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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킬러 덱스터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36
제프 린제이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계획했던 대로 장르소설이나 쭉쭉 달려본다. 오랜만에 집어 든 덱스터 시리즈. 킬킬거리게 하는 맛은 여전하구나. 미국서 8편 이상 나온 걸로 아는데, 국내에는 5편까지만 출간되었다. 2014년 이후로 현재까지 미출간 상태인 걸로 보아, 국내서는 썩 인기가 없었는갑다. 솔직히 대놓고 말하면 캐릭터며 분위기며 작품의 컨셉이 초기하고는 많이 달라진 탓에 재미가 반감됐다. 특히 초기 때에 보여준 날것의 매력이 많이 죽었다. 하여 시리즈가 더 나온다고 해도 그리 읽고 싶지는 않다.
작품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하면 주인공 덱스터는 정의로운 연쇄살인마이다. 낮에는 경찰 수사를 돕는 혈흔 분석가로 활동하며, 밤에는 갱생 불가한 사회의 쓰레기들을 처분하러 다니는 사신이라 하겠다. 덱스터에게 살육을 불러일으키는 악마가 들어있음을 알아본 양아버지는, 그걸 누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악인들을 제거하는 데에 활용하게끔 양육하였다. 그리하여 토막 살인을 저지르는데도 거부감이 들기는커녕 다크 히어로처럼 느껴지곤 하니, 진짜 설정 하나는 기똥차지 않은가? 이 전무후무한 독보적 캐릭터의 등장은 말 그대로 센세이션이었다. 그랬는데, 분명 그랬었는데 어느새부턴가 다리를 절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휠체어 신세가 되고 말았다.
시리즈 초에는 주인공이 본연의 설정에 충실했다. 사회 악을 처단하며 나름의 정의를 구현하고 개인의 취미생활을 누렸다. 근데 이 영혼 없는 친구가 사랑에 빠지고 가정을 꾸리더니 인간답게 살고자 발악해대는 것이다. 그리하여 킬러의 자아와 일반인의 자아가 틈만 나면 싸워대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해프닝들이 진짜 골 때리게 재미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덱스터의 멘탈 컨트롤이 좋아져서 평범한 인간에 가까워지고 말았다. 물론 이 시리즈가 괴물이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다룬다지만, 더 이상 킬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만큼 변절돼버린 캐릭터에 대단한 매력을 바라는 건 솔직히 억지라고 본다. 아무튼 시리즈는 이어가야겠고 덱스터는 단물이 다 빠졌으니, 저자는 주인공보다 기타 설정들에 힘을 쏟고 있었다. 이번 편에서는 그런 설정 변화의 시도들 덕분에 볼거리가 풍부해서 좋았다.
여학생 두 명이 실종되고, 한 시의원의 아들이 용의자로 지목돼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 그러다 한 명의 시신이 발견되는데 신체의 일부가 사람의 이빨로 물어뜯긴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어서 발견된 경찰의 시신에도 동일하게 뜯긴 자국이 남겨져 있었다. 사람을 뜯어먹는 식인종과의 대결이라니. 아무튼 사건 수사 과정에서 덱스터에게 갖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가장 먼저 자신과 똑같은 사이코패스의 친형이 나타나 덱스터의 가족 놀이에 끼어든다. 1편에서 빌런으로 활약했던 형은 예고도 없이 집을 드나든다. 덱스터는 자신보다 형을 더 좋아하는 아내와 의붓자식들에게 점점 무시당하는 기분이 든다. 형은 자신의 자리도 뺏었지만, 아이들을 살인마의 길로 끌고 가려 했다. 꼭 덱스터가 집에 없을 때 와서 판을 치니까 일이 전혀 손에 안 잡히는 거다. 그럼에도 정색조차 못하는 찐따미 가득한 덱스터.
한편 의붓 여동생이자 경찰인 데보라의 성질머리는 예전보다 심해졌다. 거기에다 괜한 히스테리까지 부려대는데, 그게 다 오빠처럼 가정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이 삐딱하게 튀어나오는 거였다. 이게 진짜 골 때리는데, 그렇게나 부럽다던 오빠는 정작 가정에서 왕따에 찬밥 신세란다. 아무튼 이번 편에서 데보라의 태도는 정말 묘연했고, 여태껏 본 적 없는 동생의 심경 변화가 자꾸 신경 쓰이는 덱스터. 이래저래 동생에게 휘둘리다가 악마의 적신호를 등한시한 덱스터는 연달아 함정에 빠진다. 이제야 좀 인간다워져가는데 다시 또 사이코패스 킬러가 될 순 없는 노릇. 헌데 반대로 동생은 악마를 불러내라고 닦달해대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코미디가 따로 없다. 그래, 내가 이 맛에 덱스터 시리즈를 읽었더랬지.
일단 시리즈 절반까지 진행된 시점에서 몇 가지 짚자면, 이대로 덱스터를 보통의 인간으로 바꿔버릴 것인가가 관건이다. 아직은 살육 본능에서 자유롭지 못하나, 평범한 아빠로 살고 싶단 마음이 간절한 덱스터. 킬러라는 직업을 버리고도 세계관을 유지하는 게 과연 가능할지 궁금하다. 두 번째로, 악마를 가진 인물이 너무 많다. 주인공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이 악마가 형에게도 있고, 의붓자식들도 있고, 심지어 5편에서는 빌런에게도 들어있었다. 아니, 형이야 혈육이니까 그렇다 쳐도 악마가 뭐 바이러스성도 아니고 이렇게 많은 건 진짜 아니라고 보는데. 아무리 덱스터의 매력이 죽었다 한들 이렇게 악마를 막 뿌리고 다니면 쓰나. 세 번째로 세계관 확장 좀 해야겠다. 5편까지 왔는데도 아직 주요 수사 인원이 주인공 남매뿐인 건 너무 하지 않은가. 제발 멀쩡한 동료부터 만들어. 매번 계란으로 바위치다가 천당 구경하는 게 지겹지도 않냐 그래. 이외에도 뭐가 많지만 여기서 끝내겠다.
기존의 색깔과 많이 바뀌어서 찬반이 꽤 나뉠 듯하다. 아쉽긴 해도 충분히 재미는 있었다. 앞으로의 방향이, 내가 기대하는 방향대로 갈 것 같지 않아 이제 그만 하차하련다. 더 출간해 줄 기미도 안 보이지만. 요즘에는 이 같은 모던/클래식 스릴러소설을 만나기가 어렵다. 요즘 나오는 작품들은 뭐랄까, 거부감이 들 정도로 세련되다고나 할까. 그래서 새로운 책들이 대거 쏟아져도 막상 손이 잘 안 가고 그렇다. 이만하고 잠이나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