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 - "상상조차 못한 것을 디자인하고 창조하라."
하르트무트 에슬링거 지음, 강지희 옮김 / 라이카미(부즈펌)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디자인. 예전에는 예쁜 상품을 만드는 기술로써 주로 사용한 방법이었다. 같은 값이면 예쁜 게 좋으니까 말이다. 그러다보니 디자인하면 미적 감각이 필요한 작업, 그림을 잘 그리고 색감을 살릴 줄 아는 기술이 무엇보다 필요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디자인은 미적인 수준을 넘어 상품의 차별화 포인트로, 더 나아가 상품과 사업의 비즈니스모델로써 자리 잡기 시작했다.

저자는 공급이 수요를 앞 선 현대사회에서 비슷비슷한 상품끼리 고통스러운 가격경쟁을 하지 않으려면 남다른 무엇인가를 고객에게 줘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디자인을 통한 차별화라고 한다. 즉 창의력을 통해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시각적인 면을 건드리면서 동시에 상품의 질적인 부분까지 함께 고려하는 디자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책에서 1997년 루프트한자 항공의 리모델링작업 이야기를 한다. 항공기시장에서 밀리기 시작하는 항공사를 살리기 위한 비즈니스 리모델링은 그 동안 고객들이 받았던 불만과 부족함을 없애는 작업이었지만 단순히 가격, 기내식사, 서비스 정도를 좀더 낫게 만들어 해결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저자는 이를 위해 루프트한자 항공기의 내부구조와 의자, 공항대합실를 포함하는 기존 루프트한자의 항공 프로세스를 완벽하게 변화시켰다. 그 중에서도 공항디자인을 개선하는 작업은 무척 큰 작업이었는데 이때 새로 디자인한 곳은 고객이 탑승수속을 하는 공간(고객과 서비스 요원의 눈이 마주치도록 높이를 조절), 탑승수속에 필요한 서류와 도구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동선을 효과적으로 재정비하는 작업, 공항시설 내부의 사각지대와 움푹 들어간 공간을 없애고, 테스크의 혼잡을 줄여 고개의 신체적 안전을 배려하는 작업, 문서관리 시스템을 정비하여 고객의 신상정보를 보호하는 작업 등이었다.

앞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이제 디자인 작업은 우리가 평소 알고 있었던 것처럼 상품포장이나 표지 정도를 고치는 수준을 넘어섰다. 미적인 개념을 내포한 활동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사업의 비즈니스모델과 그 사업과 상품,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겪는 체험 자체를 바꾸는 수준까지 확대되었다. 외향과 함께 변화된 모습에 걸맞는 내면까지 함께 바꾸는 작업이 된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의 역할변화는, 앞에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상품의 질이 유사해지고, 비슷비슷한 원자재와 부품을 사용하는 상품이 늘게 됨으로써 어쩔 수 없이 발생한 현상으로 이와 같은 디자인의 역할은 날이 갈수록 더욱 확대될 것 같다.

예로 플라스틱을 보자. 변형이 쉽고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소재이지만 이런 소재의 상품은 시장에서 가격경쟁밖에는 할 것이 없다. 소비자들은 이미 플라스틱 상품의 가치와 용도를 알고 있고, 기능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어디선가 아주 예쁜, 뭔가 독특한 모양과 색감과 재질의 느낌이 다른, 게다가 다른 상품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독특한 기능을 다른 플라스틱 상품이 있다면 소비자들은 그 상품을 기존 플라스틱 상품과는 다른 상품으로 인식할 것이다. 즉 단순한 소모품에서 장식품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요즘 새롭게 인기를 끌고 있는 소재 중 하나가 스테인리스스틸인데 이 역시 녹이 쓸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랜 시간동안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모양이 투박하다는 이유로 적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소재다. 그러나 요즘은 녹이 안 쓴다는, 항상 반짝거린다는, 청소가 간편하다는 원래의 기능에 최고의 디자인을 입혀 캐릭터상품처럼 판매하고 있다. 투박한 금속이 침실로, 화장실로, 식탁, 책상 위로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저자는 디자인과 경영전략을 두 개가 아닌 동전의 양면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이런 시각은 저자가 그 동안 디자인을 통한 상품차별성, 디자인에 의한 비즈니스모델의 변화, 디자인을 앞세운 신 시장개척과 같은 일을 주도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에게는 애플의 성공도, 소니 워크맨의 빅히트도 결국엔 상품디자인 덕분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다만, 이 책을 읽으며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을 보기 전 느낌과 실제 책 내용과의 괴리다. 책 표지를 보면 누구나 디자인과 창의성, 혁신 방법에 대해 논의한 책이라 이해하기 쉬운데 실제 내용은 저자, 즉 프로그의 대표가 오랜 시간동안 이뤄놓은 업적, 기업들과의 관계문제, 사업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친 리더십, 혁신, 창의성, 경영능력 등 매우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다보니 독자가 원한 내용, 디자인과 관련된 내용이나 창의성에 대한 내용은 극히 일부분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책을 볼 때는, 또 돈을 주고 책을 살 때는 그 책에서 뭔가 얻고자 하는 것이 있는데, 이 책은, 물론 책 내용은 사업성장이나 경영, 리더십을 배우는 데 도움 될 내용이지만, 독자가 얻고자 했던 것은 별로 없는, 책을 덮을 때 저자가 무엇을 주장하고자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종류의 책이 되었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한 책, 독자가 유심히 바라볼 수 있다면 뭔가 얻을 게 있는 책, 하지만 실제 얻고자 했던 것은 별로 담고 있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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