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꽃>, 최두석, 문학과지성사, 뒷표지 글.
얼마 전에 다섯 살 난 아들을 재우기위해 가슴을 토닥거리는데 아이의 입에서 불쑥 "아빠, 지나간 건 모두 꿈이야"라는 말이 튀어나와 그 말을 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잠들면 무슨 꿈을 꾸게 될지 궁금한 이 아이에게 꿈이란 단어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의미로 쓰였을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일은 꿈처럼 쉽게는 아니지만 세월을 두고 잊혀져간다. 다섯 살 이전의 일들은 대부분 되새길 수 없는 것으로 꿈처럼 잊혀질 것이다. 자신의 직접 체험이거나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되새기며 사는가. 또한 자신의 직접 체험까지도 일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이 잊게 되는가. 그리고 결국 한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그의 마음속에서 감겼다 풀렸다 하던 온갖 이야기의 실꾸리를 땅에 묻는 것이 된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홀로 되새기거나 다른 사람과 주고받는 일종의 문학행위를 함으로써 이야기가 꿈처럼 잊혀지는 것을 막는다. 이야기의 생성 변형 및 교류는 인간에게 원천적이고도 보편적인 문학 행위이고 사람이 다른 동물들로부터 구분되는 고유한 특성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듯하다. ----- '이야기 시론'에서
-------------------------------------------------------------------------------------
최두석의 시집 "성에꽃"을 읽게 만든 이유는 시집 뒷표지에 적힌 위의 글때문이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판된 시집을 고를때, 뒷표지의 글은 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물론 모든 시집을 다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만은 그것은 나로서는 여러 가지 이유때문에 실현불가능한 일이다.
며칠째 꿈을 꾸며 잠을 잔다. 흐릿한게 남아있는 꿈에 대한 기억이 때로는 나의 하루 전체를 붙잡기도 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인데도 꿈은 나의 머릿속을 뛰어다니며 실제의 나의 삶에 관여하고 있다. 꿈을 해몽해준다는 사이트라도 들어가볼까. 프로이트의 말대로 내가 해결하지 못한 욕망이 끝내 정리되지 못하고 나를 괴롭히는 것인가.
아이의 말대로 지나간 것은 모두 꿈이다. 또한 꿈은 지나간 것이다. 꿈이 허상이면서도 나의 삶에 간섭하듯 지나간 것들은 모두 꿈이되어서 여전히 나의 삶을 간섭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삶을 살아가는 일은 꿈을 남기는 일인가. 아, 꿈엔 나의 과거가 담기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