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19-0221- 지아 톨렌티노. 읽는 중입니다.
잘 모르는 유명인들이 추천사 잔뜩 붙인 책을 옳다구나 하고 보는 성격은 아니다. 오히려 번역된 외서 앞쪽 두툼한 추천의 말은 건너뛰고 본문부터 본다. 이 책의 광고 페이지에도, 띠지에도, 첫 몇 페이지에도, 뒷표지에도 강화길, 김금희, 김하나, 이길보라, 이다혜, 이슬아, 장혜영, 황선우, 리베카 솔닛 등등 - 책을 낸 여성 작가들의 이름과 추천사가 잔뜩 새겨져 있었다. 그런 걸 안 좋아하던 나도 김금희 작가의 라이브 (끝머리)에서 극찬하는 걸 듣고 책을 샀으니 책 판매에는 유명인의 홍보가 효과 있긴 한가 보다.
작가 지아 톨렌티노는 1988년생의 뉴요커 기자이다. 마닐라에서 대학을 나온 부모를 둔, 그러니까 아마도 필리핀계 미국 이민 2세인 것 같다. 국적과 문화권은 다르지만 비슷한 시대를 지나온 여성의 에세이라 흥미를 느끼며 책을 폈다.
1장부터 인터넷이 확산되던 시기에 보낸 십대 이야기가 등장해서 무척 재미있었다. 인터넷에서 올바름을 담은 글을 끄적이는 것만으로 (행동하지도 않으면서) 뭔가 할 일 다 한 양 구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에 대한 일침은 얼마 전 친구와 나눈 이야기와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더 공감이 되었다. 2장은 자신이 십대 후반에 리얼리티 쇼에 출연했던 경험을 비하인드 스토리로 풀어놓는데, 충분히 예측 가능한 내용이기도 하고 텔레비전에 큰 관심이 없어서 1장보다는 재미없었지만 그럭저럭 읽을 만했다.
책의 사분의 일 남짓 보았는데, 문득 이번에는 다 읽고 리뷰 쓰는 대신 읽는 중간중간 각 장의 제목을 주제 삼아 내 이야기를 글로 써 보아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략 100페이지 읽을 때마다 글 하나씩. 끝까지 할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을 때 시작.ㅋㅋ
1장 인터넷 속의 ‘나’
인터넷보다는 피씨통신이 먼저 유행했다. 한 살 위 사촌오빠집에서 컴퓨터로 채팅하는 걸 구경하는데 그렇게 재미있어 보이더라. 오빠가 잠시 놀러나간 사이 몰래 남의 컴퓨터를 켜고 접속을 시도했지만 atdt? 이렇게 명령어와 번호 넣는 것도 몰랐고 아이디랑 비번을 넣어야 하는데 그것도 모르니 당연히 실패했다ㅋㅋ 우리집은 부자가 아니여서 그때까지 컴퓨터도 없었고 다달이 통신요금을 내줄 리도 없었다.
그렇게 사촌을 부러워만 하다가 드디어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중고 586피씨를 사줬다. (물론 사 주고 일주일 만에 아빠가 술먹고 모니터 집어 던져서 뿌서진 건 안 비밀...몇 주 후에 더 작은 크기의 새 모니터를 사줄 때까지 슬픔에 젖어있었다…) 중고인데도 TV카드가 달려 있어서 유선 케이블 꽂으면 텔레비전이 나왔고! 36.6k모뎀도 내장되어 있었다. (이미 56k모뎀이 대세였지만...그거라도 어디야…)
친구 집에 갔다가 어느 회사에서 제공한 프로그램 시디 뒷면에 자신들의 회사망을 통해 한 달 간 인터넷 접속을 무료로 해준다는 아이디를 발견했다. 친구에게 아이디를 공유해달라고 해서 생애 첫 인터넷 접속에 성공했다. 중3이었고, 세기말과 밀레니엄 타령하던 1999년이었다. 당시 좋아했던 패닉의 웹페이지에서 사진을 잔뜩 다운받고,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네띠앙 이라는 사이트에 접속해 첫 이메일을 만들고, 인터넷 채팅도 처음 해 보았다. 해외 야후 사이트에서 접한 첫 포르노 사진의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하여간에 인터넷은 참 많은 처음을 안겨줬다.
인터넷에 푹 빠진 나는 부모님 허락을 겨우 받아 adsl설치기사를 불렀는데 컴퓨터와 모뎀 사양을 보자마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돌아가서 크게 실망했다. 그런데도 인터넷 전용선을 깐 친구에게 56k모뎀을 물려받아 끈질기게 전화선으로 인터넷과 피씨통신에 접속했다. 덕분에 전화요금 폭탄으로 부모님께 뒤지게 욕을 먹었다…
고교 3년 내내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에듀넷을 통해 무료 피씨통신과 인터넷을 동시에 이용했다.(그러니까, 사용 요금은 따로 없고 전화요금만 나오는 서비스) 그곳에서 온갖 락음악, 소설, 영화에 관한 정보를 또래 청소년들과 공유했고, 향후 이십 년은 우려 먹을 문화 취향과 가치관을 형성했다. 또래 청소년들과 첫 번째와 두 번째 연애도 거기서 시작하고 끝냈다. ㅋㅋㅋㅋ고1, 고2때였는데 일찍부터 까져가지고 ㅋㅋㅋ학교에서는 모범생이면서 방과후에는 독서실간다고 뻥치고 연애하러 다님...ㅋㅋ 이십 년이 다 되었는데도 그때 알게 된 친구들 중에 아직도 (아예 또는 거의 만난 적도 없으면서) 온라인이나 모바일 상에서 드문드문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시대의 인연이란 참 신기하지. 학교에서 학업 성적은 월등했지만 교우관계는 거의 부적응에 가까웠던 나에게 사회성을 발휘할 기회 대부분은 넷상에서 주어졌다.
고3부터 대학 초년까지는 프리챌 커뮤니티와 엠에센 메신저가 반 아이들이나 과 사람들과의 소통 창구였다. 그러다가 못생긴 아바타 팔아먹던 프리챌이 망하고, 싸이월드가 도토리 장사로 흥하기 시작해서 대학 내내의 일상은 싸이월드에 농축 압축하다시피 담겼다. 싸이월드는 일기도 공유 수준을 바꾸면서 쓸 수 있어서 즐겨 썼고, 오에카키로 그림도 그릴 수 있었고, 노래방 기능으로 녹음해서 (도토리만 낸다면) 내 미니홈피에 브금으로 깔 수도 있었다. 도토리 아이템만 셀프로 못 만들지 온갖 미숙한 창작물로 게시물을 도배할 수 있는 기능들이 있었다. 사진첩에는 내가 찍은 사진은 물론 친구들이 찍은 사진을 스크랩해다 꿍쳐 둘 수 있었다.(그땐 싸이가 망할 줄 몰랐지…) 생년과 실명만 알면 스쳐지난 사람들 염탐 다닐 수 있고 친구들 일촌을 파도타기 하면서 친구의 친구를 구경다닐 수도 있고 ㅋㅋㅋ 스토커 기질 있는 이들에게는 최상의 놀이터였다.
다만 너무나 많은 일상이 공유되다 보니 부작용도 있었다. 아주 친하지는 않지만 싸이월드에서 말 트고 지낸 지인이 갑자기 자살해서 아직 비공개 되지 못한 채 사진첩에 남은 그녀의 예쁜 사진과 우울한 일기, 지인들의 추모글을 보며 너무 오래 우울했다. 연예인의 스토커였던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이 남긴 글을 우연히 보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했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자기 노모를 죽인 뉴스를 보고 섬찟하기도 했다. 눈치 없는 애들이 사귀다 깨진 친구 커플 사진을 오래 전에 자기 홈피에 스크랩해 놓고도 지우지 않아서, 나중에 각자 다른 사람과 결혼한 그 사진 속 커플이 참 곤란하겠구나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니까 흑과거의 블랙홀 같은 공간…
싸이월드가 네이트로 넘어가면서 네이트 메신저가 엠에센 메신저를 밀어내고 한동안 득세했는데, 그래서 한동안 친구들과 네이트온으로 수다를 많이 떨었는데, 싸이월드가 개편한답시고 망해버리면서 메신저도 함께 스러져버렸다.
그 사이 매체들은 나름의 특성을 가지고 쭉쭉 세분화 되어서, 블로그가 등장하고, 마이크로 블로그(마이스페이스? 네이버에도 또 뭐시기)가 잠시 나타났다 다 망하고, 트위터가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 혼자 살아 남아서 유명인들의 촌철에 잠시 열광하고 나도 말할 수 있어! 착각하다가 자기들만의 판이네 나머지는 아무도 안 보는 리트윗이나 하다 끝나네 싶어 집어치우고, 오로지 친구공개로만 페이스북을 조금 하다가 아이고 의미 없다, 다들 인스타로 가는 구나, 하고 얼마 전에 계정을 청산해 버렸다.
돌아보면 지아가 그랬듯이 어릴 때의 나 또한 스스로에 대한 표현욕구와 남과 연결되고 싶은 갈망에서 인터넷 매체들을 붙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경험이 적었고, 글이나 말이 정돈되지 않았고, 사람들과 원만하게 소통하는 법도 잘 몰랐다. (지금도 잘 몰라…) 인터넷은 실제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완하는 도구인 동시에, 거리와 시간을 초월해 나랑 비슷한 취향과 생각을 가지고, 또 나만큼 외롭고 비슷비슷한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그래서 애정을 갈구하는 아이들을 만나는 포털처럼 활용되었다. 지금은 곁에 착 붙어서 내 몸의 점 하나하나를 신기해하며 세고 있는 꼬맹이(방금까지 그러고 있었다)를 비롯해 같이 할 시간이 많은 사람들이 생겨 외로울 새가 많지는 않지만, 그들과 모든 이야기를 나누고 모든 애호를 공유할 수는 없으니까, 아직도 가끔가끔 인터넷 구석구석을 헤매고 다니나 보다.
책을 읽게 되면서 책이야말로 덜 외로울 수 있는 훌륭한 매체이고, 내가 하는 질문과 비슷한 질문들, 거기에다 내가 아직 묻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더 잘 알려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전보다는 인터넷에 집착하고 방황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다행이지). 마냥 새롭고 열린 가능성으로 바라보던 인터넷에 대한 기대도 많이 줄었다. 결국 오프라인이나 온라인이나 같은 사람들이고, 거기에서 현실보다 더 낫게 굴면 그건 위선이고, 현실보다 더 나쁘게 굴면 그게 그들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결국 새롭게 열린 그 세상도 진짜 새로운 건 아니고, 완벽한 답이 될 수도, 제대로 된 위안이 되지도 못할 것이라는 실망이 몰려왔다.
그래도 인터넷에는 새로움에 대한 작은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어서, 새 책을 만나고 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하는 건 여전히 좋다. 흐르는 물살에 빠르게 쓸려가거나 흐름을 타지 못해 허우적대지 않고, 가볍게 흔들리는 물풀 정도로 적당히 적당히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와, 이렇게 말하고 보니 진짜 라떼에 투샷 추가한 진한 늙은이의 냄새가 나한테서 나잖아….ㅋㅋㅋㅋㅋㅋ 부인할 수가 없다...이제 새 매체는 젊은이들의 몫으로...나는 북플이랑 블로그나 할란다...ㅋㅋㅋㅋ
2장 리얼리티 쇼와 나
한 때 리얼리티 쇼가 텔레비전 채널 안에 넘쳐났다. 주제도 장르도 다양했는데, 기억에 남는 건 일반인 남녀 짝 지어주는 프로그램이나 성형수술 시켜주는 프로그램 정도?
연예인 아닌 일반인이 나와서 연기 아닌 어수룩하고 날 것의 모습을 보여주는 걸 다들 신선해했던 것 같다. 그러나 워낙 예능 프로그램 안 좋아하고 텔레비전 쇼의 모든 것은 연출되고 편집된 장면이라 생각했던 나는 ‘리얼리티’ 라는 이름이 주는 기만이 싫어서 더 안 좋아하고 안 봤다. 지금은 저런 용어조차 잘 사용하지 않는 게, 긴 시간이 흐르면서 모두들 리얼리티 쇼에는 ‘리얼리티’가 없다는 걸 간파했고, 그런 프로그램 속 출연자도 결국 순수한 의미의 일반인이 아니라 유명해지고 관심 받고 싶은 사람이거나 연예인 지망생이거나 유명세를 바탕으로 돈이든 뭐든 얻고자 하는 목적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퍼져나간 탓 같다. 그러니까 다들 짜고치는 걸 이미 다 알고, 그러면서도 그 재미에 보거나 또 식상해지거나 한 거지. 그렇게 유행은 흘러간다. 요즘은 그 절충형인지, 일반인과 방송인 사이 어중간한 영역의 사람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인기인 것 같다. 웹툰 작가나, 신인 가수나, 모바일 매체에서 먼저 유명해진 사람들. 너무 매끈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방송을 아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연출 맥락에서 어긋나는 독특함. 멋있는 척 예쁜 척 하지 않고 지저분하고 맹한 매력 같은 거….(그런데 왜 자꾸 기안84만 생각나냐….ㅋㅋㅋ티비를 안 봐서 아는 게 없음) 아 참 나는 텔레비전에 대해 예능이나 쇼에 대해 일도 모르면서 이런 걸 주절주절 잘도 쓰고 있다.
그런 나도 십여 년 전 그런 쇼에 가담(?)해보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다! 언니가 흑역사 썰 푼다!ㅋㅋㅋㅋ
지금은 종영되었지만 몇 년 간 인기를 끌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에 도전했었다. 이미 직장에 다닐 때니까 나이도 꽤 먹은(?) 이십대 중반이었다. 그 무렵 뭐에 꽂혔는지 이런저런 오디션에 도전했었다. 메일함을 뒤져보니 와라편의점 주제가 부르는 오디션에도 음원 메일 보냈었네...노래도 개못하는 주제에 부끄럽다. ㅋㅋㅋㅋ
엠넷 사이트 가입해서 온라인 오디션 페이지에 노래하는 음원인가 영상을 올렸다. 1차 심사에 통과했다는 연락이 왔다. ㅋㅋㅋ 현장에서 실시한다는 2차 심사 안내에 따라 토요일 퇴근하면서 (그땐 주5일이 아니었네…) 장충동 체육관에 갔다. 지하철 역에서부터 체육관 주변까지 젊은이들이 바글바글했다. 체육관 안에도 사람이 가득차 있었다. 구석에서 발성연습으로 목을 풀고 화려한 복장으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지나 한참을 헤맸다. 그러는 동안 깨달았다. 나는 이 사람들을 뚫고 선발되지 못할 것이다 ㅋㅋㅋㅋ설령 운이 좋아 카메라 앞에 서더라도 그 순간들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ㅋㅋㅋㅋㅋㅋㅋ.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그냥 밖으로 나와서 집으로 돌아갔다. 아이참 난 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참 다행이었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의 유명한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다. 많은 사랑을 받는 일은 동시에 많은 미움을 받는 일도 따라온다고. 사람들은 이유 없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만큼 이유 없이 남을 쉽게 미워하기도 한다. 유명해진다는 건 그만큼 세상에 내가 노출되는 일이고, 그 노출되는 방식은 나의 선택과 상관 없이 누군가의 목적과 의도에 따라 짜여진 틀이나 필터를 거쳐 왜곡될 수도 있다. 일단 세상에 드러나면 그렇게 알려진 모습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돌리기란 너무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해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그러니까 왠만하면 꼭꼭 숨자. 머리카락도 안 보이게. 조그만 구석에서 가끔 혼잣말 같은 재잘이나 끄적이자. 누군가 나를 알아주는 기쁨도 크지만 내가 나를 아는 기쁨을 더 크게 알고 작은 그룹 안에 적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에 만족하는 삶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려면 내가 나를 스스로 사랑하는 방법을 더 많이 깨우쳐야 한다. 조금씩 배우고 있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