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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못하는 여자 - 린다 B를 위한 진혼곡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2월
평점 :
-20260213 이스마일 카다레.
‘부서진 사월’을 오래전 인상 깊게 읽고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들을 몇 개 모아놨다. ‘H서류’,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광기의 풍토’, 그리고 이 책 ‘떠나지 못하는 여자-린다B를 위한 진혼곡’ 이렇게 오래 꽂혀만 있었다. 그 중 얇아 보이는 걸 뽑아 들었는데, 깜짝 놀랄만큼 재미가 없었다.
주인공은 루디안이라는 극작가인데, 작품 심의가 통과되지 않아 극을 상영하지 못하는 중이다. 오스트리아로 여자친구가 연수받으러 간 사이, 미제나라는 자기 작품의 팬으로 여겨지는 여자와 관계를 맺는다. 미제나는 그를 만나 책에 저자 사인을 받으면서 린다B에게, 하고 남겨 달라고 했고, 당의 위원회에서 어느날 그를 찾아와 린다B와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사인본 책을 들먹이며 그에게 캐묻고 그녀의 자살을 알린다. 루디안은 유배중이어서 수도에 올 수 없었던 린다B와, 자신 앞에서 늘 수상한 모습이었던 미제나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미제나가 당이 보낸 스파이가 아닌가 의심하기도 하고, 그녀를 다시 보고 싶어하기도 한다. 다시 찾아온 미제나의 입으로 린다의 죽음의 원인이 될 만한 사건들을 전해 듣는다. 유배지를 떠날 수 없고, 자신이 사랑하는 작가를 만나러 수도로 갈 수도 없는 사실을 비관한 데다 레즈비언으로 오인까지 받으며 졸업파티에서 모멸을 겪은 린다는 음독 자살을 했다. 루디안은 꿈인지 유령인지 모를 린다와의 만남을 겪고, 독재자는 생각보다 빨리 망하고, 린다와 린다의 가족은 유배지에서 풀려나 수도 티라나로 향한다.
자유가 없는 세상에서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로 죽거나 창작에 방해를 받거나 이동이 제한되거나 사랑이 엇갈리거나 하는지 보여주고 싶었구나, 뭘 하고 싶었는지는 대충 알겠다. 그런데 작가 주인공을 세워서 그 작가의 사생팬들이 작가를 너무 사랑하지만 유배 때문에 그에게 닿을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팬을 대신해 그녀의 친구가 작가에게 접근했다가 사랑에 빠져 그가 만졌던 가슴을 팬인 친구에게 만지게 하고, 서로 어루만지고, 그게 소문이 나서 난리가 나고, 뭐 이런 전개가 너무 막장으로 보였다. 얼마나 위대한 창작자이길래, 창작은 창작이고 사랑은 사랑일건데 그냥 호색한 양아치가 물정 모르는 이제 막 고등학교 졸업한/할 어린 아이들이 엉겨오는대로 허허 거리다가 정체가 뭐냐고 밀치다가 아 또 만나고 싶다, 이러고 있고… 애착이나 친밀감은 느껴지지 않는데 그냥 그 육체를 다시 접하고 싶은 마음, 눈물 젖고 사연 있어 뵈는 미제나에게 연민을 갖기는 커녕 의심하는 주제에 거기에 사랑타령을 하고 있나, 이 작가 이 나이를 처먹고도 사랑이 뭔지는 아는 걸까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훌륭한 글을 쓰고 유명한 사람이라고 홀딱 반해서 앞뒤 안 가리고 그가 있는 곳으로 갈 거야, 하는 여자 아이들 설정도 괴기스러웠다. 감시하고 억압하고 통제하는 정치 권력 까겠다고 이런 식으로 대상화된 소녀들을 실컷 괴롭히다가 죽게 하고 유령 타령하고 그러는 게 읽고 나니 아 나 이거 왜 봄… 이미 사 둔 소설들 어쩌지… 싶은 것이다. 전개도 문장도 정신 없고 영 비호감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름 조금 알려졌다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감으로 책을 사 모으고 미리 호감을 가지고 읽다보면 망한 독서도 생긴다. ‘부서진 사월’은 피의 값이라는, 집안끼리 이어지는 끝없는 복수라는 알바니아의 독특한 폐습을 서늘하게 그려서 그래도 새롭고 흥미가 가는 부분이 있었다. 이 책은 알바니아가 공산권 하에서 독재 국가로 국민들을 오래도록 힘들게 했구나, 영화 ‘세르비안 필름’보고서 아 세르비아 좆망 국가구나, 그거 보여주려고 이렇게까지 해야 겠니, 싶었던 거랑 비슷하게 내가 잘 모르던 나라들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긴 한데 찜찜하구나, 싶었다. 뭐 정작 쿤데라 영감도 카다레 영감도 프랑스로 망명해서 체제 비판 신나게 하고 쓰고 싶은 거 다 쓰고 뭐 고통은 다른 민중들이 겪는 거고 그걸 전달해주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뭐 간접경험인 거고 고국을 떠나는 것도 고통이라면 고통일 것이지만 뭐 직접 핍박 받는 사람들 비하면 엄살 같기도 하고 방구석 키보드 워리어로 지랄지랄해도 아직 아무도 안 잡아가고 관심도 안 가지고 그러니까 아무래도 감시 받는다고 벌벌 떨지 않아도 되는 내 처지에 이렇게 까는 게 부당하다 싶기도 하고 그렇다. 주절주절 말이 많지만 짧게 말해 재미가 더럽게 없었다는 뜻이다.
+밑줄 긋기
-유령: 당신들이 사랑을 좋아하지 않은 건 사랑이 당신들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걸 내 탓으로 돌린 거고. 많은 세월이 흘렀고 전쟁도 끝났지만 넌 여전히 어떤 여자의 애정도 받지 못했어.
살인자: 입 닥쳐! 망할 자식!(103, 유령아 살살 때려라…유령이 살해된 사유는 빈정거려서 라고 한다...)
-프롤레타리아독재가 강력할수록 자유는 크리라. 사방에 새겨진 말이었다. 공연장 벽에, 발코니에, 국가의 상징 아래. 이 글이 펄럭이는 붉은 깃발 아래 모두가 조금도 놀라지 않고 행진했다. 이 글귀에 누구도 놀라지 않는데, 거의 쌍둥이처럼 똑같은 문구를 읽고 어찌 아연실색하겠는가? 암이 우리의 행복을 만들어주리라는 문구 말이다. (160)
-그 시절 린다는 열여덟 살이었다. 다음 ‘서류’는 그녀가 스물세 살이 되면 올 터였다. 그다음은 스물여덟. 그리고 두 번 ‘서류’를 더 받으면 서른여덟, 그리고 마흔셋. 아냐. 그후에는 더 살고 싶지 않을 거야. 고마워, 프롤레타리아독재, 난 네가 얼마나 선하고 올바르고 완벽한지 알아. 학교에서 우리 머리에 그렇게 주입했으니까. 그렇지만 난 너무 지쳤어...이런 삶을 더는 못 살겠어. (183)
-말하지 않겠다고 아버지에게 약속한 그 비밀이란, 신임받는 간부들에게만 제공되는 기밀 회보에서 읽을 수 있는 무시무시한 비밀 중 하나로, 어느 날 왠지 모르지만 아버지가 딸에게 얘기해준 것이었다. 그 회보에는 국가의 적들이 한 말이 실려 있었는데, 알바니아는 감옥과 유배지에만 자유가 없는 게 아니라 다른 곳도 마찬가지라고, 티라나에도 자유는 전혀 없으며 다른 곳도...그 어디에도 자유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건 적들이 하는 말이었다, 물론. (1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