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대구경북의 사회학 - 대구경북 사람들의 마음의 습속 탐구
최종희 지음 / 오월의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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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30 최종희.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앞머리에 롤이 달린 것도 모른 채 바삐 헌법재판소에 출석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탄핵 심판 파면 선고를 내리는 순간, 수많은 사람이 환희에 가까운 탄성을 내뱉었다.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갔던 사람은 어떤 성취감마저 느꼈을 것이다. 뭔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시작, 그런 역사적 순간을 지켜보는 감격.
그렇지만 어떤 사람들은 같은 시간 소중히 여기던 가치들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선고를 내리는 순간 찌릿한 아픔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어렸을 적 고향 풍경이 떠오르고 박정희-박근혜에게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던 부모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이 선고가 옳은가, 그른가 하는 인지적 차원보다 가족주의 서사의 연대 언어, 기억 언어, 무조건주의 언어가 작동하면서 문화적, 정서적 요인이 먼저 나를 파고들었다. 급기야 나는 삶의 한 곳에 간직한 향수가 와해되는 것 같은 허탈감이 몰려왔다.’ (이 책 에필로그 중)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에서 보았다. 박정희 육영수의 영정을 모시고 매일 아침 제사를 올리는 노인.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부부. 그냥 길가다 흔하게 보는 아줌마 아저씨, 혹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 친구 엄마 아빠 같은 어른들이다. 그런데도 정치적 공론장에서 그들과 맞부닥치면 서로를 괴물 취급하며 어쩜 저런 쓰레기들을 지지할 수 있지, 사고방식이 글러먹었어, 하고 물어뜯기 바쁘다.

대구경북 출신인 사회학자가 50-60대의 여성 남성 각 5명씩을 심층 면접하여 그들의 가치관을 분석한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부터 굉장히 흥미로웠다. 특정 지역민을 대상으로 지역색의 근원을 밝히려는 시도 자체가 참신해 보였다. 물론 질적 연구 특성상 과학적이고 통계적인 경향성이나 법칙 같은 건 기대할 수 없겠지만. 궁금했다. 이번에 도서관에 들어와서 냉큼 빌렸다.
연구자는 마음의 습속이라는 이론적 틀과 언어 분석을 통해 대구경북사람들 사이에 공통으로 흐르는 관습, 언어, 규범, 가치관을 유추해내고 그것이 가족, 정치, 종교 등에 미친 영향까지 확인한다. 일단 연구참여자들의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발화를 그대로 가져오니까 재미있었다. 열 명의 연구참여자의 생애사와 한과 거기에 어우러진 한국 현대사의 격랑까지. 물론 여러 요인을 분석하느라 발화와 사건이 반복되는 경향은 있지만 누군가의 삶의 이야기와 삶에 대한 태도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자세히 답하는 걸 들을 기회를 갖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국가주의, 집단주의, 갈등을 피하고자 하는 마음, 순종적인 태도, 현상 유지를 추구,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동시에 희생되는 여성들, 진보에 대한 불신 같은, 대부분 다른 지역 사람들이 (심지어 그 지역 출신 자녀들조차)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지역 특성의 밑바탕에 어떤 성장 배경과 공동체적 합의가 있는지 사회학의 관점을 반영하니 새로웠다.
본인이 속해있는 익숙한 것들을 다르게 보고 이해와 설명을 시도하는 연구자의 노고와 지역에 대한 애정과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주변의 부조리에 대해 단정하고 욕하는 건 열심히 해왔지만 쟤들 왜 저럴까?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진짜 왜 저러는지 밝히려는 노력을 얼마나 해봤나 돌아보니 살짝 부끄럽기도 하다. (그걸 할 생각을 했으면 논문을 수십편을 썼겠다. 사실 내가 쓰는 소설 대부분이 쟤들 왜 저럴까에 대한 상상이긴 하지만...)
다양한 관점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얼굴을 마주하게 해주는 연구물이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 호남광주의 사회학, 서울깍쟁이는 왜?, 너희가 제주사람을 아느냐, 뭐 이런 책들. 물론 특정 지역에 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시키는 위험은 항상 경계해야 한다. 나름의 설득력 있는 분석틀을 가지고,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한다면 (거기에 너무 미화하지도 작정하고 까지도 않는 적당한 애정까지 있다면) 나와 다른 사람들을 너무 미워하거나 적대시하지 않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밑줄 긋기
-“대구말 쓰지 마이소. 그리고 박근혜 불쌍하다고 카면 여 사람들 싫어합니데이.”

-(저자가 가치, 규범, 목표 차원의 코드 구성을 위해 던진 질문 세 가지)
1)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2) 좋은 삶을 안내하는 규범은 무엇인가?
3) 좋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일상의 삶에서 무엇을 어떻게 행하고 있는가?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은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것이다. 맏딸(혹은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문화적 힘이 또 다른 꿈을 꾸지 못하게 억제한다. 제도는 공유된 규범이며 공동의 합의가 될 수 있는 수단이기에 행위자들은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구조화한다. 암묵적인 습속은 가족 부양에 힘을 싣는데 이바지해야 한다고 명령한다. 그다음 절차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문화구조가 작동하고 있었다.

-질적 연구는 삶에서 행위자들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며 사회질서를 만들어나가는지에 대해 우선적으로 탐구한다. 삶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해석하고 분석하며 의미를 파악하려고 한다. 상식, 습속, 관습처럼 자신의 문화 집단에서 배태된 공적 상징체계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실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은 일상의 삶에서 상식, 습속, 관습처럼 제도화 되어있는 공적 상징체계를 자연적으로 주어진 듯 당연하게 받아들여 공동 질서를 만들어간다. 반면에 문제 상황에 처하면 고도로 일반화된 상징체계에 준거해 행위의 의미를 구성하기 시작한다. 일반화된 상징체계는 특정 세팅을 초월해 존재하며 삶의 목적을 더 근원적이고 실존적인 의미로 만들어준다. 이런 점에서 행위자들의 삶의 의미는 배태된 습속에서부터 도구적인 합리적 행위까지, 더 나아가 실제적인 차원에서부터 궁극적이고 실존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대구경북의 배경표상에는 전근대적인 문화구조가 내면화되어 있다. 아무런 보상 없이 근대화에 희생된 지나간 것들에 대한 향수가 하나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자본주의적 근대화는 전통적 생활형식은 파괴했지만 일상의 삶에서 더 높은 수준으로 보전되고 변혁되지 못했다. 오늘날 정치, 종교, 경제 등 “각각의 제도들은 내적인 자기 법칙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면서 상대적인 자율성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대구경북 사람들은 여전히 습관화된 행위, 즉 인습에 따라 움직이고 관습적 동의에 의해 이해 행위를 조정한다. 분명한 의식과 합리적인 정당성을 내세우는 사고는 집단의 가치를 위반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뒤르케임주의 문화사회학은 상징과 의례를 통해 집단의 공통된 행위를 유도한다. 대구경북의 집합의식 속에는 기억의 얼굴이 존재한다. 바로 박정희다. 이 인물은 대구경북의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 유년의 삶을 지배한 박정희에 대한 기억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새마을운동이 급물살을 타던 시대에 초록 모자를 쓴 사람들은 마을정화사업에 소맷자락을 걷어붙였다. 새마을지도자, 마을 동장, 부녀회장이라는 감투를 쓴 이들이 농촌 사람들을 계몽하는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박정희 시대근대화의 논리는 국가주의와 집단주의다. 가정의례준칙, 혼분식장려, 근검절약 등의 정신 개조는 국가가 개인의 사고방식과 일상의 생활습관까지 지배하며 국가의 명령에 잘 따르는 순종적 인간형을 창출한다.

-이 글에 등장하는 연구 참여자들의 서사는 나의 삶과 무관하지 않았다. 서사의 주인공이 나인 듯, 그들인 듯 지그재그로 교차하며 사회학을 공부하기 이전의 내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나는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를 겪으면서 정서적 요인이 크게 작동한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정미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선고를 내리는 순간 찌릿한 아픔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어렸을 적 고향 풍경이 떠오르고 박정희-박근혜에게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던 부모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이 선고가 옳은가, 그른가 하는 인지적 차원보다 가족주의 서사의 연대 언어, 기억 언어, 무조건주의 언어가 작동하면서 문화적, 정서적 요인이 먼저 나를 파고들었다. 급기야 나는 삶의 한 곳에 간직한 향수가 와해되는 것 같은 허탈감이 몰려왔다. 박정희 토템이 내 마음의 습속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마음이란 결국 개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고, 사회의 것이며 공유하는 매체다. 또한 문화적으로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삶의 마탕 위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예측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마음의 문제는 줄곧 개인의 문제로 치부해온 환경에 놓여 있었다. 하지만 마음은 사회의 문화적 차원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마음의 습속은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행위를 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것은 짧은 기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대에 걸쳐 서서히 형성되는 지배적 가치관으로서 사회화 과정에서 내면화되는 사고 양식이며, 한 가인이 이 세상에 오기 이전부터 이미 존재해왔다. (로버트 벨라 등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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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12-30 22: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작고 좁은데 사투리도 제각각 생활모습도 제각각인 것 같아요. 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편견과 고정관념은 경계해야겠지만 이런 연구는 흥미롭네요! :-)

반유행열반인 2020-12-30 22:31   좋아요 3 | URL
네 저 할매의 탄생이라는 경상도 마을 할머니들 생애구술사도 샀는데 (사놓고 와 사투리 어렵다 하고 보다 말았는데 ㅋㅋㅋ) 직접 마주하기 어렵고 마주해도 속까놓고 말 못 나누는 다른 지역 다른 세대 타자들이랑 만나는 책이 많아야 할 거 같아요.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 이렇게 지역 추상 명사로 퉁 치면 괜히 오해도 많은데 아예 그 지역 출신이 직접 설명해주면 조금 나을 것 같기도 하고요ㅋㅋㅋ

하나 2020-12-30 22: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워하지만 말고 이해해보려고 - 기획의도가 좋은 거 같아요. 저도 그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거 같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열반인님 2020 독서목록에서 재밌다는 코멘트 보고도 궁금했는데요. 상징과 의례, 마음의 습속으로 분석한 것도 궁금하고요!

반유행열반인 2020-12-31 06:25   좋아요 2 | URL
그렇다고 사 볼 만큼 수작은 아니에요...그냥 대화체 바른 논문이야 ㅋㅋㅋ 빌려봐요 서울시민이니까 서울전자도서관 하시면 진짜 시집 철학책 사회과학서 많더라고요

초딩 2020-12-31 2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반유행열반인님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아 이제 곧 2020년이 가려고해요. 붙잡고 싶기도하고 어서 보내고 싶기도하고요 ^^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반유행열반인 2020-12-31 23:44   좋아요 1 | URL
초딩님 올한해도 읽고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으시고 내내 건강하시길 빕니다. 늘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12-31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1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다그리기 2021-01-01 10: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의 소중한 책친구 열반인님!
새해엔 항상 건강하시고 더 많이 행복하시고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힘들고 지난한 2020년이었지만 좋은 책을 통해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게 해주신 열반인님같은 좋은 책친구를 얻게 된 감사한 해이기도 했네요.
소심한 제게 먼저 말 걸어주시고 좋은 책들 많이 만나게 해주셔서(멋진 노래도요^^) 감사했습니다.
알라딘에서 책을 구매 할때마다 ‘반유행열반인님께 thanks to‘라는 문장을 보면서 열반인님께 소개 받은 책이 정말 많구나 깨닫게 돼요.
친구가 되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잘 부탁드려요~

반유행열반인 2021-01-01 11:19   좋아요 2 | URL
책친구라는 말 정말 멋지네요. 멋진 이름으로 불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바다그리기님ㅎㅎ 저도 바다그리기님 덕에 읽거나 갖추거나 관심 갖게 된 책이 많았어요ㅎㅎ 누가 이렇게 땡투를 많이 해주시나 했더니 용돈까지 챙겨주셨던 거였군요 ㅋㅋㅋ 저야 말로 친구가 되어 영광이고 새해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페크pek0501 2021-01-01 12: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디오북을 선호합니다. 이북도 좋겠네요.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반유행열반인 님이 뜻하는 대로 일이 술술 풀리는 행복한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 ★ ★

반유행열반인 2021-01-01 17:3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페크님도 항상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