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피쉬
오오사키 요시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들이 살아오면서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과의 관계는 기억이라는 깊은 호수 속에 잠겨 있다. 이것들은 눈으로는 볼 수는 있지만, 손으로 다시 붙잡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이런 기억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만약 이런 사실을 인정한다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당신을 위해 파일럿 피쉬가 되어 준 그 누구이다.’  [파일럿 피쉬]가 담고 있는 내용이다.  

이 책, [파일럿 피쉬]는 우리들이 살아 오면서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해 온, 그렇기에 일상적으로 항상 부딪치면서도 그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소재로 삼은 책이다. 어쩌면 우리들은 이런 소재 자체가 소설의 주요 테마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조차도 느끼지 못한 채 살아 왔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책 자체의 이야기 전개와는 상관없이, 주인공들이 겪게 되는 사건이나 서로 주고 받는 대화 속에서 독자 자신의 지나간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이런 내 모습을 만들어 준 사람은 누구일까?

내가 과거에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다시 전화를 한다면 나는 뭐라고 반응할까?

나와 헤어진 그 사람은 지금도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나 같으면 한 직장에 19년을 다닐 수 있을까? 그것도 남들에게 내 세우기 불편한 일을 하는 직장에서 등등.

 

그리고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들이 색 바랜 영화필름처럼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갈 것이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사람들에 대한 회상과 후회, 그리고 고마움의 감정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마음이 복잡해 질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심오한 철학이나 인간이 갖추어야 할 바람직한 삶의 모습과 같은 거창한 이정표를 얻고자 하지 않았다. 단지,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깨닫지 못한, 내 안에 잠겨있는 깊은 호수 속을 한번 들여 다 볼 수 있게 나를 그 곳으로 이끌어 주기만을 바랬다. 오랜 시간 돌보지 않아 물이끼로 탁해진 호수의 수면을 걷어내고, 그 안에 고요히 잠겨 있는 과거의 아련한 추억들을 하나씩 수면 위로 끄집어 내 깨끗이 닦아 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 주기만을 바랬다.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느꼈기에. 그리고 저자 오사키 요시오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고 나를 그 곳으로 이끌고 간다. 그는 우리에게 대단히 소중한, 그리고 무척 큰 선물을 준 것이다.

 

다만 여기에 한 가지만 더 덧붙여 보고자 한다.

 

나는 이 책에 나오는 파일럿 피쉬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의 파일럿 피쉬는 누구인지에 대해서. 그리고 이에 대한 답은 바로 내가 나의 파일럿 피쉬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그렇기에 함께 모여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 간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가 느끼는 기쁨과 슬픔도, 사랑과 증오도, 그리고 고통의 거의 모든 것이 녹아 있다. 내가 누군가를 기쁘게 했다면, 그는 또 다른 누군가를 기쁘게 해 주었을 것이고, 내가 누군가를 슬픔에 잠기게 했다면 그 역시 또 다른 누군가를 울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라는 작은 잎사귀 하나가 호수에 떨어져 일으킨 잔잔한 파문은 호수 전체로 서서히 번져 갔을 것이고, 그러한 파장의 물결은 결국엔 나에게 다시 다가와 내 잎사귀의 갈라진 틈새 하나를 건들였을 것이다.

 

아마도 나의 파일럿 피쉬는 또 다른 누군가를 자신의 파일럿 피쉬로 삼고 살아 왔을 것이고, 나 역시 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의 파일럿 피쉬가 되어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파일럿 피쉬들의 연결 속에서 내가 보낸 하나의 메시지가 결국 나에게 전달됐을 것이다.  

 

사람은 항상 받기만 하거나, 또 반대로 주기만 하는 경우는 없다. 그리고 자신을 잊어버린채 항상 다른 누군가 만을 위해 살아가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기에. 가난한 자에게 자선을 베푸는 것조차 가난한 자, 그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심적인 평화를 얻고자 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너무 무리한 정의일까?

 

파일럿 피쉬는 다른 사람의 삶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지만, 분명히 자신의 역할을 고통스럽다고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삶 자체가 자신의 삶이라고 알고 있기에. 그리고 자신 역시 자신을 위한 파일럿 피쉬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대화처럼 파일럿 피쉬를 보며 불쌍하다고 느낀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살아 가는 이 세상에서 습득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위에 있는 자와 아래에 있는 자, 부리는 자와 부림을 받는 자, 버린 자와 버림을 받은 자의 이분 법적인 사고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생긴 판단이 아닐까 하는.

 

과거 언젠가 나를 위해 살았다고 기억되는, 나의 파일럿 피쉬였다고 생각되는 그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그 순간을 고통이라고 생각하며 그 순간들을 보냈을까? 그리고 그는 지금, 그 순간을 되돌아보며 괴로워하고 있을까? 그래서 그는 불쌍한 사람인가? 우리는 그것을 알 수가 없다. 오직 그 자신만이 알 뿐이다.

 

나는 우리들이 파일럿 피쉬의 삶을 불쌍하게 바라보기 이전에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것을 포기한 파일럿 피쉬의 삶을 사랑하고, 그런 행동을 기리는 세상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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