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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기다리고 있어
하타노 도모미 지음, 김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오랜만에 아주 재밌게 읽은 책이다. 재밌게 읽었다고 말하기엔 너무 안타까운 얘기이지만, 현실과 맞닿아있는 그 아픈 상황이 아예 남 얘기 같지도 않아서 공감도 됐고 잘 모르던 세계까지도 엿본 느낌이었다.
책을 한 장 넘기기도 전에 하고 싶은 생각과 말들이 자꾸 떠올라서 리뷰로 한꺼번에 정리하기가 힘들었다. 그동안 내 감상 위주의 글을 적어왔기 때문에 소설 속 스토리를 설명하기도 어려웠지만 설명 안 하기도 어렵고, 한 줄로 끝내기도 어려워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닥 잘 적힌 것 같진 않지만 일단 완성을 해서 블로그 리뷰에 올려두었다. 여기에는 짧게 감상만 남기려고 한다.
하타노 도모미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라고 한다. 이 책에서 처음, 짧게 만나봤지만 분명 그의 다른 책을 읽게 되도 좋아할 것 같았다. 일드로 제작된 '감정 8호선'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얼른 다른 책이 소개되서 나오면 좋을 것 같다.
인생은 자기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한다.
부모처럼 되고 싶지 않은데 같은 길을 걷고 만다. 사치 씨는 그런 자신을 혐오하면서도 루키아와 키라라를 위해 몸 파는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필사적으로 살 거라면 좀더 다른 방향을 지향해 필사적이어야겠지만, 그렇다고 그녀들이 다른 방향으로 가고자 했던 적이 없었겠는가.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장소가 날이 갈수록 멀어져간다. 대학이나 회사 같은 외부와 관계가 단절된 상태로 이 거리에 온 사람은 출구로 향하는 길을 금세 잃는다. 설령 나갈 수 있더라도 언젠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
아무리 힘든 일을 겪더라도 서로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내게는 지탱해줄 사람도, 삶의 이유가 되어줄 사람도 없다.
인내를 거듭해봤자 빈곤에서 벗어날 순 없다. 자급자족하며 돈을 거의 쓰지 않고 친환경적인 생활을 하는 건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동할 때 가급적 자전거를 이용하고 마트의 특별 세일을 꼼꼼히 챙기며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 악착같이 가난을 극복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건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은 언제까지고 가난하다. 몸이 건강할 때는 괜찮더라도 아프기라도 하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겠지만 희망을 갖는 건 좋은 일이겠지. 희망이 있으면 계속 살아갈 수 있다.
제대로 된 돈벌이를 못하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에게 돈을 받고 있다니 너무 한심하다. 어른이 똑바로 살지 않으면 나기 같은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는다. 이 거리에서 돈을 버는 여자들을 나보다 아래로 봐서도 안 되고, 추하게 여겨서도 안 되지만, 한편으론 수치심에 마음속 깊은 곳이 괴롭다. 역시 나의 여성성과 젊음을 파는 일을 그만두어야만 한다. 나 자신이나 즉석만남 카페에 있는 여자들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무엇이 올바른 건지 알 수 없게 된다.
남자한테 돈을 받아 지내기 시작한 뒤로는 홈리스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줄곧 자기합리화를 하고 있다. 돈이 필요한 여자들이 자신의 성이나 젊음을 팔지 않아도 되도록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나기 같은 아이가 생겨날 것이다.
그렇게 조금 더 조금 더, 하는 마음에는 끝이 없다. 얼마나 많은 돈을 가져야 풍족하다고 느끼며 만족스러운 생활을 할 수 있을까.
나는 홈리스가 된 지 반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현재 내 처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떻게든 편한 길을 찾고 있었다. 계속 이대로 살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우선 지금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게 좋겠다. 생각이란 걸 하면 여기서 죽고 싶어질 것 같다.
최선을 다해 취업 활동을 해도, 파견사원으로 일해도 결국 소용없는 일이었으니까, 스스로를 더럽다고 여기면서 몸을 팔 수밖에 없는 걸까. 필사적으로 2차를 나가다보면 언젠가는 더럽지 않다고 느끼게 될까. ... 그 돈만 모아 그만두면 될 것 같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단 몇 시간에 일점오를 받는 것에 익숙해지면 다른 일로 돈을 버는 게 어리석게 느껴지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면서 자꾸 다른 방법은 없을지 생각하게 된다. 어째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걸까.
남 탓으로 돌리는 건 그만하자. 내 잘못이다. 내 인생이니까 어떻게든 스스로 해나가야 한다. 알고는 있지만, 이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건너편으로 가는 건 간단하다. 신호등을 건너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눈앞의 길은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처럼 보인다. 이쪽에 있는 세월이 길면 길수록 강물이 불어나서 다리는 휩쓸려가버린다. 이쪽과 건너편은 사는 세계가 다르다.
아무리 생각해봤자 진실은 알 수 없다. 이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한테서도 그렇게 느꼈다. 밥먹듯이 거짓말하고 얼버무리면서 다들 진실을 숨기고 있다. 진짜 이름조차 밝히지 못한 채 다시 타인으로 돌아간다.
인생은 나 혼자서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무리수를 두면 반드시 누군가에게 걱정을 끼치게 된다.
하고 싶은 다른 일 따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돈벌이만 생각하고 살아온 사이에 인간으로서 느껴야 할 중요한 감정이 결여되어버린 걸까. 생활하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겨선 안 되겠지만 인생에는 훨씬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걸 망각하면 돈도 벌 수 없게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삶을 지키기 위해 돈이 필요하지, 돈을 벌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빈곤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의지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내 성격의 한심한 면을 아빠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지만 완전히 따로 떼어내서 생각할 수도 없다. 자식은 어떻게든 부모의 영향을 받고 자란다.
가슴 언저리가 두근거리며 따뜻해진다. 누군가에게 호감을 얻고 누군가를 신경쓴다는 건 이렇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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