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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다정한 유전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강화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평점 :
-20211002 강화길.
완독한 책이 없으면 독후감을 못 쓴다. 독전감이나 독중감은 뭔가 설레발 같아서. 악성 독후가미스트의 고충. 다정한 이웃님이 일주일 넘게 글이 없다고 안부를 물어주셔서 아, 내가 많이 안 읽고 있구나, 했다. 그런데 또 세어보니 9월에 11권이면 적은 게 아니잖아…ㅋㅋㅋ 그렇다고 한 주 동안 안 읽은 건 아니고 소설 ‘카산드라’도 읽다 말고, ‘향의 언어’라는 분자 구조식 가득한 책을 뭔말인지 모르겠는데 재미있어, 왠지 꼭 봐야 할 거 같아, 그리고 화학 공부도 해야 할 것 같아…하면서 보다가 도서관에 강제 반납 당해서 흑흑 울면서 다시 예약 차례를 기다리면서도 왠지 사야겠다 하고…
그동안 책읽기 대신 한 일은 수학문제 풀기이다. 9월 보름께 시작해서 보름 만에 고1에 배우는 수학 교과서 한 권을 다 풀었다!!! 세상이 변해서 pdf파일에 짭플펜슬로 슥슥 풀고 캡쳐 찰칵찰칵해서 오답노트랑 공식노트도 허접하지만 만들어서 클라우드 노트에 저장! 신이 나서 고2에 배우는 수1도 슉 들어가서 나흘 만에 교과서 절반쯤 풀었다. 삼각함수는 나 고딩때는 고1 공통수학에서 배웠는데 수1로 갔구나…그런데 왜 어렵지…하면서도 20년 전 배웠던 부분까지는 그럭저럭 할만했다. 문제는 새로 배울 이과 수학 부분, 수2와 기하와 미적분이다!! 아무래도 고전할 것 같은데 나에게는 과외로 닳고 닳은 공대출신 조력자가 있기 때문에 든든하게 믿고(?) 일단은 문과 수학부터 연휴 내로 다 조져 놓기로 한다.
그런 상황이면 수학 공부도 재미있지만 소설 읽기는 오랜만에 꿀잼일 수 밖에 없었다. ㅋㅋㅋㅋ아침에 짧은 소설 한 권이라도 읽고 독후감을 쓰는 것이 독후가미스트의 도리..하면서 강화길을 빌렸다. 오, 이 책에는 대불호텔의 유령도 있고, 가원도 있고, 괜찮은 사람도 있고, 하여간에 다 있었다. 느슨하게 연결된다고 작가는 말하는데 그말처럼 각각의 소설로도 읽히고, 한 권이 하나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했다. 그리고 이 한 권이 한 권이 아니고 강화길이 여태 썼던, 그리고 앞으로 쓸 소설들의 모판, 안내도, 조감도, 창작노트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일단은 고교 수학으로 도망쳤습니다만 종종 소설의 세계도 들르겠습니다 이 재미있는 걸…하면서 재미있게 아침 나절 후다닥 잘 봤다.
그리하여 저는 다시 삼각함수의 세계로…코사인법칙으로 돌아갑니다…휘리릭
+사진은 고2 수학 푸는 예비 고1(?)의 오답노트 겸 공부기록장… 문제 삐꾸 같이 푼 거 보소 ㅉㅉㅉ
+밑줄 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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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 유령, 혼잣말하는 여자들,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여자들. 김지우는 자기 복제라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언제나 이런 이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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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김지우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읽기보다는, 작품을 통해 그녀의 인성과 사고, 삶을 파악하려 들었다. 그녀는 마조히스트였고, 사디스트였고, 집착이 강한 인간이었고, 거짓말쟁이였고, 나약한 여자였고, 사연 있는 사람이었고, 폭력적인 인간이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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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은 그냥 자신이 혼자인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진영이 모두와 잘 지내고 호감을 사는 사람이라면, 민영은 반대의 사람인 것이다. 그런 사람도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세상의 균형이다. 대신 민영에게는 꿈이 있었다. 이 마을을 떠나, 자신이 선택한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이고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곳에 애정을 품고 아쉬워하기 시작하는 순간 마음이 약해질 것이고, 겁을 먹을 것이다. 돌아올 곳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느슨하게 살게 될 것이다. 그러다 언젠가 이렇게 생각하겠지.
“그래, 이 마을에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민영은 전혀 그런 사람으로 자라지
않았다. 진영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녀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정말로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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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고, 순진하게도, 사귀는 사이라면 상대를 해하거나 상처주는 말은 결코 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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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의 동의를 얻어 올해 출판될 예정인 그녀의 일기에는 자신의 사생활과 작품을 연결 지어 말하는 지긋지긋한 인간들을 향한 비판이 가득하다고 한다. 그녀는 언젠가 그들을 위한 소설을 쓰겠다는 다짐을 일기에 여러 번 썼다. 그 소설이 「빈집의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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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계속 배우면 저도 할머니처럼 될 수 있겠죠? 어서 빨리 그렇게 되고 싶어요.”
옹주는 대답하려 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그렇게 될 거라고. 그런데 불쑥 그 말이 툭, 튀어나오고 말았다.
“겨우 그 정도로는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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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누가 뭘 썼는지 확신할 수 없었어. 동시에 왜 좋은지도 설명할 수가 없었어. 나쁜 점도 포함해서 말이야. 그냥 내 능력 부족이겠지. 이런 감상문을 써본 적이 없기도 했고.
그래서 나는 도서관에 가서 이런저런 책들을 찾아보았어. 비평에 관한 글을 말이야. 하지만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 없었지. 그리고 앞으로 내 삶은 그런 글을 읽고 쓰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리라는 예감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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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이유로 서로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에게는 이미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일은 가능하면 겪지 않는 편이 좋았다. 우리는 시련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 말은 미신과 다를 바 없었다. 아무리 없애려 애써도 매번 다시 나타나는 거미를 내몰 방법이 없으니, 그냥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며 함께 사는 것. 지네를 영험한 동물이라고 믿고 사는 바로 그런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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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직조한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새 내면에 쌓여 있던 이야기가 그저 폭발하듯 풀려나왔던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내가 뭔가를 이해했고, 받아들이려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복수를 다짐하는 마음. 나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원하는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있고 싶은 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