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하는 문장들 - 지극히 사소한 밑줄로부터
이유미 지음 / 큐리어스(Qrious)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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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극히 사소한 밑줄로부터'. 그렇다. 이 책은 작가 이유미 님이 개인적으로 편애하는 문장들을 가져와서 그 글을 읽었을 때 생각나는 이야기나 기억 등을 풀어낸 글이다. 간결한 일상어로 편하게 쓰여진 글이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그 글에 동감하는지 아닌지는 나중 문제로 한다면 말이다.
 즉 이 글은 책 전체에서 작가가 임의대로, 취향대로 '지극히 사소한' 일부만을 발췌한 거다. 책에도 개개인의 취향이 있으니 그 속의 일부에 대해선 공감 여부가 더 크게 갈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이유미 님은 작가이다보니 다양하고 수많은 책들을 접한 후 그 중 일부를 책으로 냈을텐데, 나는 내 편향적 독서 취향이 뚜렷하다보니 전체적인 글에 크게 마음을 뺏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요새들어 여성작가들이 엄마로써의 삶에 대해, 그와 동시에 작가라는 일을 하는 고단함 혹은 그런 삶에 대해 쓴 글이 많아졌다고 느낀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지나게 되는 과정이지만, 수많은 워킹맘들이 그렇듯 작가와 엄마의 삶을 살아내는 것도 무척이나 퍽퍽할 것같다고 느꼈다. 물론 이유미 님은 그 와중에 적절히 '나는 나, 너는 너'의 균형을 잡아가려 노력하시는 듯하지만 실상 그렇게 안되는 경우도 많으니까 안타깝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내가 평생 경험해보지 못할 제 2의 삶에 대해, 아무리 이해하려 노력해봐도 그 공감의 끝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게 아쉬울 때가 있다. 


하고 싶었던 일이든 아니든, 그 일이 나를 정말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만두어야 한다. 세상에 나를 망치는 데도 버텨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란 건 결코 없으니까. 일을 하며 그 정도까지 불행해진다면 그렇게 얻은 성취감이나 돈으로 아무리 퉁을 쳐 봐야 퉁이 안 될 테니까. - 김신지, 평일도 인생이니까

모든 시즌을 통틀어 공간의 크기와 열악함, 연령대, 주조연, 지적 수준, 성격을 막론하고 남성 인물은 전부 자신의 일에 바로 몰입할 수 있는 책상 하나쯤은 갖고 있었다. 반면 여성 인물의 방 풍경은 많이 다르다. 책상 자체가 없고, 필요할 때는 화장대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 이자연, 어제 그거 봤어?

답은 아주 명료하다. 화장대의 기능을 떠올려 보면, 여자라면 당연히 꾸미길 좋아할 거라는 믿음이나 혹은 그래야 한다는 통념이 서사적 논리를 뛰어넘어 TV 안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 이자연, 어제 그거 봤어?

‘일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자세‘가 진짜 일을 잘하는 비결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의 일은 언젠간 끝이 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선 끝맺음이라는 게 없는 법이다. - 강지연, 이지현, 일꾼의 말

"응, 난 당사자가 아니잖아. 자기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걸 구경하는 재미로 부모 노릇 하는 거지, 애 낳아서 내가 나서서 성공시키려는 거면 애를 왜 낳아? 그 정성을 가지고 차라리 내가 직접 성공하거나 코치 같은 직업을 가져서 제자를 기르지."
(중략)
"그럼, 쟤는 나중에 뭐 해먹고 살지?""그걸 왜 우리가 걱정해? 본인이 걱정할 때까지 기다려야지. 우리가 먼저 걱정하면 자기가 걱정을 왜 하겠어? 인간은 편하게 살려고 태어난 존재잖아. 스스로 불편해질 때까지 내버려두자." - 박혜윤, 부모는 관객이다

먹고 사는 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건 만족스럽지도 즐거운 일도 아닌 게 되어버린다. - 이보람, 적게 벌고 행복할 수 있을까

A씨는 폭설이 내린 다음날 남자친구와 거리를 걷다가. 길가에 놓인 아담한 눈사람을 사정없이 걷어차며 크게 웃는 남자친구를 보고, 결별을 결심했다.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하진 않았다. 저 귀여운 눈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파괴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고,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모습이 소름끼쳤으며, 뭐 이런 장난 가지고 그리 심각한 표정을 짓느냐는 듯 이죽거리는 눈빛이 역겨웠다. 눈사람을 파괴할 수 있다면 동물을 학대할 수 있고 마침내 폭력은 자신을 향할 거라는 공포도 입에 담지 않았다. 단지 둘의 사이가 더 깊어지기 전에 큰 눈이 와주었던 게 어쩌면 다행이었단 생각이 들 뿐이었다. - 이적 인스타그램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든 잘하고 싶은사람은 꾸준히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 편성준,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외출할 때 좋은 옷을 골라서 입는 건 당연하지요.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는 집에서 자신을 위해 멋을 내는것, 그것만으로도 어깨가 펴지고 기분이 밝아지며 생활이 훨씬 윤택해진 기분이 듭니다. - 이치다 노리코,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

그렇게 된 게 씁쓸하다기보다 누구나 다 얼떨떨하고 어색한 상태로 인생의 새로운 구간에 도착하고 낯선 역할을 맡아 수행하는 거라고, 경주는 자신이 달라졌고 자신의 어떤 부분은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 서유미, 우리가 잃어버린 것

나는 생각했다. 아프더라도 우리 슬픔, 건드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날 때마다 서랍을 열어 꺼내 쓰는 무언가처럼 자주 열었다 닫았다 확인하고 꺼내 써야 하는 마음이라고.
슬픔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나와 내 곁에 사람들이 선명하게 살아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하여.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일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잊지 않기 위하여. -고수리,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널 그렇게 힘들게 한 사람이 네 인생에서 최고의 남자일 리 없어. 잊지 마. 넌 더 좋은 사람을 만나게 돼 있어."

그런데 주 여사가 어느 날은 그런다. "늙으면 죽어야 돼. 쓸모가 없잖아." 이제는 나이 먹으니까 짐이 된다고, 짐이 되는 존재는 싫다고. 그런 말이 어딨어, 할머니. 주 여사의 대부분의 삶은 누군가를 양육함에 있었다. 그들이 모두 어른이 되자, 주 여사는 더 이상 밥 안치는 법도 세탁기 돌리는 법도 알려줄 데가 없게 되었다. "할머니는 딸이랑 사위한테 시간을 준 거잖아. 우리 엄마 아빠가 나에게 해줘야 할 일을 할머니가 대신해준 거니까, 할머니는 쓸모를 충분히 적립해둔 거야. 그러니까 쓸모없다는 소리는 안 해도 돼." - 김경희, 할머니의 좋은 점

젊을 때는 무엇이든 최선이 아니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어요. 하지만 최선이 안 될 때는 차선이라도 괜찮다고 여기는 태도가 때로는 필요하더군요. (중략) 중요한 건 최선을 알고 난 후에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차선은?‘ 하고 생각해보는 거예요. - 이치다 노리코,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

때로는 걱정한다는 이유로 모든 위로의 말을 꺼낼 필요가 없다. 상처를 상기시켜주기보다 조심스레 덮어주는 것도 위로의 제스처가 될 수 있다.

인간의 뒷모습이 인생의 앞모습이라는 것을.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인간은 타인의 뒷모습에서 인생의 얼굴을 보려 허둥대는 것이다.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몸은 열을 내거나 통증을 느끼게 해서 몸의 주인에게 확실하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식사와 생활습관, 휴식, 마음가짐 등등 바꿔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지금이 그때라는 것을 말이지요. - 히로세 유코, 나를 믿으며 살아도 괜찮아요

오늘 무엇이 좋았고 힘들었는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시시콜콜 나누고 싶었다. - 서유미, 우리가 잃어버린 것

포기할 건 포기하자. 못하는게 있으면 잘하는 것도 있지. 대단한 걸 잘하려고 하지 말자. 작은 일이라도 당신을 기쁘게 하는 일이 분명히 있다. 그것에 만족하면 삶이 풍요로워진다. 큰일은 잘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나 같은 사람은 작은 일을 하며 소소하게 기뻐하면 된다.

나 혼자가 아니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든든하던지. 날 이해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살만하다더니. (...) 어떻게 모두가 나를 이해해줄 수 있을까? 단 한 명이라도 나와 비슷한 형편에 있는 누군가가 내 처지를 알아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제각기 고민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렇게 공연을 보고, 돈가스를 먹고 (그후 케이크도), 올해도 좋은 한 해 보내자고 서로 웃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그럴 때면 ‘인생의 의미‘ 같은 것을 조금쯤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마스다 미리, 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

부럽다는 감정을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에 대한 에너지로 쓴다면 그리 해롭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을 다해 차분하고 싶고 심각할 정도로 즐겁고 싶다. -김사월, 내가 원하는 새벽으로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있지 않다. 없어도 좋을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만큼 홀가분해져 있느냐에 따라 행복의 문이 열린다. - 법정, 스스로 행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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