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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그림 이야기 - 옛그림의 인문학적 독법
이종수 지음 / 돌베개 / 2010년 7월
평점 :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한다. 초등학교때 내 그림이 교실 뒤에 단 한번도 붙혀진 적이 없다고 하면 할말 다 한것 아닌가 싶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내 짝꿍의 그림은 내가 봤을때 시시하기 그지없었고, 내 짝꿍의 그림이나 내 그림이나 거기서 거기처럼 보였다. 내가 좀 더 잘 그린것 같이도 보였다. 그러나 교실뒤에 붙혀질 친구들의 그림중 10%안에 들만한 그림중에 내가 그린 그림은 없고, 내 짝꿍의 그림이 붙혀졌을때 난 깨달았다. 거기서 거기같았던 그림이라고 생각했지만, 내 그림에서 뭔가가 심각하게 결여된게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어떤면에서 부족한건지 알수가 없었고, 도무지 알 수가 없자 그림 그리는것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초등학교때 너무나 일찌감치 그림을 포기해버려 늘 미술시간이 힘들었지만, 내가 포기하지 않은것도 있다. 바로 그림을 보는것이다.
난 그림 보는것을 좋아한다. 너무 좋아한다고, 엄청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아니다. 살아가다, 지나쳐가다 그림이 보이면 그때 그림을 본다. 일부러 찾아가서 그림을 보지는 않는다. 글쎄 혹시 내가 수도권에 살면서 문화를 즐기는 시설이 많다고 했다면 난 일부러 찾아가서 봤을까? 솔직하게 말하면 아닐것 같다. 하지만 나는 단언한다. 나는 그림 보는것을 좋아한다. 일부러 찾아가서 봐야만이 그림을 좋아하는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하지는 않아도 나는 그림 보는것을 좋아한다.
그림을 볼때의 나의 심정은, 화가는 어떤 마음으로 그렸을까를 생각해본다. 여기는 어딜까. 어떤 이야기일까, 질감은 이렇구나, 이 터치 하나하나에 화가의 손길이 녹아있을것을 생각하면 마음까지 짜릿하곤 한다. 어찌보면 나는 그림을 좋아한다고 해놓고 이렇게 일차원적인 생각만으로 그림을 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래서 이 그림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했다. 내가 알지못한 그림에 대한 화가의 속내를 혹시라도 훔쳐볼수 있을까 하고.
나는 지금까지 그림을 봤다. 그런데 이 책에서 아주 흥미로운 단어 하나를 포착했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이다. 그림을 읽다니!!! 너무 낯선단어에 흠칫했지만 그 낯설음속에 내가 깨닫지 못했던 어떤 감정 하나를 찾아낸것만 같아서 마치 선사시대의 유물을 만난것과도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림을 보고 읽는다는것 바로 그 이야기들이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그림을 먼저 감상한 후, 저자의 글을 읽었다. 그림의 시대적 배경과, 그 이야기에 얽힌 여러 화가들의 그림과, 그에 따른 숨은 이야기들은 내가 궁금해 했던 것들을 알려주었다. 난 그동안 서양화를 많이 봐왔지만 동양화는 제대로 본적이 한번도 없었다. 시대에 따른, 화가들에 따른 화법의 설명이 곁들여져 있어 너무나 유익했다. 화법중에 갈필이라고 말하는 백묘법이 이채로웠다. 메마른듯, 까칠한듯 표현하는 백묘법으로 표현한 그림도 너무 대단했다. 만약 실력없는 사람은 시도자체도 하지 못할 궁극의 화법이다.
한가지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귀거래사>이다. 이 느낌을 어떻게 말로 전해야할지 아득하기만 하다. 나는 이 책을 엄청 오랜시간에 걸쳐 읽었다. 물론 바쁜 일상도 한몫했지만 이야기속의 그림에 자꾸만 빠져들어 읽고 또 읽고, 보고 또 보고, 감동하고 또 감동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지못한 분을 위해 <귀거래사>를 옮기고 싶지만, 내가 섣불리 어떻게 했다가는 오히려 손상을 입힐까 두려워 감히 어떻게 옮기지도 못하고, 그 감동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본다.
너무 슬픈이야기이다. <귀거래사>라는 제목은 많이 들어서 전혀 낯설지가 않고, 제목에서 어느정도 알 수 있듯이 어떤 내용일지 짐작 되는바도 있다. 슬픈감동이라는것이 바로 이런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라는걸 알았다. 그림을 보는것을 좋아했지만 이런 감동을 받게 될 줄은 몰랐었기 때문에 난 사실 조금 눈물을 찍어내기도 했다. 내용과 더불어 그림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이 너무 슬퍼보여 어쩔수가 없었다. 다 읽고 난 지금도 마음이 아릿하다면 얼마나 큰 감동이었는지 충분한 설명이 될까? 충분치가 않다. 그 감동의 깊이를 전할 방법이 없고, 말재주가 없는것에 진한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동양화에서는 그림의 종류가 있다고 한다. 권, 축, 병풍, 삽화가 그것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아주 친절하게 잘 설명해 놓았다. 두루마리 형식의 그림 보는 방법도 배웠고, 어떻게 감상해야하는지도 충분히 알게 됐는데 과연 내 손에 두루마리를 들고 그림을 감상할 날이 오기는 올까 궁금하다. 축이나 병풍 삽화는 어쩌면 마음만 먹는다면 쉽게 볼수 있을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림이 너무 작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고 싶은데 그림이 너무 작아서 제대로 볼수가 없다는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돋보기를 대고 봐야 깨알같은 인물하나를 찾을 수 있을 정도이니 눈이 어두운 사람은 아무리 그림에 대한 이해를 했다 하더라도 주인공을 어디서 찾아야할지 모를것이다. 마치 <윌리를 찾아라>를 하는 기분도 들고.
그림을 좋아한다면 한 번 읽으며 보는것이 좋을 책이다.
아마 분명 감탄을 하게 될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