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갑자기 너무 찌면 자다가 숨이 막힌다. 평생 마른 편이던 내가 올 2월 초에 그걸 처음 알았다. 앞자리(나이) 바뀐 지 얼마 안 됐는데(몸무게는 한참 전에) 벌써 죽기는 싫더라. 날 밝는대로 뛰어 나갔다. 긴 칩거가 끝났다. 아침마다 집 근처 상도근린공원, 국사봉 인근을 맴돌며 온갖 산책로를 다 쑤시고 다녔다.(근방 사시면 저랑 언젠가 마주치셨겠지 말입니다?) 늘 오르던 길을 지나다 길 옆으로 조그맣게 사람 밟은 흔적이 있으면, 옆구리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사람이 있으면, 우와 새 길이야 두근두근, 일단 갔다. ‘샛길쟁이’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이름 모르던 새들을 잔뜩 만나고는 인터넷 열심히 뒤져서 물까치, 어치, 박새, 쇠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공손히 예의를 갖추고 진짜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했다. 공부도 체력이 먼저다, 핑계로 잘도 쏘다녔다. 뭔가 이삼십년 쯤 당겨하는 은퇴자 체험 좋았다. 어르신들 이 좋은 산을 독차지 하고 있었군… (니가 그냥 안 다닌 거야…)
즐거운 꼬꼬마 산악인 놀이는 두 달을 못 채우고 어제 멈췄다. 무학대사가 경복궁 지을 때 관악산의 위협적인 호랑이 기운 제압한다고 삼성산 근처에 호압사를 지었다고 한다. 옛날엔 그 근처 살았지. 그리고 튀어나가는 호랑이 또 잡으라고 사자암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봉우리만 넘으면 그 암자가 나오지. 어떻게 알았냐면 산길 가다보면 사자암이 딱 내려다 보이고 거기 표지판에 이런 옛 이야기가 써 있었다. 온숲이 울리게 드릴처럼 나무를 도려대는 머리 빨간 오색딱따구리도 그 주변에서 만났다. 또 새 산길 발견해서 걷다가 등산복 입은 어르신들이 넘어오는 걸 보고 사자암 문턱까지 가는 새 지름길을 또 발견했다. 계단만 따라 내려가면 금방이었다. 새길에 미치는 내가 완전 새길파티, 하고 신나게 내려가다가 가장 마지막 나무 계단 밟고 디딘 흙바닥에 뾰족한 돌이 튀어나와 있었다. 그 돌을 지렛대 삼아 내 발바닥은 발레리나 흉내를 내며 본 적 없는 각도만큼 세로로 세워지고, 다시 꺾였다…으아아아아아아악
바로 옆에 커다란 바윗돌이 부상자 좌석처럼 놓여 있어서 곧바로 앉았다. 정면에 보이는 나무 위에 산비둘기 두마리가 놀고 내가 좋아하는 오색딱따구리도 날아왔다. 뭐래? 삐었대… 못 움직인대? 몰라몰라 구구구 딱딱따다다다다닥
한참 멍때리며 통증이 가라앉길 기다리다, 주변에 썩은 나뭇가지 꺾어 지팡이 만들려다 포기하고 그냥 절뚝절뚝 느릿느릿 암자를 지나 비탈길을 내려오니 다행히 마을버스가 꼭대기까지 와 있었다. 잡아 타고 절뚝절뚝 정형외과 찾아가서 엑스레이 찍고 보호대 차고… 열심히 산에 다니(고 공부 안하)셨으니 와 엄마 나 상 받았어 발목 부상…아야…
수상 소감 대신 부상 기념 시집 두 권을 샀다. 둘이 티키타카 천사 타령하는데 왜 내가 말하고 나한테 말하는 것 같은 제목이야… 등산 금지, 틀니 금지, 약과 금지, 천사 금지, 지금 사천은 벚꽃 축제를 한다고 한다. 삼천포에 가서 장어구이 먹고 바다 보고 싶다… 현실은 2주 이상 가료 안정…강제 공부행… (염좌 부위 아프고 빡쳐서 더 안 하는 중이라고 합니다.) 모두들 다치지 말고 안전한 산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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