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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이슬아 수필집
이슬아 지음 / 헤엄 / 2018년 10월
평점 :
이 책을 받아들고 제일 처음 받은 느낌은 '망했다' 였다. 얼핏 아련한 여자의 뒷모습처럼 보이는 책 표지가 마음에 들어 선택했는데 실제 책의 두께가 너무 두꺼웠다. 나는 도저히 못 읽을 것 같았다.
그런데 반전이었다. 처음 책장을 펼친 이후로 때로는 낄낄 웃기도 하며 따뜻한 이야기들에 너무 소중한 느낌이 들어서 책을 감싸안고 읽게 되었다. 사실 나는 남의 이야기에 큰 흥미가 없는 편이다. 그게 고민거리가 되기도 했을 만큼 말이다. 일간 이슬아도 이슬아가 이슬아 본인과 이슬아의 주변 사람에 대해서 쓴 글이다. 마치 일기처럼 일간으로 매일 발행하며 독자들에게 쓴 글이었고 그걸 몇 달치를 모아 출판한 책이었다. 그러니 내가 책에 관심이 생기지 않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텐데, 실제론 거의 한 달을 넘게 책을 붙잡고 아주 천천히 읽어냈다. 신기한 일이었다.
나는 이 책이, 이 작가가, 이 작가의 친구와 애인과 가족들이 꽤 감동적이었다. 내가 이 책을 잘 읽어냈다는 사실보다 조금 더 큰 찡함이 있었다. 꾸준함, 소박함, 행복, 단란함, 단단함, 열정, 나눔, 노력, 가치, 깊이, 용기... 어떤 말을 붙여야 할까. 이 책이 하나의 감동이 된 건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이 참 바르고 사랑스럽다는데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이야기를 이렇게 열심히 다듬어서 기록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얘기다.
매일의 일상은 늘 우리곁에 있지만,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일들을 읽을 가치가 있는 글로 적어내는 건 무척 어려운 일. 책을 읽으면서부터 느꼈지만, 난 이 작가가 정말 많이 부럽고 존경스럽다. 그녀에게 멋진 응원을 보내고 싶다. 진심으로! :D
‘말실수하지 않게 해주세요. 모르는 것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지 않게 해주세요. 부주의하게 판단하지 않게 해주세요. 빈말을 줄이게 해주세요. 안 웃긴데 일부러 웃지 않게 도와주세요. 안 좋은데 좋다고 말하지 않게 해주세요. 제 어리석음으로부터 저를 지켜주세요.‘ - 화살기도
‘어떤 혐오도 없이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을까. 무해한 말들로 이루어진 좋은 이야기, 그러면서도 무지 재밌거나 슬프거나 아름다운 이야기를 상상해본다.‘ - 견딜 수 없는 대사들
‘돈이 없어서, 혹은 돈이 있어도 시간이 없어서, 혹은 돈도 시간도 없어서, 혹은 돈도 시간도 있는데 마음이 없어서, 혹은 마음이 있긴 있는데 엇갈려서, 우리는 행복을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에 자주 실패해. 내 맘이 당신 맘과 다르고, 자꾸 눈을 피하고, 우린 서로 모르고, 그게 제일 그렇지 뭐. 그 밖에 수많은 이유들로 쉽게 언해피아워를 보내. 행복이라는 희귀한 순간이 얼마나 우리 손에 잘 안 붙잡히는지 붙잡았다가도 어느새 달아나 있고 의도치 않은 순간에 습격해서 놀래키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 해피같은 말에 딱히 집중하지 않게 된 지 오래야. 이제는 그저 아워를 생각해. 섣부른 기대와 실망 없이 의젓하게 시간을 맞이하고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평생 못 될 것 같지만 말이야.‘ - 해피아워
‘하지만 산다는 건 아주 외로운 일이란다. 오늘처럼 네가 와주는 날은 이렇게 좋지만, 네가 다시 떠나고 나 혼자 집에 남으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외로워. 그 앞에서 하마는 말을 잃게 된다고 한다. 나는 하마 옆에 누워 하마의 미래를 생각해본다. 노인이 된 하마의 모습은 열심히 상상해보아도 아직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하마 역시 산다는 건 아주 외로운 일이라고 언젠가 말하게 될까.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외롭다는 말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될까.‘ - 도란도란
‘우리는 타인을 만날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나. 우리 일상에 남이 앉을 자리라는 것은 얼마큼인가. 만나서 마주 앉아 이야기해도 진짜로는 안 만나지는 만남도 많은 것 같았다. 누구의 마음에나 용량의 제한이 있고 체력의 한계도 있고 관계 말고도 애써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 어떤 드라이브
‘하마랑은 온갖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우리는 가끔 아무 말도 안 한다. 말 없이 딴짓을 할 때도 있고 말 없이 서로를 볼 때도 있다. 불안하지 않은 침묵이 우리 사이에 자연스레 드나들기까지 그간 많은 언어가 필요했다. 언어가 잘 만나졌던 순간들이 겹겹이 쌓여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말을 하지 않을 용기를. 어느 순간 아무 말 안 하고도 우리는 너무 괜찮을 수 있다. 가끔 사랑은 그런 침묵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기도 한다.‘ - 고요의 에너지
‘우리는 가족이어도 서로의 마음 속에 어떤 지옥이 있는지 알지 못하고 지나갈 때가 많다. 잘 지내는지, 아프거나 슬프지는 않은지 궁금해하면서도 다 물어보거나 다 말해보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나 긴 이야기를 하면 새삼 놀랄 뿐이었다. 그랬구나, 세상에, 그런 일이 너에게 있었구나, 하고 몇 발짝 늦게 알아주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다. 마음을 다해 듣는대도 대부분의 문제들은 철저히 각자의 몫으로 남기 때문이다.‘ - 축하와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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