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사랑에 빠지다 - 현대문학 55주년 기념 시집
장석남.천양희 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시라서 빨리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오래 걸린다. 현대문학 창간 55주년을 맞아 현대 시인 70인들이 사랑에 대한 시를 내놓았다. 벌써 4년 전 책이긴 하지만, 시인 한 사람의 한 작품도 읽기가 황송한데 이렇게 선물 꾸러미 같은 책을 만나게 되어 좋았다. 여러 시인들의 시들을 엮은이 마음대로 모아 붙인 책이 아니라, 시인 한 분마다 작품을 퇴고하고 그에 대한 시작 노트를 직접 남겨주셔서 더 의미있고 좋은 책이었다. 오랜만에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맛있고 기뻐했던 것 같다. 역시 나는 시가 좋다.

 

 

`꽃 필 때 널 보내고도 나는 살아남아
창 모서리에 든 봄볕을 따다가 우표 한 장
붙였다 길을 가다가 우체통이 보이면
마음을 부치고 돌아서려고

내가 나인 것이 너무 무거워서 어제는
몇 정거장을 지나쳤다 내 침묵이 움직이지
않는 네 슬픔 같아 떨어진 후박잎을
우산처럼 쓰고 빗속을 지나간다 저
빗소리로 세상은 여위어가고 미움도 늙어
허리가 굽었다` - 천양희, `우표 한 장 붙여서` 중

`어쨌거나 파꽃은 피고
달팽이도 제 눈물로 점액질을 만들어
따갑고 둥근 파꽃의 표면을
일보 일보 가고 있다
냉장고처럼 나는 단정하게 서서
속엣것들이 환해지고 서늘해지길
기다리는 중이다` - 김소연, `투명해지는 육체` 중

`사랑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랑을 너무 잘 알아버렸기 때문일 수도, 사랑을 너무 모르게 되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이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일이 나의 하루하루이다. 모든 몹쓸 것들이 쓸모를 다하는 시간이다. - 투명해지는 육체, 시작 노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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