면 그저 족한 것을… 난 왜… 이 광막하고 메마른 곳에서…

+밑줄 긋기
-“뜨거운 여름 한낮, 모두 서늘한 그늘에 누워 더위를 피하는 그럴 때라도 말이지, 수확을 기다리고 들이 누렇게 익은 저 정밀스런 가을 석양판에라도 말이지, 북풍이 으르렁거리고 눈발이 세상을 세차게 휘몰아치는 그런 캄캄한 밤에라도 말이지, 그리고 여보시구랴, 나는 말이지 모든 봄날마다, 들을 그저 목선모양 흘러가는 상여밖에 본 것이 없는 듯한데 말이지, 그런 상여들이 혼을 가시덤불에 조금씩 조금씩 찢어 붙여놓고 흘러간 그런 고단스런 봄날 길에라도 말이지, 글쎄 나는 그저 걷는 것이란 말이지.“(11)

-젠장맞을 늙은네는, 흙벽 절간 한 채를 오장육부에 처넣어놓고 밖으로 다니며, 그것을 찾으려 했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내가 늙어 어느녘에 죽었구나.(24)

-그럼에도 하나의 무서운 유혹을 버릴 수가 없는데, 그것은, 한번 마음만 먹은 것으로써 늪을 내려다보면, 거기 물이 넘치고, 고기가 빽빽히 유영하는, 그래서 고기를 낚아내는 일이 매찰나가능스러울, 저 가능성에의 집념이다. 그렇더라도 수면을 떠난 고기의 자연 소멸을 어떻게도 방지할 수 없는 한, 꾀는 그것이 어떻게 작은 것이라도, 내가 바랄 바가 못되는 것이다.(148-149)

-지붕의 구멍들을 통해, 하늘로부터 푸른 빛의 동앗줄이 몇 가닥 흘러내려져 있었지만, 몇 마리의 거미를 빼놓고, 혼령 같은 것은 하나도 매달려 있지는 않은 걸로 보아서, 복음이 좀 뒤늦게 내린 것 같았다. 복음도 광년 같은 것이어서, 이천 년 전쯤에 한번 반짝 했던 빛이, 이천 년 다 지나서야 보여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한 빛의 줄기는, 일종의 희망으로서 쏠려드는 듯이도 보였으나, 어떤 종류의 희망은 때로, 고문 같은 것으로 변해져 있기도 한다. 완전히 절망할 수 없을 때 고통이 따른다. 삶의 경우만 하더라도, 영혼에의 희망에 의해서 그것은 학대당하고, 비참하며, 구원에의 확신이 없을 때, 죽음이 가장 큰 두려움으로 화한다. 자기가 구원될 것이라는 확신은 그러나 구주 자신도 가질 수 없던 것이어서, 어찌 자기를 버리느냐고 깊이 탄식하며 죽어갔던 것이었다. 물론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마 아닐지도 모르긴 하다. 어쨌든, 지붕으로부터 쏟아져내리는 몇 줄기의 빛이 없었다면, 이 안의 어둠은 차라리 아늑한 것일 수도 있었을 것이며, 황폐나 몰락이 슬픈 것으로만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극락이란 저승에 향해서 고문으로 던져진 것이다. (271-272)

-“그라면 전에는, 그림자 없던 짐성도 있었다는 고 말배끼 더 되요이?”
“그 말씀이겠지요, 어쩄든 들어보시지요. 그래 그림자가 생겨서, 한쪽은 양지면 한쪽은 음지가 되고, 한쪽이 밝으면 다른 쪽은 어둡게 되어버린 것이지. 그건 겉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속까지도 그렇게 되었더라는 것이오. 한편으로는 흥겹고 기쁘면서도, 어쩐지 한편엔 근심이 자리잡고 있어, 괜스레 불안하고 초조하여 잠을 들 수가 없고, 어떤 땐 선한 마음이 들다가도, 어떤 떈 ‘에이 고놈 쥑이뿌릴 놈이여’하고 이가 갈려지기도 하더란 말입니다. 마음도 음양으로 나뉘어진 증거란 말이지.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는 사람들이 갑자기 죽기를 무서워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오.”
“그라면 지금은, 미렉이며 상제며 모도 통세라도 가고 없단 요말이요?”
“그 말씀 잘하셨소. 그래서 그렇지, 듣기로는 한 이천 년 흘렀다고 합디다. 헌데, 워떤 하나님 하나가, 그 고양이와 싸워 한번 더 죽이려고 그 나무를 타고 그 밑으로 내려갔다고 합디다마는, 그 얘기까지 하려면 너무 길고, 그러니 이렇게 얘기해도 되겠습죠. 결국 모두 속에다 고양이 한 마리씩은 넣어서 기르고 산다는 말이지요.” (306-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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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12-13 06: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재미있을거 같아요 ㅋ 박상륭 작가님은 처음들어봤는데 ㅎㅎ 딱 봐도 열반인님 스타일인듯 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12-13 09:22   좋아요 2 | URL
이 책이 박상륭 책 중에 쉬운 축이라 하더라구요. 인물들도 말투 다 다르게 입담 살아 있어서 개성이 분명하고… 제가 하는 고행 아니고 남이 고행하는 책은 하여간에 재미있습니다… ㅋㅋㅋㅋ

Falstaff 2022-12-13 17:42   좋아요 1 | URL
제가 읽어본 박상륭 가운데 제일 쉬웠던 건 단편집 열명길이었고요, 다음이 이 책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쉽게 접근을 허하지 않더라고요. 칠조어론, 아겔다마, 신을 죽인 자의 행로는 어쩌구 저쩌구 같은 건 아휴... 족탈불급이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12-13 18:37   좋아요 1 | URL
골드문트님 그래도 그 많은 걸 다 접해보신 것 아닙니까…연륜과 절륜과 수레바퀴 뱅뱅 구르신 아우라가 느껴집니다 ㅋㅋㅋ저는 집에 이 책이랑 잡설품만 갖췄는데 하권 읽고 또 언제 잡설품에 도전할지는 모르겠네요 ㅎㅎㅎㅎ

Yeagene 2022-12-13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작가님은 처음 들어봅니다.정말 세상은 넓고 작가님들도 많은데 열반인님은 이 분들을 어찌 아시는지..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2-12-13 14:41   좋아요 1 | URL
아마도 저희 어머니가 사둔 책이었을 거예요 ㅋㅋ저도 아는 작가가 많지 않고 책에서 책으로 연결되거나 북플에서 이웃님들에게 소개받은 작가가 꽤 많네요 ㅋㅋ
 
에티오피아 시다모 난세보 - 200g, 에스프레소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7월
평점 :
품절


‘일상 감각 연구소’ 책에서 사람들은 인류의 기원지로 추정되는 에티오피아 고원과 같은 기온, 습도로 실내 환경을 조절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조상은 그 근처에서 온 것 같다. 악성 곱슬머리가 증거… 그리고 추운 겨울보다는 더운 여름이 낫다. 아프리카에서 건너건너 오는 길에 동남아시아도 찍고 온 모양이다. 식구들은 질색하는 고수랑 두리안을 잘도 먹는다.

사람도 시작됐고, 아마 커피 원산지이기도 하다는, ‘커피견문록’에서 약간 또라이 같은 저자가 케냐에서 국경 넘어 에티오피아 건너가서 커피 한 잔 하고 돌아올 정도인… 에티오피아 커피를 알라딘에서도 이것저것 많이 팔았다. 돌아보니 내가 산 원두도 거의 에티오피아산이더라…수능 직전에 시험 끝나면 캡슐 안 먹고 드립만 겁나 먹어야지, 하고 찾다가 시다모 난세보가 보였다. 어느새 돌아왔군. 에티오피아 원두 중에서도 시다모 난세보는 일반 원두랑 디카페인이랑 다 좋아서 몇 번 샀던 걸 이번에도 질렀다.

쓴맛 탄맛 강하지 않고 향과 맛이 적당히 달고 많이 시지 않고 아주 무난하게 맛있는 커피였다. 핸드드립을 자주 먹긴 했는데, 중간에 드립 귀찮으면 병에 담긴 거도 사먹고, 마트에서 파푸아뉴기니 콜드브루 할인하는 걸 사서 그거도 먹다보니 아직 원두가 조금 남았다. 애껴먹어야지…파푸아뉴기니 드립백 먹어보니 맛있던데 다음 원두는 그걸로 결정…

원두 생각난 김에 에티오피아와 파푸아뉴기니를 검색해 보았다. 한 곳은 완전한 내륙국, 한 곳은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 한반도로 건너오던 옛 조상이 찍고 온 곳인지 더운 바닷가 혹은 고원 기후 참 끌리지만…여행지 안전 정보를 다루는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두곳 모두 여행 자제, 출국 권고, 가능하면 가지 말라고 한다… 커피 팔아서는 먹고 살기 힘든 모양이다. 특히 파푸아뉴기니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관광국가 될 법한데, 노상강도가 횡행하고 지진 화산 빈번해서 난리라고, 외국인은 높은 확률로 범죄 타겟이 된다고 해서 슬펐다. 당신들이 보낸 커피는 먹을 수 있지만 우리는 거기에 갈 수가 없군요… 경제적으로 힘들고 치안 개판이고 자연재해까지 일어나버리면 사회는 야생에 가까워지는가 보다.

발이 시려운 겨울 나라 사람은 일년 내내 봄이고 가을인 나라나, 바닷바람과 햇살이 따뜻한 나라를 꿈꾸는데, 따뜻한 나라 사람들은 발이 시렵더라도 배곯지 않고 거리에 총이나 칼든 사람이 없는 나라를 꿈꿀지도 모르겠다. 내가 약사가 되고 싶다 하니까 어떤 이웃님께서는 본인이 약사이신데 잠시 교대 진학을 꿈꿨다고 하셔서 서로 신기해하고 웃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없는 곳에 놓인 자신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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