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섹스 - 그놈들의 섹스는 잘못됐다
은하선 지음 / 동녘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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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페미니즘에 대해 궁금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알아본다거나 할 마음은 없이, 그냥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남성 우월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그 부분에 대해 불평등하다고 느끼고 있구나, 당연하다고 인지하는 사람들보다는 조금 화를 내고 있구나, 내 안에 페미니스트 기질이 조금 있는 건가, 정도로만 인지하고 있었다. 페미니즘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 주문한 책이었다. '이기적 섹스'까지는 하지 못하더라도 '그놈들의 섹스는 잘못됐다'라는 어구에서는 분명히 확 와 닿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겐 여러모로 충격적인 책이었다. 읽기 어려운 책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녀의 이야기가 조금 충격적이긴 했다. 사실 누구라도 겪을 수 있고, 특별히 이상한 부분이 아닐 수 있다. 그저 조금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뿐인데, 이것으로 인해 그녀가 얼마나 많은 따가운 시선들과 비난을 받아왔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어감을 좋지 않게 느낄 수 있지만, 그녀가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여성들이 얼마나 알게 모르게 남성주의 사회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으며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여자라면 누구라도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목소리를 내느냐 아니면 참고 사느냐에 따라 페미니스트의 여부가 결정되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그래서 종종 좋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하는 페미니스트들도 있고, 소극적인 페미니스트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인 편인데, 내가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의견에 모두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척박한 환경에서 이만큼이나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이 사회를 바꿔온 것에 있어서는 그들의 공이 크다고 생각한다.

 

  성 평등주의라, 얼마나 좋은가.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이 바뀌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으로서 살아가기가 녹록지 않다. 특히 그것이 성과 관련되어 있을 땐 더욱 그럴 것이다.

 

 

"오로지 섹스만을 즐길 줄 아는 여자는 쉽게 다리 벌리고 다니는 년이라고 욕먹고, 섹스하고 싶은데 '허락'해 주지 않는 여자는 비싸게 군다고 욕먹으며, 버리려는데 자꾸 눈치 없게 들러붙는 여자는 구질구질하다고 욕먹는다. 그 어디에도 '여자'들의 욕망과 생각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남자들 비위 맞추는 법만이 침대에서 남자에게 사랑받는 법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돼 여자들을 현혹시킬 뿐이다.

 

'남자는 질투의 동물이기 때문에 섹스를 했어도 안 한 척 최대한 경험이 없는 것처럼 보여야 된다. ... 남자는 의외로 섬세한 동물이니 섹스가 불만족스러워도 잘 돌려서 말해야 한다. 남자의 자존심을 죽이면 발기부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조금만 바꿔 생각해 보면 전부 모든 일의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발기부전도 남자 자존심 못 세워 준 여자 탓, 침대 분위기가 시들해도 섹시하지 못한 여자 탓, 싫증 나서 바람나도 여자 탓, 쉬운 여자 취급받아도 다리 벌린 여자 탓." _85p

 

 
'세상의 모든 답은 남자들이 정한다. 여자들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남자들이 정해 놓은 틀에 몸을 끼워 맞춰야지만 개념 있는 여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_266p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들먹일 필요까지도 없이, 그저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섹스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거나, 이런 부분에 특히 흥미가 많다거나, 그 이유가 어찌 됐든 각자 읽고서 받아들일 부분이다. 책 선택에 도움이 될지 모르니 작가 소개를 잠시 읊어드리도록 하겠다.

 

 

  은하선 : 섹스를 좋아하는 페미니스트. 섹스샵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블로그에 다양한 섹스토이 리뷰를 연재해왔을 만큼 섹스와 섹스토이를 좋아한다. ... 10대 여성들의 즐겁고 안전한 섹스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이 작가 소개에 다 나와있다. 책을 읽기 전 앞표지, 뒤표지, 작가 소개까지 분명 다 읽고 시작을 했는데도 왜 본격적인 책 내용을 읽을 땐 더 새롭고 충격적인지. ㅋ 섹스토이에 관한 부분은 충격이자 동시에 다른 세상에 입문한 느낌이었고,-나같은 애가 어디 가서 섹스토이 이야기를 들어 보고 섹스토이를 보기나 해보겠는가. 성인이면서도 왠지 성인용품이라는 간판을 똑바로 쳐다보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것만 같아서 멀리 도망 다니기만 했었다.- 10대 때부터 시작한 성 경험은 충격과 혼돈 그 자체였다. 그녀가 주장하는 것처럼 10대들의 건전하고 안전한 성문화를 조장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가장 어려운 책은 어려운 단어들이 많다거나 어렵게 읽히는 어려운 내용에 대한 책이 아니라,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한없이 가볍게 읽을 수도 또 한없이 깊게 생각할 수도 있는 책인 것 같다. 고민은 자신의 몫일 거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뒤, 내 몸이 원하는 섹스를 찾으라고 말하는 그녀. 나는 섹스가 좋다는 그녀가 이해가 너무 안 되면서도 이해해보고 싶어서 이 책을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면에 있어서든지 자신의 소중한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목소리를 내는 일은 참 중요한 것 같다.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표현하고 그 방향으로 이루어 나간 그녀가 조금 멋있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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