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귓속말
이승우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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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이승우. 이름이 낯설어서 책을 다 읽고 검색을 해봤다. 요즘은 젊은 작가들이 상당히 많아서 30~40대쯤일거라고 생각했는데, 81년도에 등단을 하셨다고 해서 그제서야 이 책이 던지는 무게감, 깊이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왜 그렇지 않은가. 난 이름도 낯설은 사람인데, (이승우 님의 『사랑의 생애』라는 책을 읽긴 했다. 사랑에 대한 묵직한 사유가 담겨 꽤나 잘 읽었던 작품이었다.) 소설가가 어때야 한다는 둥 그런 말을 하면 아무래도 그 말을 100% 소화하긴 힘드니까. 반면에 내가 오래 존경해온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바로 신뢰가 생기는 차이랄까? 작가의 나이가 어렸다면 내용을 잘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개인적으로 철학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이 책에도 철학적 사유가 책 전체에 퍼져있다. 특히나 앞부분은 말장난인 것 같다고 생각될 정도의 철학적 사유들이 많이 담겨져 있다. 중반부 이후로는 소설가, 소설가의 글쓰기, 다른 책들이나 작가들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다. 오랜만에 이런 책을 읽었는데, 사실 예전에 비해 조금 덜 기뻤던 이유는 개인적인 마음 상황 때문인 것 같다. 요새는 취향에 맞거나 재밌는 책이 많이 보이지 않는 시기다. 내가 어떤 거에 끌리는지도, 심지어 책을 읽고 싶어하는지조차 잘 모르겠어서 이런 시기에 이런 사유가 담긴 책은 그리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그때그때 필요하고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는 병렬식 독서를 하는 편인데, 다른 책들도 딱히 읽을 게 없어서 도망갈 곳이 없었다. ;0 책은 나쁘지 않았지만 난 전문적인 글쓰기를 목표로 하지도 않으니 큰 흥미도 여유도 없는 상태로 읽었달까.
 그래도 오랜만에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정석적인 글을 읽은 것 같다. 다른 것들에 대해 걱정 없이 오롯이 문학, 글만 생각하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거야말로 이 책에서 말하는 아이러니가 되겠지만 말이다. 하하- ;) 


0 술을 마시고 한 말도 당신이 한 말이다. 흥분해서 한 행동도 당신이 한 행동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마약이든 이념이든 사랑이든 취해서 한 말과 행동도 당신이 한 것이다. 엉겁결에 한 말이나 행동도, 치밀한 계산과 기획 아래 한 말이나 행동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보다 더 당신이 한 말이고 행동이다. 이 사실을 부정해선 안 된다.

0 사람이 사람에 대해 하는 모든 말은 결국 자기에 대한 것이다. 자기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서 사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 말할 때 말해지는 것은 타인이 누구인지보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이다. 타인의 삶이, 전달하는 사람에 의해 달라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자기를 말하기 위해 타인의 삶을 선택해서 전달하기도 한다. 자기를 말하기 위해 수많은 타인들 가운데 특정한 타인의 삶을 선택하고, 그 타인의 삶 가운데 특정한 부분을 선택한다. 동조하기 위해서든 비판하기 위해서든 그렇게 한다. 자기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서 사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신일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에 대해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사람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아니,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사람이 무엇인지 말하는 장르인 소설은 소설가 자신을 파헤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0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좌충우돌과 회오리, 혼란이고,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욕망을 가진, 예측 불가의 가능성이니까. 그 믿을 수 없는 존재를 느끼고 감각하고 이해하기 위해 다른 시도를 할 필요는 없다. 자기를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우리가 곧 그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믿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기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알려준 사람이 나이다. 나는 내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안다. 사람은 보통 떳떳하지 않은 어떤 일,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자기의 속성을 다른 사람에게는 감춘다. 적어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피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그가 아는 것만큼 그를 알지 못하고, 그가 자기에게 그런 것만큼 믿을 수 없어 하지는 않는다. 그 자신에게는 아니다.

0 모든 문장은, 아무리 잘 쓴 문장도, 불완전하고 불충분하다. 그것이 문장의 속성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자신의 삶(에 의해 형성된 감각)이 참여해서 하는 일종의 번역 작업이다.

0 통증은, 일상을 엉망으로 만들고 관계를 파괴하고 삶을 휘청거리게 한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고 어디서 비롯된 것이든, 고통은 낯선 것이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고, 그러나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절대로 관념이 될 수 없는 것이고, 생생하고 디테일하고 구체적인 것이다. 시인의 말처럼 타인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것은 오만이기 쉽다.

0 그러니까 글을 쓰는 것은 행위를 할 때는 알지 못하던 것, 알 수 없던 것, 알 필요가 없던 것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어떻게 했는지, 왜 했는지, 잘했는지, 다르게 할 수는 없었는지 따져보게 하는 방법이다. 글이 쓰임으로써 비로소 행위의 구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이것은 없었던 것을 있게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존재를 출현시키는 방법이다. 서술되지 않은 것은, 서술되기까지는 아직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0 쓰고 싶은 것을 쓰거나 써야 하는 것을 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쓰지 못한다. 쓰고 싶은 것도 쓸 수 있어질 때까지는 쓰지 못하고, 써야 하는 것도 쓸 수 있어질 때까지는 쓰지 못한다.

0 그러니까 요구할 것은 익숙해지지 않는 것, 섣불리 규정하고 넘겨짚고 유형화하고 관성에 넘어지지 않는 것, 벼르고 깨어 있는 것. 집중하는 것. 참여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 고독을 견디는 힘을 기르는 것. 모든 것을 지금 처음 접하는 것처럼 대하는 것. 모든 사람을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만나고 모든 소식을 처음 듣는 것처럼 듣는 것. 해질 무렵의 하늘이나 특정한 방향으로 구부러진 나무의 자태나 골목길에 매달린 간판이나 그 간판에 덮인 먼지들이나 책상 위에 높인 커피잔 바닥의 커피 찌꺼기나, 무엇이든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처럼 경이로움을 가지고 보는 것. 그런 것.

0 어떤 시간을 이야기의 마지막으로 삼느냐에 따라 행복한 결말이 되기도 하고 슬픈 결말이 되기도 하는 것이 서사 작품이다. 사람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 크든 작든 행복한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 사람의 삶이다. 온종일 기쁘기만 한 날도 없고 하루 종일 슬프기만 한 날도 없다. 어느 장면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해피엔드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플롯의 문제이다.

0 문학은 기대하지 않은 채로 기대된다. 기본적으로 문학은 세계에 영향을 끼치려는 욕망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으며, 그와 같은 초연함을 통해 문학적 방식으로 영향을 끼친다. 말하자면 무엇을 함으로써가 아니라 ‘있음‘으로써 세계를 유지시키고 의미있게 하는 그런 존재가 문학이다.

0 ‘이해‘를 위한 통로는 언어만이 아니고, 마찬가지로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 역시 언어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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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0-06-16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유월이 절반을 똑 지났어요 뽕님.. 날은 습도만 없으면 온도가 높아도 좀 괜찮은듯 한데.. 물론 사무실을 전전하는 제가 감히 할 소리는 아니지만ㅎ 여름을 좋아하기도 하구요. 뽕님도 잘 지내구 계시죠?.. 발췌해주신 이 책의 부분 글은 읽으며 의미를 되새겨 보게돼네요. 말씀처럼 이렇게 읽기 좋은 글인데.. 두께는 모르겠지만 이런 무게의 글이 계속된다면 하루에 한 문단씩 읽어야 할 것 같아요ㅎ 그래두 좋네요. 생각하며 읽었습니다: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 편한 밤 보내세요^^

milibbong 2020-06-17 22: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ㅎㅎ 저도 이런 책은... 훌훌 읽을 수도 없거니와 (제대로 읽은 게 아닌 것 같죠? ㅎ) 계속 이것만 붙들고 읽으면 너무 머리가 아파지거나 무거워져서 조금씩 읽는게 좋더라구요 ㅎㅎ 그치만 대여기간을 지나버리기가 일쑤 ㅋㅋㅋ
오늘 낮에 성수동쪽에 다녀왔는데 잠깐 걸어도 덥더라구요. 흠흠... 저희 집안은 너무 시원해서 (자연바람~^^) 밖에 나가지 않으면 여름이어도 크게 덥진 않은 편인데... 밖은... 허허~ 그저 웃지요 ㅎㅎ 전 더위랑 추위에 몹시 약한 종이거든요 ^^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은... 늘 ... 신기했어요. ㅎ 추위야 싸맬 수 있다지만...
더운데 땀을 두배로 흘리면서 운동장에서 뛰는 사람들이나... 더위에 아랑곳없이 열정적인 사람들은... 와우. ㅎ 진짜... 눈부신 것 같더라구요. ㅎ 전 절대절대 ㅋㅋ
두부님도 여름을 좋아하시는군요 ^^ 전... 그럼 많이 양보해서 여름밤을 좋아하는 걸로 할게요 ㅎㅎㅎㅎ 때마침 참 좋은 시간이네요. 귀뚜라미도 울고... 선선하고... ^^ (시골 삽니당 ㅎㅎ) 두부님께도 이 평안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전달되는 좋은 밤이시기를 바랄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