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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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에 1판 1쇄가 발행된 김연수 님의 산문집이다. '지지 않는 삶', 다른 말로 '애써 이기려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말하는 책이라고 책 설명에 나와있다. 무척 드문 일이지만 책을 읽고 리뷰를 쓰려고 책 내용을 다시 검색했다. 이 책은 그가 생각해온 것들에 대해, 그가 인생을 살면서 혹은 달리기를 하면서 느꼈던 바에 대해 쓴 글들이다. 그런데 그걸 내가 다시 설명하는 게 어려웠다. 포털창에 나온 책 설명을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책 설명을 쓰는 사람도 있을텐데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책의 중심 주제는 '달리기'라고 할 수 있다. 달리기라고 하니 무라카미 하루키도 생각나고 하정우도 생각이 났다. 오래 달리거나 혹은 신체의 고통(?)을 참아내야 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뭔가를 해내도 해내는 느낌이 들었다. 난 달리기 혹은 그 외의 다른 어떤 운동에 대해서도 아주 취약한 편이지만, 오래 달리는 사람, 혹은 달릴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로망이 있다. 정말 멋진 것 같다. 이 책에도 달리기 그 자체가 신나고 재밌고 쉽다는 이야기보다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는 묘사가 나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이겨내는 사람 같았고 자기 자신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 같아보였다.
 짧은 글들의 묶음이었던 것에 비해 잘 읽히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건 첫째로 내가 그의 글에 적응 혹은 단련되지 않아서일 수 있고 둘째로는 작가라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압축해서 적는 사람이라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오랫동안 누적해서 적어온 그의 생각들, 삶에 대한 통찰들이 깊이 있게 우러나있는 글이고, 나도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며 읽었다.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삶의 수많은 일들을 무감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순식간에 노인이 될 것이다. 기뻐하고, 슬퍼하라. 울고 웃으라. 행복해하고 괴로워하라.

고통이 아니라 경험에 집중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행하는 건 삶을 살아가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고통과 경험이 혼재하는 가운데, 거기 끝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자발적으로 고통이 아니라 경험을 선택할 때, 그리고 달리기가 끝나고 난 뒤 자신의 그 선택이 옳았다는 걸 확인할 때, 그렇게 매일 그 일을 반복할 때, 세세한 부분까지 삶을 만끽하려는 이 넉넉한 활수의 상태가 생기는 것이라고.

달리기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시작할 때 그렇지 않다면, 끝날 때는 반드시 그렇다.

결국 최고의 삶이란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는 삶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이런 청춘이라니. 하고 싶은 일투성이인데, 정작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다니.

되돌아볼 때 청춘이 아름다운 건 무엇도 바꿔 놓지 않고, 그렇게 우리도 모르게 지나가기 때문인 것 같다.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다. 세상의 기쁨과 고통에 민감할 때, 우리는 가장 건강하다.

외로운 밤들을 여러 번 보낸 뒤에야 나는 어떤 사람의 속마음을 안다는 건 무척이나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휴식이란 내가 사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 경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쁜 와중에 잠시 시간을 내서 쉴 때마다 나는 깨닫는다. 나를 둘러싼 반경 10미터 정도, 이게 바로 내가 사는 세계의 전부구나.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몇 명, 혹은 좋아하는 물건들 몇 개. 물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지만, 잠깐 시간을 내어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세계가 그렇게 넓을 이유도, 또 할 일이 그렇게 많을 까닭도 없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인생의 모든 순간은 딱 한 번 우리에게 다가왔다가 영영 멀어진다. ... 가을이니까 그 사실이 나를 아프게 하지만, 또 나를 일깨우기도 한다. 나뭇잎이 또 저렇게 졌다가 봄이 되어 다시 돋는 동안, 사람들은 한 번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예측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면 그게 진짜 인생이다.

2009년에 나는 우리 나이로 마흔 살이 됐다. 마흔 살이 된다는 건 우리의 부모 세대가 돌아가시는 연배로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평생 철들지 않고 애처럼 살 것 같았는데 이제 우리 또래는 하나둘 고아들이 되어 갈 것이다. 어떤 고아들도 철부지로 살지는 못한다. 마흔 살이 된다는 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나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더 이상 "그따위는 모르고 살아도 아무 상관없어!"라고 소리칠 수 없게 됐다.

자연이라는 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지만, 때로 그건 너무 잔인하다. 어떤 일을 두고 누군가 "자연스러운 일이지"라고 말한다면, 그게 잔인한 일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인생의 질문은 "어떻게 하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가?"로 집약될 수 있으리라.

시간만 지나면 누구나 늘어나는 나이가 아니라 그가 한 행동들로 그 사람을 구별짓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남들보다 몇 년 더 살았다는 게 대단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건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오래 산 사람과 그보다 덜 산 사람이 서로 뒤엉켜 살아가되 오래 산 사람은 덜 산 사람처럼 호기심이 많고, 덜 산 사람은 오래 산 사람처럼 사려 깊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달리기의 고통이란 앞면은 거울이고 뒷면은 유리로 된 이중창 같은 것이라 지나고 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달릴 때는 정말이지 죽을 것 같았는데, 달리고 나면 그걸 기억하지 못한다. 매번 그렇다.

두 번째로 달린다면 아마도 고통보다는 다른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하고 관찰하고 경험할 것이다. 그걸 아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고통에 끌려가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 더 달리면 그 정도로 집중해야만 하는 고통은 많지 않다는 걸, 사실 고통이란 내가 얼마나 많이 달렸는가를 알려주는 신호에 불과하다는 걸 알게 된다.

소설가란 참으로 고독한 직업이구나는 생각을 했다. 혼자 있지 않으면 글을 쓸 수 없으니 살아서도 고독하고, 그렇게 살아왔으니 사회적인 인연을 맺은 사람이 많지 않아 죽어서도 고독한 것이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추억을 만드는 데는 최소한 두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혼자서 하는 일은 절대로 추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요즘 들어서 자꾸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이 점점 더 소중해지는 까닭이 거기에 있었다. 물론 우리는 언젠가 헤어질 것이다. 영영. 누군가 우리 곁을 떠나고 난 뒤에 우리가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기댈 곳은 오직 추억뿐이다. ... 혼자서 고독하게 뭔가를 해내는 일은 멋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대개 어른들이 그런 건 나중에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일 위주로 생활하면 인생에서 후회할 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늙을수록 시간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능한 한 빨리 해야만 한다.

인생은 이다지도 기니까 지금 할 일은 꼭 지금 하고 지나가는 게 좋겠다. 나중에는 또 그때 할 일이 있을 테니까.

왜 항상 돌아보면 삶은 그제야 그 의미를 가르쳐 주는 것일까?

"내 인생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고 있는데, 내가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어."

20대가 지난 뒤에야 나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최고의 작가가 아니라 최고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최고의 작가가 되는 건 정말 어렵지만, 최고의 글을 쓰는 사람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매일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간절히 원할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 주기 위해서 온 우주가 움직인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자주 우주는 내 소원과는 무관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건 어쩌면 우리가 소원을 말하는 방식이 잘못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마라톤 완주가 아니라 매일 달리기를 원해야만 한다. 마라톤을 완주하느냐, 실패하느냐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매일 달리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다.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 설명하기 무척 힘들지만, 경험상 나는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고 있다.

달리기는 이 이론에 가장 부합하는 운동이다. 말하자면 ‘Get Running Done‘, 즉 ‘일단 끝까지 달리기‘가 가장 중요하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끝까지 달려야만 한다. 중간에 포기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 어떤 계획이든, 시작한 것은 반드시 끝낸다. 그렇게 습관을 들이다 보면 역시 나중에는 제 버릇 못 버리고 일단 뛰기 시작했다는 이유만으로 42,195킬로미터도 기어이 완주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일단 끝까지 달리는 게 중요하다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다. 도중에 포기하면 완주했을 때보다 더 몸이 아프고 기분이 나빠진다.

우리도 모두 나름의 방식대로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겠는가? 할 일 리스트에 빼곡하게 적힌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한 사람으로는 우리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 않을까?

30대 후반은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시절이다. 끝없이 일어나는 일들과 당장 어딘가로 사라지고 싶은 욕망, 암울하고 불안한 앞날, 외로움에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퇴근길의 나날이 있으면, 또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밤들, 내일의 일들이 기대되는 완벽한 나날도 있다.

절망을 좋아하는 척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가 고통과 슬픔을 참아 내는 것은 오직 인간으로서의 관용 덕택이다. 그렇지만 삶은 고급 예술이다.

존경하거나 사랑하거나 친밀한 사람들끼리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도, 서로 각자의 생각에 잠긴 채로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큼 아름다운 광경은 없다고 생각한다.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절망과 좌절, 두려움과 공포가 거기 없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다. 거기에는 오직 길과 바람과 햇살과, 그리고 심장과 근육과 호흡뿐이다. 터널에서 빠져나와 나는 다시 땀과 거친 숨결의 세계로 귀환한 것이다. 한 달에 200킬로미터 이상을 달리는 대신에 숙면을 보장하는 단순한 삶이 나를 환영했다.

생각은 결국 내 몸을 통해 다 드러나는 것, 그러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도 모르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구나.

몸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다. 몸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경험한다는 얘기다. 경험한다는 것은, 절대로 잊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미국 대통령이던 빌 클린턴이 달리기의 ‘구루‘이자 ‘철학자 왕‘이라고 일컬은 조지 쉬언이란 사람이 있다. ... 이 사람이 한 말 중에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바로 몸의 형태가 정신을 규정한다는 말이다. ‘건강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라는 말도 있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훨씬 더 철학적인 얘기다. 건강해야 건전한 정신을 지닐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몸 자체가 생각한다는 뜻에 가깝다.

다들 먼저 온몸으로 경험하기를. 온몸으로 수없이 부딪히고 실패하고 좌절하기를. 더 이상 갈 수 없는 데까지 가 보기를.

내가 생각하는 인과관계란, 노력의 결과를 그 자리에서 확인하는 즉석복권과 같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 그 보답이 즉각적으로 내게 찾아온다. 서른 살이 넘으면서 나는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해 봤다. 순간마다 최선을 다하면 먼 훗날 큰 보답을 받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부록 같은 것이다. 진짜 최선을 다하면 그 순간 자신에 얻는 즐거움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즐거움이 얼마나 컸던지 지나가고 나면 그 순간들이 한없이 그립다. 내가 하는 행동과 말과 일을 통해서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보여 줄 수 있다는 것. 한없이 투명해진다는 것. 그 누구 앞에서도 어개를 움츠르지 않는다는 것. 내게 아무리 많은 돈과 명예를 가져다준다고 해도 그처럼 살아갈 수 있었던 순간들과 바꿀 생각은 하나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 몰두하지 않는 자는 유죄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심장이 뛰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 삶을 마음껏 누리는 게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고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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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0-11-10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잠언같기도 하고 뛰면서 뽕님 말씀처럼 고통을 인내하며 얻어진 독백같기도 하네요.. 뽕님이 모처럼 진짜 많이 인용글 올리신 이유이기도 한 것 같구. 이런 스스로 고통을 인내하며 뭔가 성취해본 경험이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ㅠ 암튼 이왕 뭐 대단한거 못할바엔 즐겁게라두 지내봐요^^

milibbong 2020-11-10 21:08   좋아요 0 | URL
^^ 두부님께서 봐주시니까 한 부분이라도 놓치지 않고 메모해서 적어봤어요. 기억력이 나쁜 저를 위한 일이기도 하구요. ㅎㅎ 너무 많이 적긴 했죠? ㅎㅎㅎ
그런 의미에서, 즐거운 한 주 시작하셨을지 모르겠네요. 왠지 하루하루가 더 빠르게 가는 것 같은 요즘인데, 두부님도 그러신지 모르겠네요 ㅎㅎ 오늘도 마무리 잘 하시고 이번주도 화이팅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