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진실의 흑역사 - 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
톰 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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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5 톰 필립스.

작년 이맘쯤 독일 철학자가 쓴 책 ‘거짓말 읽는 법’을 읽었다. 그전까지는 막연히 속기 싫고, 속이기도 싫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런데 거짓말이란 생각만큼 발생 과정도 작동 원리도 단순하지 않았다. 책의 내용은 명확히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읽고 나니 인식과 발화와 진실에 관해 했던 그동안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스스로를 뼈가 다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물고기 같은 사람으로 여겨왔다. 거의 평생을 거짓말을 정말 못하고 시도하더라도 티가 심하게 난다고, 그러니 그저 있는 그대로 알리는 것이 최선의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실행했다. 그러나 결과가 늘 좋지는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불만 사항을 그대로 전하고 이런 점은 고쳐보자고 말하자 상사가 펑펑 울었다. 말하면 이해해줄 거라 생각한 사람은 시간이 지날 수록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을 불쾌해했다. 처음에는 호기심을 가지고 이면의 사건, 지난 삶의 궤적 같은 걸 듣고자 하던 사람들조차 결국에는 무거운 짐을 떠맡은 것처럼 캐묻던 입을 다물었다.

사람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 그래서 속고 싶은 것에 속는다. 이 책에는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일찍 간파한 사람들이 남을 열심히 속여먹은 사례가 여럿 나온다. 자신의 경제적 이득이나 명성을 위해 결국 남을 해치고 착취한 망나니들은 역사에 악당으로 기록되고 오래도록 비난 받는다. 그러나 때로 거짓말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목적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수단으로 활용되고 그런 일은 크게 욕을 먹지도 않는 것 같다. 수많은 여론전, 아픈 사람을 위로하고 낫게 하는 최면술, 흥밋 거리이자 재미를 주는 픽션들이 그렇다. 이 책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거듭 회자되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구라의 향연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그렇게 상습적으로 뻥을 쳐대고도 뭔 위인으로 이백년 넘는 동안 추앙받고 있잖아…

인류 역사가 내내 거짓말로 꽉 차 있었고 모든 거짓말이 유해한 것이 아니라고해도, 그러니까 포기하고 거짓말 잘해서 잘먹고 잘살자 하는 게 저자의 결론은 아니다. 오히려 노력장벽을 허물고 조금이라도 진위 여부를 파악하려는 시도를 하고, 진실을 가려버리는 수많은 정보제한(유료 정보같은 것…)을 풀고, 거짓을 가릴 수 있는 전문가와 언론인이 협력 좀 하자고 말한다. 낙관적이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건 전작 인간의 흑역사나 비슷한 것 같다. 비아냥거리고 시니컬한 블랙 유머를 마구 던지지만, 다 잘되자고 하는 소리 아니겠습니까...하는 것 같은.
별 상관 없는데 왜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하는 이명박 음성 지원되냐...진실, 거짓, 믿어, 못 믿어, 하는 소리 입에 올리는 경우는 대개 의심해 봐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싫어하는 상사 앞에서 싫은 티 안 내고 예의바른 시늉도 할 줄 알고, 갑자기 원격회의 시간 바꾸자는 연락에 육아 때문에 곤란한데요, 하고 거절할 줄도 알고, 굳이 묻지도 않는 말을 일부러 건네지 않고, 혼자만 알고 속에 담아둔 말의 가짓수가 제법 늘어나게 되었다. 결국 행복하려면 어느 정도의 자기 기만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안 그러면 내내 스스로를 미워하다가 삶이 끝나 버릴 것만 같아서, 그렇게 되었다.

+밑줄긋기
-유사 이래 진실과 거짓의 본질을 파헤친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 핵심적인 원리를 거듭 발견했다. 우리가 옳을 수 있는 경우의 수는 극히 제한되어 있지만, 틀릴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무한에 가깝다는 것이다.

-내 거짓말은 크게 세 가지 유형이었다. 내가 해놓은 일에 대한 거짓말, 내가 단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거짓말, 그리고 사회생활과 관련한 거짓말이었다.
첫 번째 유형의 거짓말은 주로 출판사와 에이전시 사람들에게 원고가 아주 잘 써지고 있고 벌써 많이 써놨다고 문자와 이메일로 알린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두 번째 유형은 주로 직장 동료들에게 내가 맡은 일을 곧 하겠다, 내일까지는 뭔가 결과가 나온다고 자신 있게 말한 것이었다. (역시 죄송합니다.) 세 번째 유형은 이른바 하얀 거짓말로, 이런 것을 하지 않으면 사회생활이 삐침과 싸움으로 얼룩져 파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니 어쩔 수 없었다. 이를테면 모임에 참석 못 하는 이유를 꾸며서 말했고, 문자를 이제야 막 확인했다고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을 했고, 친구가 누구와 싸우고 있을 때 네 말이 백번 옳다, 재수 없는 자식이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다는 식으로 위로해준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세상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대부분 참이라고 전제할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불안과 망상에 휩싸여 횡설수설하며 살게 될 테니까. 그러다 보니 우리는 무언가가 참이 아닐 가능성을 현격히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뉴스에서 뭐라고 하면 그게 아마 사실이겠지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멀쩡하고 믿을 만하게 보이면 사기꾼은 아니겠지 생각한다. 여러 명의 목격자가 뭔가를 보았다고 하면 뭔가가 실제로 있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한 전제들은 하나같이 생각만큼 믿을 만한 게 못 된다.

-멘켄은 이렇게 적었다. “진실의 문제는 대체로 불편한 데다가 따분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는 뭔가 더 재미있고 위안을 주는 것을 추구한다. 욕조의 실제 역사가 어떻게 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것을 파헤치는 일은 끔찍한 작업일 테고, 그렇게 고생해봤자 나오는 건 아마 일련의 평범한 사건들일 것이다.”
“내가 1917년에 지어낸 허구는 최소한 그보다는 나았다.”

-상상의 산맥부터 철저한 허구의 나라와 황당무계한 이국땅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의 구라꾼들은 잘도 구라를 쳤으니, 그 비결은 간단했다. 누가 세상 반대편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한들, 직접 가서 확인해보기는 굉장히 어렵다는 점이었다.

-탐험가들은 지도에 산이 있다고 하니 산이 있다고 상상했고, 지도 제작자들은 탐험가들이 봤다고 하니 지도에 또 반영해 넣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가공의 산맥은 오래도록 건재할 수 있었다.

-진짜 그럴듯한 거짓말은, 그래서 문제다. 한번 세상에 내보내면 소기의 목표를 이루고 나서 조용히 소멸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좀비와 같다. 절대 죽지 않고, 사람의 뇌를 노린다.

-우리가 만들어낸 괴물들은 과거에 갇혀 있지 않다. 우리와 발맞추어 나란히 걸어왔다.

-금융 거품 이야기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몇 장 앞에서 금융 거품 사례를 열거할 때 1637년 ‘튤립 광풍’이 빠진 게 의아했을지도 모른다. 네덜란드에서 튤립 값이 폭등했다가 폭락하는 바람에 수많은 튤립 투기꾼이 망한 그 사건은, 역사를 통틀어 아마 가장 유명한 금융 거품 사례일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논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가 되었는데, 그렇게 된 것이 1841년에 나온 찰스 맥케이의 고전 『대중의 미망과 광기』에 소개되면서였다. (사실 이 책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도 그 책에서 얻었다.) 안타깝지만, 그 이야기도 완전히 거짓은 아니라 해도 최소한 턱없는 과장인 건 맞는 듯하다. 맥케이는 튤립 광풍에 관한 정보를 금융 투기 반대론자들이 쓴 소책자에서 얻었는데, 실제로는 튤립 가격의 변동으로 망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튤립 버블이 뻥이 센 이야기였다니..)

-우리는 항상 개소리 속에서 살 수밖에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뿐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특히 ‘가짜 뉴스’ 금지법을 만들려고 하는 각국 정부가 유념해야 할 점이다. 그런 식의 대응은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새로 낳을 수 있다.)

-그러니 다음번에 어떤 정보의 출처를 확인할 때는, 이렇게 스스로 물어보자. 이 정보가 내 개인적 편향에 딱 들어맞는 건 아닌지? 나는 이 정보를 최대한 의심하면서 바라보고 있는 게 맞는지? 이런 태도를 사회 전체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자기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는 사람에게 칭찬해주는 아량을 더 키워야 한다.

-‘가짜 뉴스’ 담론의 제일 우려스러운 점은 사람들이 가짜 뉴스를 믿는다는 점이 아니라, 진짜 뉴스도 믿지 않게 된다는 점이다.

-“진실은 획일적이고 협소하다. 항상 끊임없이 존재하며, 별다른 능동적 활력 없이 수동적 성향만 지닌 자도 인지할 수 있는 듯하다. 그러나 오류는 무한히 다양하다. 실재에 대응하지 않으며, 순전히 창안자 머릿속의 창작물일 뿐이다. 그 드넓은 벌판은 영혼을 마음껏 펼치고, 무한한 재능은 물론 아름답고 흥미로운 허언과 낭설을 한껏 펴 보일 장이 된다.”
...아, 그 보고서(바로 위에 멋있는 말로 인용구 딴 글…) 저자가 누구냐고? 진실 탐구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그 실험을 자기 집 뒤뜰에서 주관했던 사람?
그야 물론,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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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1-15 18: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사진 보고 빵터진 1인 ㅎㅎㅎㅎㅎㅎㅎ

반유행열반인 2021-01-15 18:36   좋아요 1 | URL
코로나 무서워서 입원하신 그 분...

하나 2021-01-15 20: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개소리 속에서 산다는 말이 맘에 드네요. 이 정보가 내 개인적 편향에 딱 들어맞는 건 아닌지 점검하라는 것도요.

저도 투명하기론 남부럽지 않은 사람인데 요즘은 말을 좀 참게 됩니다. 열반인님과 비슷한 이유로요. 상사를 울리시다니 ㅋㅋㅋㅋㅋ (역시 나랑 비슷한데 늘 더 쎄다...) 저도 예전에 구지도교수님 거의 울릴 뻔한 적 있어서.. ㅋㅋㅋㅋ 진짜와 가짜 한참 나누던 시절이라.. 행복을 위해 사회적으로 원만한 사람이 되겠읍니다.

반유행열반인 2021-01-15 20:47   좋아요 2 | URL
같이 원만한 사람이 되어 봅시다 ㅎㅎㅎ개소리라는 말 이 책에 참 많이 나오는데 개가 억울할 것 같긴 해요. 그만큼 진솔한 소리가 없는데 짖고 낑낑대고 다 뜻이 명확 ㅋ

파이버 2021-01-15 2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싫어하는 상사한테 싫은 티 내고 왔는데 쫌 찔리네요ㅎㅎㅎ 둥글게 둥글게 되려면 저는 나이를 좀더 먹어야 할 것 같아요

반유행열반인 2021-01-15 22:18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 잘 하셨어요 앞으로도 가끔가끔 ㅋㅋㅋ

수이 2021-01-15 2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기기만 힘들다 너무..... 더불어 살아가기도....... ㅠㅠ

반유행열반인 2021-01-16 07:50   좋아요 0 | URL
그냥 자신을 쪼끔만 더 애껴줘요 내 미운털은 가끔 못 본 듯 하구요...ㅠㅠ

syo 2021-01-16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작의 글발은 여전하군요. 그 책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분명 재밌고 웃긴데, 왜 나는 꽂아놓고 읽지를 않는 걸까요.... 거짓말처럼....

반유행열반인 2021-01-16 20:18   좋아요 0 | URL
지난 번 책은 너무 뻔한 내용을 그러모은 재주가 가상했고 이번 내용은 잘 모르던 온갖 사기 거짓말 행각 모아 놓아 더 흥미롭게 읽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