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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작가에게 - 글쓰기 전략 77
제임스 스콧 벨 지음, 한유주 옮김 / 정은문고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오래 전, 국문학을 공부하면서 지겨워하던 글쓰기. 학과를 바꿔 다시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다시 글을 쓰리라고 마음먹을 줄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나이 40중반이 되어 속에 응어리진 게 많다보니 어딘가에 쏟아내야 했고, 이런 이유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단한 건 아니고 책을 읽고 느낌을 쓰는(비평이 아니라) 서평쓰기였다.
서평쓰기는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는데 하나는 오랜 세월동안 내 안에 갇혀있던 많은 생각과 고민, 갈등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엉키다보니 결국엔 고름처럼 나를 아프게 했다는 것, 또 하나는 이런 것을 생각 없이 밖으로 쏟아내는 순간 안정감과 평화로움이 나를 다시 감쌌다는 점이다. 말로 하게 되면 감정 섞인 표현으로 누군가에게 상처 줄만한 말도 나 혼자 글로 표현하게 되면 내 자신만을 대상으로 한 글이 되기 때문이다.
서평을 쓰기 시작한 지 8년째인 나. 처음 몇 년은 속에 있는 것을 토하는 데 바쁘다보니 글쓰기 실력 같은 건 관심 밖이었다. 나도 본격적으로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마음이 조금 진정된 후, 지금부터 5년 전이다. 내 글을 여러 분이 읽고 좋은 평을 해 주고, 매주 쓰는 서평(요즘은 잘 안 쓰게 되었지만)을 받고 고맙다는 말을 해 주는 분이 하나둘씩 늘어가면서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모습이 언제부터인지 친근하게 와 닿는다. 요즘은 작가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까 궁금증이 생기기도 한다.
평소 내 글은 시, 소설 같이 특정의 감성을 자극하기 위한 스토리구성방식이 아니라 현상과 논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서술형 문장이었다. 글 쓰는 책을 봐도 문법, 문장론에 대한 책을 주로 봤다. 글의 주제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문장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같은 내용을 전달해도 가장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글을 쓸 때 조심해야 할 단어나 문법상의 오류는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내 글을 보며 뭔가 부족한 게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문장이나 문법보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말을 독자가 어떻게 머릿속에 그릴 수 있도록 표현할 것이냐에 대한 것이다. 문법도, 문장구성도 아직 많이 부족하고 더 많이 습작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본질적으로 글에 대한 사고자체를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 <작가가 작가에게>란 책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소설 쓰는 법에 대한 책이라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소설과는 담쌓은 사람이라 스스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읽는 동안 내 머리 한 구석을 계속 두드리는 게 있었는데, ‘그래. 지금 내가 필요한 게 바로 논리적인 글쓰기보다 내 생각을 좀 더 스토리화 시켜 감성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이 아닐까’하는 것이었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을 보면 여러 가지 재미있는 문장들이 많이 나온다. 독자에게 저자의 생각을 보다 긴박하고 재미있게 전달하여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들 다양한 표현방식들이다. 특히 부족한 문장과 저자가 다시 고친 문장을 비교해 설명한 부분을 보면 내가 봐도 고친 문장이 훨씬 스릴 있고 읽을 맛이 났다. 책에 나온 문장을 하나하나 설명하기는 힘들지만(지면이 많이 필요하니까) 그런 글을 보면서 내가 쓰는 글도 이런 식으로 고칠 수만 있다면 더욱 재미있는 글이 될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저자의 입장을 1인칭, 또는 3인칭의 방식으로, 그것도 단순 서술형이 아니라 독자가 저자의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쓸 수만 있다면 경영, 마케팅 책도 단순한 지식전달의 책이 아니라 저자의 생각을 독자가 머릿속에 그려보는 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그 동안 논리적인 책은 감성을 배제하고 현상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참 바보 같다. 그 만큼 책이 나에게 전해준 메시지가 강하고 직접적이었다는 의미다.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 또 쓰고 있는 사람에게 많은 도움을 줄 책이면서 동시에 자기계발서가 경영, 마케팅과 같은 실용서를 쓰는 사람도 ‘내가 쓰는 것은 논리적인 주제야’라는 생각보다 ‘책은 저자의 시각을 독자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써야 돼’라고 마음을 바꾼다면 소설 작법을 익히는 것만큼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없을 것 같다. 멋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