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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 단련 - 이슬아 산문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몸과 마음이 정갈해지는 듯한 책이다. 책 표지에서부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외관, 필체, 그리고 내용까지. 첫번째 수필집에서도 그랬고, 책이 작가의 성향을 그대로 담고 있는 듯했다. (단순히 비용 절감의 차원에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 느낌으로 만들어낸 심플함까지도 작가와 많이 닮아 있다.)
하필이면 제일 마지막에 인용한 문장이,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에 쓰여있었다. 책을 읽다가 표시해둔 인상깊은 문장들을 옮겨적고 리뷰를 작성하는데, 저 문장들이 다시 마음에 들어와 다시 울컥한 느낌이다. '하마'는 이슬아 님의 남자친구 애칭이고, 내일의 침실에는 하마와 함께하지 못할거라는 상상을 한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별을 했는지 단순한 가정인건지 나는 알지 못한다. 실제로 이별했을 수도 있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저 마음은 너무 슬프다. 아름답고 안타까워서 슬펐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면 누구라도 느낄 수 있겠지만, 책을 함께 읽으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던 사람이라면 마음이 더 찡할 것이다.
나는 공교롭게도 이 책을 박상영 작가의 에세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와 동시에 읽게 됐다. 처음 말했던 것처럼 이슬아 작가의 책은 바르게 정돈된 느낌을 준다. 왠지 나까지 맑아지게 할 만큼의 정돈되고 부지런한 일상에 성실함이 더해진 삶을 꾸린다. 책을 읽는 사람도 그런 맑은 기운을 전해받을 수 있다. 반면, 그 반대편의 이미지를 가진 책이 박상영 작가의 책이었다. 현실의 내 모습과 너무 끔찍하게 닮아 있어서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하고야만 책이었는데, 이 두 작가의 책이 현실과 이상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슬아 작가가 옳고 박상영 작가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슬아 작가가 그만큼 어려운 것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느낌이었다. 이상적인 모습은 누구나 꿈꾸지만 그렇게 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이다. 그 몇 퍼센트의 가능성을 일궈낸 사람도 그 사람의 노력 때문만이 아니라 어떤 후천적인 요소와 환경적인 특혜에 노력까지 더해져서 일궈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이슬아 작가가 대단하다고 생각이 되긴 했지만, 모두가 다 그런 모습으로 되진 않을 거란 생각에 특별히 자괴감이 들진 않았다. 정감이 가긴 박상영 작가가 더 그랬지만, 책으로서 읽기에는 이슬아 작가님의 책이 훨씬 더 깔끔한 느낌을 주긴 한다.
책 뒷 날개를 보니 벌써 이슬아 작가의 책이 여러 편이고, 이제 다른 작가의 책도 출판하는 출판인의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매번 놀랄 일을 참 많이 선물해주는 사람이다. 작가로도 일반인으로도 과감하고 대담하다, 멋지다는 생각에 빠져 그녀의 나이를 까먹고 있다가 다시 한번 놀랐다. 92년생. 그녀가 미래를 다짐하고 계획하고 몇년후를 가정해보다가 그때는 나도 서른이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정말 더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보여줄 앞으로의 행보가 정말 너무너무 기대가 된다.
지금이라고 인생이 우리의 손에 쥐어져 있나. 사실 영영 불가능하지 않나. 그저 이 날들을 흐리멍덩하게 흘려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일지 모른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로 걷는 사람이고 싶기도 하다. 손에 든 게 없으면 양팔을 가볍게 흔들며 산책할 수 있다. 저녁마다 어깨를 곧게 펴고 먼 곳을 바라보고 오래 걷는 인생을 살고 싶다.
쉴 새 없이 연결된, 정보가 범람하는, 모두가 서두르는, 이런 세상에서는 무엇과 연결되느냐 보다도 무엇을 차단하느냐가 더 중요한 정체성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고단한 사람들 앞에선 웃음소리를 낮춰야 한다. 내 작은 기쁨을 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누리는 게 예의일 때도 있다.
사랑은 불행을 막지 못하지만 회복의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사랑은 마음에 탄력을 준다. 심신을 고무줄처럼 늘어나게도 하고 돌아오게도 한다.
그동안의 침실에서 하마는 내 몸과 마음에 여러 용기를 심어주었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떠올리면 좋을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 용기로 나는 어떤 일에서 더 이상 물러서지 않는다. 미안하지 않으면 사과하지 않고 웃기지 않으면 웃지 않는다. 웃길 때 웃음을 참지 않듯 가슴이 아플 때 충분히 운다. 하마 눈에 비친 내 모습이 얼마나 나약하도고 강인했는지 까먹지 않는 한 쭉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서로를 놓치고 나서도 서로에게서 배운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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