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암이지만 비키니는 입고 싶어 일상의 스펙트럼 3
미스킴라일락 지음 / 산지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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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는 책. 

  난 '유방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항암 치료'에 대해서도, 언제가 생의 마지막 날이 될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과 병으로 인한 고통과 치료에 대한 막막함, 이후의 생에 대한 두려움 등의 심경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생에서 이런 큰 병을 직접 겪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과는 사뭇 다르게 모든 것을 수용하고 체감하고 이겨낸 자의 덤덤한 문체로 쓰여 있다. 하지만 이 무게감이 가지는 의미는 내면의 아픔을 직접 겪은 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살면서 그리 즐겁지도 않았고, 힘들어서 자살 생각을 할 만큼 우울했던 사람에게도 '생명'이라는 것은 '소중하다'는 교과서적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심지어 갑작스레 큰 병을 앓게 된다면 말이다. 

  어찌 다 말할 수 있을까. 어쨌든 작가가 병을 이겨내려고 애쓰는 만큼 앞으로도 견뎌내야 할 그 앞날을 응원하고 싶다. 


머리카락이 몽땅 없어지고 나서야 알았다. 바람이 불면 곱슬곱슬거릴지언정 자연스럽게 휘날리는 머리카락의 동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가발은 한 올 한 올 휘날리는 섬세함은 절대 연출하지 못한다. 그리고 또 알았다. 야구 모자를 썼을 때 귀밑으로 송송 자리 잡은 솜털 같은 머리털들이 얼마나 귀한지를.

치료 중에 내 마음을 가장 허하게 했던 것이 ‘먹지 못하는‘ 고통이었다. 대단히 맛있는 음식을 못 먹은 것이 아니다.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출출함을 달래줄 크래커 하나를 먹고 싶었고, 봉지에 담긴 빵 하나를 먹고 싶었다. 매콤한 골뱅이 국수를 호로록 말아 먹고 싶었고, 나물을 넣고 쓱싹쓱싹 비빈 비빔밥을 우걱우걱 퍼먹고 싶었다. 우울할 때마다 찾던 딸기우유도 마음껏 마시고 싶었다. 돈이 없어서도, 시간이 없어서도 아닌데 그것들을 눈앞에 두고도 먹지 못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그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대한 미칠 듯한 그리움이 밀려들 때면 지난날을 후회했다.

가만히 살퍼보면 지금 내가 먹는 빵 한 조각, 달달한 초콜릿 한 입, 따뜻하고 향기로운 차 한 모금에도 그 속에는 잠깐의 휴식, 피로를 달래는 작은 만족감, 원하는 것을 얻은 소박한 성취감, 그리고 마음을 보듬는 위로가 소중하게 담겨 있다.

인생은 때론 버티기다. 무엇인가 이루어지려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들어가야 할 테니 말이다. 그런 ‘버티기의 시간‘ 동안 나를 버티게 하는 건 어쩌면 꿈이 아니다. 지금 세상으로부터 ‘아무나‘로 불려도 요동하지 않는 묵직한 멘탈이 아닐까.

사람은 애정을 쏟아부을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그것을 위해 때론 희생과 수고가 들더라도 그 희생과 수고를 감당하는 부담보다 내가 사랑을 주면서 느끼는 보람과 기쁨의 크기가 더 크니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줄 때 행복을 느낀다. 장담하건대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단 한 번도 무엇인가에게 ‘사랑해’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보고 살면 알 것이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분명 도저히 얼마 참지 못하고 ‘사랑해’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 것이다.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애정을 쏟는다는 건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본능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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