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읽고 싶은 날이다. 몇 주동안 시를 읽은 적이 없다. 물론 다른 이유로 읽어주기를 한 적은있다. 오늘 낮에도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와 김종삼의 '성탄제'를 읽어주었으니까.
내일은 서점에 나가야겠다. 내가 가는 서점의 시집코너는 쾌쾌하다. 물론 여고생의 감성을 자극하는 시들은 화려하게 놓여있다. 그러나 나는 여고생이 아니다. 감수성이라는 것도 동일한 것의 반복에는 질리는 것인지 한때 매달렸던 감성의 시들은 이제 마음에 차지않는다. 한쪽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외면당한 케케묵은 것들에게 눈이 간다. 그런데 서점에서 시집을 고르다보면 내가 이 시인의 시집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간혹 같은 시집을 사는 실수를 범한 적도 있다.
책장의 시집들을 훑어 보았다. 이미 읽은 시집일텐데 낯설게 느껴진다. 뽑아들고 펼쳐본다. 기억이 없다. 밑줄도 접힌 부분도 없는 시집은 더 그렇다. 다행히 접힌 부분이나 연필로 끄적여놓은 흔적들을 발견하면 조금씩 그 시에 대한 경험이 얼핏 떠오르기도 한다.
망설인다. 다시 읽어야 할까 아니면 기억은 없어도 읽은 것이니까 그냥 꽃아둘까. 또 망설인다.
나의 시읽기는 많은 고민을 동반한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쩔쩔매면서 한두편을 간신히 읽고, 어떤 날은 단숨에 한 권을 통째로 읽어버리기도 한다.
나는 아직도 읽기방법을 찾지 못하고 시앞에서 배회하고 있다. 어떻게 시앞에서의 배회를 멈출 수 있을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