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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왕
로버트 슈나이더 지음, 김해생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그러고 보면 나는 참 문화생활과는 한참 동떨어진 사람인가 보다. 그림을 좋아하면서도 미술전 한번 가본적 없고, 연극을 좋아하면서도 20대때 단 한번 본게 전부인걸 보면 말이다. 영화를 제외하고는 직접 찾아가 관람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런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멀더라도 나는 문화를 즐긴다.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기도 하고, 그림이 있는곳에는 그림에 집중하기도 하고 심심찮게 TV에서 나오는 클래식 음악도 즐겨 듣는다. 그 중 오페라 역시 내 관심분야중 하나이기도 하다. 영화속에 나오는 오페라를 보며 그 내용을 이해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한다. 영화 <아마데우스>나 <파리넬리>는 나를 오페라의 세계로 안내한 큰 역할을 담당했다. 모짜르트의 비운의 삶과 파리넬리의 가슴아픈 사연을 그들만의 언어로 모두의 마음을 울리게 한다. <아마데우스>의 한장면에 삽입되었던 모짜르트의 '마술피리' 역시 두통이 올 정도로 엄청난 음역대를 아울러 온 몸에 소름이 돋을지경이었고, <파리넬리>의 '나를 울게하소서'는 두말 할 것도 없다.
<밤의 여왕>은 노래로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는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안토니아는 가난한 부부의 둘째딸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난하지만 가족들의 행복해 하는 얼굴을 보기위해 엄청난 빚을 지며 그들의 생활과는 맞지않게 호화로운 생활을 한다. 그러다 결국 파산하게 되고 아버지는 실종된다. 어머니는 아기를 낳다 돌아가시고 고아가 되어버린 네 자매중 안토니아는 인신매매단에게 팔려가게 된다. 미국으로 가게 된 안토니아는 인신매매단으로부터 탈출하게 되지만 어려운 삶은 그녀를 도둑으로 창녀로 만들어 버리고 점점 피폐해져버린 그녀는 노래도 잃고 만다. 하지만 그녀의 어두워진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된 음악가의 도움으로 그녀는 다시 인간으로의 삶으로 되돌아오고 그녀의 꿈을 이룬다.
사람의 목소리는 타고나야 하는거라는 생각이 내가 노래를 부를때면 늘 떠오른다.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늘 따로 있기때문이다. 안토니아 역시 노래를 하는 목소리를 타고 태어난 소녀다. 어릴적부터 안토니아가 노래를 부르면 모두가 안정을 찾았고, 안토니아가 인신매매단에게 팔려 미국으로 향하던 여객선 안에서도 안토니아가 노래를 하면 주위가 조용해지고 울음을 터뜨리던 사람도 눈물을 멈추었다고 한다. 물론 노력으로 연마된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그 노력은 몹시도 눈물 겹다. 명창들의 후일담으로 심심찮게 듣는 목에서 피를 세번 토해야 하는 뼈를 깎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태어나면서 부터 아름답고 향기로운 목소리를 가졌다면 이것은 신의 축복어린 선물이 아닐까?
안토니아는 특별한 감각을 가졌다. 바로 후각이다. 그 사람을 냄새로 기억한다는 것이다. 8살에 불과한 안토니아는 삶이 길지않아 그동안 자신이 맡았던 냄새로 구분할수밖에 없다. 시큼한 냄새라든지 엄마젖냄새, 풀냄새, 오래된 종이냄새 이런식으로 분류를 하여 사람을 구별했다. 안토니아가 좋아하는사람에겐 꼭 좋은 냄새가 나고 안토니아가 싫어하는 사람에게선 악취가 난다고 했다. 그런 묘한 감각은 나의 딸도 가지고 있는듯 하다. 내 딸도 남다른 예민한 후각기억을 지녀서 가끔 나를 당황케 만들기도 한다. 집집마다의 냄새를 분류해서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우리집냄새도 있다고 한다. 나도 후각하면 절대 빠지지 않는 코를 가졌는데 우리집냄새는 나도 모르는 냄새다. 과연 자신의집 냄새를 알고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몹시 궁금하다.
안토니아는 어려운 성장기를 거쳤다. 8살에 고아가 되버려 팔려간 안토니아는 도둑이 되고, 창녀가 되어 세상에서 버림받았다. 부모의 역할이 새삼 마음에 와 닿지 않을수 없다. 안토니아의 부모가 만약 근검절약하며 살았다면 안토니아 역시 생활은 힘들지라도 부모 슬하에서 안전하게 자랐을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족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사치를 누렸고, 선물하는 기쁨을 맛보는 남편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않기위해 돈이 어디서 났는지 물어보지 못했던 안토니아의 어머니는 결국 그들의 우유부단함으로 딸들에게 큰 고통을 안겼다. 남편의 수입이 어떻게 되는지, 돈이 어디서 나서 선물을 매일 사오는지, 미래를 위해 돈을 아끼자는 말을 결코 하지 않았던 그녀의 어머니는 솔직히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이가 넷이고 뱃속에 아기가 또 있는데도 그들은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바꾸려 하지 않았고 결국엔 파국을 맞았다. 부모의 안일한 생활방식이 자녀들을 거리로 내 몬 것이다. 부모란 낳았다고 해서 모두 부모가 되는것은 아닐것이다.
안토니아는 그녀의 목소리를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났다. 만약 그녀의 노랫소리를 듣고 지나치는 사람만 있었더라면 안토니아는 그런 하류층을 전전하다 일찍 세상을 떴을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부둣가에서 불렀던 노래를 들었던 음악가 한명이 그녀를 구했다. 그리고 그녀를 사랑으로 치유해주고 그녀의 꿈을 이루어준다.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는것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안토니아뿐 아니라 우리 모두는 어쩌면 그런 능력이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것이다. 다만 알아봐주는 사람을 만난것인가 만나지 못했을것인가로 나뉘어있을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어찌보면 힘든인생을 살아온 인생역경기라고도 볼수있는 책이라고도 할수 있겠다. 내가 원하는 만큼 오페라에 관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가 어떻게 자신의 꿈을 이루었는지 볼수 있었던것이 한가지 위로라면 위로라고도 할수 있을것 같다. 밑바닥생활의 어린소녀의 모습이 안타깝기는 했지만 책을 덮고 난 후 가슴에 밀려오는 감동이 없는것은 어쩔수가 없다. 도둑이자 창녀인 거리의 부랑자가 노래좀 잘해서 오페라가수가 됐다는 정도로만 요약한다면 심한 비약일수도 있겠지만, 그녀의 노래나 목소리를 좀 더 독자들에게 설명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밤의 여왕>이라는 제목도 좀 쌩뚱맞기는 하지만 꿈을 이룬 소녀의 이야기에 잠시 귀를 기울이는것도 이 무더운 여름밤에 시간을 잊는 좋은 방법이기도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