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남은 아름다운 날들
베스 켑하트 지음, 윌리엄 설릿 사진, 공경희 옮김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우리의 챈티클리어를 만들어 줄 아돌프는 어디에 있는가?

 

  

  내 생에 남은 날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리고 내가 받은 축복 중에서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하나?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었다고 기억될까?  어느 날 저자 베스 켑하트의 머리 속에 떠 오른 질문이다. 그리고 엄마이자 아내이고, 딸이자 자매, 친구인 그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30에이커쯤 되는 챈티클리어 정원에 왔다. 그녀가 이 곳을 찾은 때는 바로 자신의 생일, 마흔 한살이 된 그 날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녀는 삶에 대한 의미와 방향을 찾은 듯했다. 그녀는 정원에서의 심정을 이렇게 말한다.

 

 내 마음을 아주 강렬하게 사로 잡은 것은 정원에서 느끼는 차분함이었다. 그곳에서는 걱정거리도 줄고 마감이나 혼란스러움에도 덜 쫓겼다. 잃은 것보다는 얻는 것과 감사함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내 나이조차 축복으로 여겨졌으며 오랫동안 품었던 의문에 조용히 해답을 얻었다.

 

  급하게 달려가던 자신의 발걸음을 조금 더디게 한 후, 그녀는 그 곳에서 자연의 숨결을 호흡하며 삶의 안정과 평화, 그리고 여유로움을 느낀 것이다. 인간의 영혼이 가장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자연, 바로 그 곳에서.

 

  이 책에서 저자는, 책 속에 담겨져 있는 흑백사진과 함께, 자신이 정원에서 느꼈던 자연의 평화로움과 그 안에서 발견되는 삶의 숭고함을 조용하지만 너무나도 아름답게 표현해 주고 있다.

 

 

  몇 주전인가. 대학교 선배와 함께 전주시에 있는 신문사에 일에 있어 그 곳에 간 적이 있었다. 신문사 사장님과의 시간 약속이 지체되어 시내 도로변 구석에 있는 찻집에 들어가 전통차를 마시며 한 시간 정도를 보냈다. 그 찻집은 우리가 평소에 잘 가는 커피숍과는 다른, 옛 한옥집 그대로를 찻집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기와지붕이 있고 툇마루가 있고 안방과 사랑채가 아담한 마당을 둘러싸고 있는. 마당에는 화사하게 핀 꽃들과 조화를 이룬 잡초들이 여기저기서 자라고 있었고, 그 구석에는 돌로 만든 절구와 돌상이 있는 조용한 곳이었다. 어디에선가 은은히 퍼져 나오는 목탁소리와 풍경소리는 그런 고용함을 더욱 깊게 만들어 주었다. 그 당시 나는 내가 앉아 있는 곳이 전주 시내 한 복판임을 잊어 버린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찻집은 내가 어릴 때 동네에서 가끔 보았던 대청마루와 사랑채가 있는 단순한 한옥집이었을 뿐이었지만, 그 날 내가 느낀 감정은 어릴 때 받았던 느낌과는 전혀 다른 그런 느낌이었고, 산 속에 있는 절이나 등산을 하다 만나게 되는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게 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마음은 점차 편안해져 갔고, 곧 이어 눈이 스르르 감기면서 달콤한 졸음이 내 어깨를 넘어 눈가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아마도 이 곳이 그 동안 내가 보았던 자연과는 다른, 우리들과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보존되어 온 자연공원이나 산 속의 절간이 아닌, 내가 어릴 적 살았던, 그래서 내 인생의 구석 어딘가에 이미 존재하는 그런 곳이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선배와 나는 이런 말을 하게 되었다. '이 곳에서 느끼는 여유로움과 평안함은 바로 여기가 우리들의 유전자 속에 담겨져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우리 자식들에게도 물려 줘야 하지 않겠는가? 과학 문명이 발달하고 인간의 삶이 아무리 진화한다 해도, 결국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미래는 SF 영화에 나오는 첨단 과학으로 이루어 진 삭막한 철제사회는 아닌 것 같다. 도리어 우리 머리 속에서 잊혀져 가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그리고 수 천년동안 우리들 유전자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오래된 것을 재현함으로써 그것을 우리의 미래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오래된 미래'를 구현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이런 삶의 모습을 우리 인생에서 쫓아낸 것이 바로 우리 세대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초가를 없애고 슬레이트로 지붕을 덮는 것이 새마을 운동이었고, 단층 기와집을 허물어 버리고 아파트를 짓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고창한 거목을 잘라내고 그 곳에 시멘트 건물을 짓는 것이 현대화이었고,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맑디 맑던 개천이 화학약품으로 범벅이 되는 것 쯤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살아 온 지금의 4050 세대들. 인생의 성공이란 좀 더 나은 경제력을 얻는 것이었고, 사회적인 지위 상승은 서구의 합리주의를 배우는 것으로 얻어 질 수 있다고 확신했던 50년, 60년대 생들.

 

  이와 같은 우리의 발걸음으로 인해 우리가 이 땅에 남긴 것은 유기물에 오염된 고기와 중금속으로 범벅된 야채들, 그리고 이유 모를 여러가지 질환과 항생에 내성이 강해진 세균들 뿐.혹시 한 조각의 음식과 순간의 심리적인 만족을 위해 내가 돌아가야 할 고향을 현대화라는 미물에게 팔아 넘긴 것은 아닌지?

 

  내가 예전에 더러운 곳이고 미개한 삶이라고 버린 이 곳이 지금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나에게 웃음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치 자식들을 성공시키기 위해 자신이 가진 논, 밭을 팔아 학비를 대준 후, 배운 것이 없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따돌림을 당한 늙은 노부부의 모습이 떠 올랐다. 나를 키우고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그들이지만 대화가 안 통한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손주 한번 제대로 안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우리의 부모님들.

 

  그녀는 챈티클리어를 만든 아돌프 로젠가르텐을 생각하며 이렇게 말한다.

 

  “20세기 초 이 곳은 아름답지만 위압적이지 않은 사유지가 되었다. 챈티클리어라는 이 정원은 아돌프 로젠가르텐 주니어의 선물이다, 성공한 사업가인 그의 부친은 1913년에 이 부지를 조성했다. 아돌프 로젠가르텐 주니어는 챈티클리어 언덕에서 성장했다. (중략)이 땅에 대한 아돌프의 사랑은 실질적이며 시적이었다. 그는 나무를 사랑했고, 연못을 사랑했고, 풍경을 사랑했고, 고요함을 사랑했다. 나이가 들면서, 인근이 교외 주거단지로 변해도 그는 이 부지를 건드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돌프가 어린 시절을 보낸 언덕을 불도저로 밀고 똑 같은 모양의 집들을 세우는 것을 참지 못한 덕분에 챈티클리어는 오늘 날 존재한다.

 

  우리의 아돌프는 어디에 있을까? 내가 돌아 갈 곳을 지켜줄, 아니 나는 이미 시기적으로 늦었다 치더라도, 내 자식과 그 자식들이 돌아갈 우리의 챈티클리어를 보존해 줄 그는 누구일까?

 

  베스 겝하트는 이 책을 통해 내 인생의 남은 날들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 주었고, 자연의 오케스트라를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 주었고, 그리고 물 속에 잠긴 돌상을 바라보며 내 모습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해 주었다. 엄청난 인생 철학이 아닌 20분이면 돌아 볼 수 있는 한 정원 속에서의 일기를 가지고.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우리에게는 돌아 갈 곳이 있어야 해요. 그리고 이 곳 챈티클리어가 바로 그 곳이예요. 이제 당신도 자신의 챈티클리어를 준비해야 되요. 지금 시작해서 혹시라고 내가 갈 수 없다면, 내 자식과 그 자식들이라도 인간 본연의 호흡을 느끼고 자신 속에 담긴 자연의 유전자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그런 곳 말이죠. 이제는 챈티클리어를 상상만 하지 말고 실제로 만들어 보세요. 언젠가는 우리가 돌아 가야 할 유일한 삶의 고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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