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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상상력으로 주역을 읽다
심의용 지음 / 글항아리 / 2016년 11월
평점 :
-20210727 심의용.
작년 봄에 알라딘에서 ‘먹고 기도하고 먹어라’라는 책 댓글 이벤트에 참여했다가 1등을 했다. 카레 한 박스(역시 상품임)나 탈까 했는데 글항아리 출판사의 책 30만원 어치를 고르면 보내준다고 해서 신이 났다.
이 출판사에서 가장 잘 팔리고 유명한 책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지만 이건 빌리기 쉽잖아? 전자도서관을 뒤져서 일단 빌릴 수 있는 책들을 싹 걸러냈다. ㅋㅋㅋ어우 19권이나 있네 하고…
그러고나서 왠지 내 돈 주고 사 보기에는 비싸고 두껍지만 서가에 꽂아두면 든든할 것 같은 책들을 (높은가격순으로 정렬해서…)골랐다. 네 권은 친구에게 선물하려고 고르라고 했더니 나는 생전 안 볼 것 같은 철학책 미술사 이런 거…
그렇게 책무더기가 도착했고, 어서어서 읽고 리뷰를 써서 출판사에 보은하자, 했지만 일 년 사 개월 동안 한 권도 보지 않았다. ㅋㅋㅋㅋ
상품으로 고를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사지 않았던 같은 출판사의 ‘주역’ 완역본을 역시나 보은하는 마음으로 알라딘 당선작 처음 되고 받은 적립금으로 전자책을 사 버렸다. 동양 철학에 크게 관심 있는 건 아닌데 너무 아는 게 없어서…그냥 왠지 사고 싶었다. 그렇지만 읽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그런데 올해 봄에 경애하는 이웃 분이 글항아리 리뷰대회에서 일등을 했고, 나는 그 훌륭한 리뷰가 일등을 하면 열심히 글항아리 책을 읽고 리뷰를 써서 보답하리라 마음 먹고 마음만 먹지 댓글에 공언까지 했는데 진짜 일등을 해버려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30만원어치 벽돌책들 고르면서 잔액 최소한으로 남긴다고 가장 조그맣고 얇은 책 한 권 ‘시적 상상력으로 주역을 읽다’를 골랐는데, 그래, 이 책을 시작으로 얇은 것부터 읽어 나가기로 했다. 했는데…
책의 저자는 내가 전자책으로 산 주역의 역자였다. 동양 고전 연구에 조예가 깊은 분 같고, 한시와 동양화의 아름다움도 글로 잘 잡아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책 초반 ‘강설’이란 시를 다루며 강태공이 미끼 없이 낚시하는 이야기를 소개했는데, 저자가 포르노 본 경험이 툭 튀어 나왔다. 뭘 말하고 싶은 건지도 두루뭉술하고, 여기서 저런 경험과 느낌을 제시하는 게 공감도 이해도 전혀 가지 않아서 비유로도 뭘로도 실패한 거 같고, 지어낸 듯한(연출한) 포르노가 아니라 몰입 어쩌구 하는 부분에서는 이 분 불법촬영물이라도 본 건가, 그딴 애호를 자랑이라고 출판물에 쓰는 건가, 이 책 심지어 2016년에 나온 건데 대체 나는 뭘 보고 있는 건가, 마저 읽는 일에 회의가 들어 한 동안 처박아 두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 꺼내서 다 읽었다. 고등학교 때 한문 교과 배울 때 ‘송인’ 같은 한시는 나름 좋아했는데 이미 한자어는 다 잊어버렸고, 중국 문화나 고사에 대한 지식도 많이 부족해서 적당히 주워들은 인물(이백, 두보, 항우, 백이, 공자, 주희 등등)이 나오면 아 들어본 사람이네…하는 정도로 읽었다.
한시와 그림과 저자가 읽었던 다양한 양서와 관련된 중국 인물과 주역의 괘와 삶의 태도를 연관짓는 건 그럭저럭 읽을 만한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상황을 단장하고 시집가는 일로 비유하는 등 공감도 안 가고 고루한 표현이 종종 등장해서 아쉬움이 컸다.
고대 역사와 예술과 미학을 다룰 때에야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하면서 지금과 맞지 않는 폐습 같은 걸 보여줄 수는 있겠지만 그걸 저자 나름대로 해석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과정에서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굳이 그래야 할 만큼 적절하거나 아름답지도 않은 표현들을 가져오는 건 철학, 고전, 예술을 파고드는 사람으로서 되돌아보고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었다. 뭐 나도 여전히 빻고 빻은 표현들 많이 쓰고 있을텐데 그래서 이참에 ’내 안의 차별주의자’를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보은한다고 해 놓고는 시작부터 까는 리뷰라서 죄송합니다…주역에 관한 교양서로 시작하면 조금 쉬울까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주역을 읽을 엄두가 더더더 나지를 않네요… 종이책이면 팔기라도 하지 왜 전자책을 사가지고…
+밑줄 긋기
-장자는 혜시가 ’사람에게 어떻게 감정이 없을 수 있겠느냐’고 묻자 ‘무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좋음과 싫음 때문에 안으로 몸을 상하게 하지 않고서, 항상 자연스러움에 따라 살아가되 생명을 유익하게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87)
-더닝 크루거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인지 편향 가운데 하나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 잘못된 결론에 이르지만,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그래서 능력 없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면서 근거 없는 우월감을 갖는다. 자신의 실력이 어떠한지를 판단할 폭넓은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우월감의 정체는 무지에 있다. 무지에 근거한 자신감은 타인을 지배하려는 폭력이 되기도 한다. 사실 억지인데 억지인지조차 모르는 모자란 무지다.
반면 능력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하면서 근거 있는 열등감을 갖는다. 자신의 실력을 더 뛰어난 사람들의 실력과 비교하여 판단하기 때문이다. 열등감의 정체는 대가들의 위대한 실력에 대한 폭넓은 지식에 있다. 지식에 근거한 열등감 때문에 타인 앞에서 자신감을 상실하기도 한다. 사실 착각인데 착각인지조차 모르는 과도한 지식이다…
경험과 지식이 없는 사람은 자신감에 넘친다. 그러나 경험이 쌓이고 뭔가를 알아가면서 자신감은 떨어지기 시작한다. 자신감의 강도는 경험과 지식의 농도와 반비례한다. 경험과 지식의 농도가 깊어지면 질수록 자신감의 강도는 약해진다.
아파할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결국에 가서는 자신감이 낮은 사람이 대가가 되는 것은 아닐까? 완벽함보다는 완벽을 향해 매 순간 포기하지 않는 태도는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자신감의 결여에서 나온다.
아파할 사람은 자신감이 부족한 이가 아니라 자신감의 부족을 대가의 경지로 전환시키지 못하는 이다. 인간인 이상 완벽은 없다. 부족함을 메우려는 성실함이 더 매력적인 이유다. 결핍을 메우려는 노력은 그래서 겸손하다. 이 우주는 겸손함을 좋아한다. 오만하거나 비굴한 겸손 말고. (112-113)
-당연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당연하다고 믿고 있으며 그 믿음조차 의식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가 없다. 말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결핍된 것이 의식되고 그래서 말하게 된다.
그렇다면 산림에 숨어 사는 즐거움을 타인에게 말하려는 것은 그 즐거움의 결핍이 의식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을 통해 타인으로부터 확인받고자 하는 은밀한 두려움이다. 그러므로 참된 정취를 모르는 사람이다…
반대의 논리도 가능하다. 산림의 즐거움을 말하지 않는 이는 그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르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137-138)
-종일토록 봄 찾아 헤맸으나 봄은 보지 못했네
짚신 해지도록 산봉우리 구름까지 뒤졌건만
집에 돌아와 미소 지으며 매화 향을 맡으니
봄은 이미 가지 끝에 잔뜩 담겨 있었네
(162, 작자미상, ‘오도시’, 나대경의 “학림옥로”중)
저 책탑은 언제 다 읽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