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이야기 - 시대를 뒤흔든 창조산업의 산실, 픽사의 끝없는 도전과 성공
데이비드 A. 프라이스 지음, 이경식 옮김 / 흐름출판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아니 좋아하지 않더라도 요즘 인기 끄는 만화영화를 한 편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픽사’를 모르면 간첩이다. 영화 시작하기 전에 조그마한 스탠드(아이 역) 하나가 나와 뭔가 장난을 치는 장면을 시그널로 보여주는, 무척 인상적인 영화사다.

예전에는 그 장면을 별 것 아닌 것처럼 봤는데 책을 읽어보니 무척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그리고 픽사가 애니메이션에 스토리를 입힌 초기의 작품이라고 한다. 관객들은 아무 생각 없이 보는 순간의 모습(1분도 안 되는)을 만들기 위해 그토록 많은 노력과 기술이 필요했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오랜 시간동안 애니메이션은 디즈니의 세상이었다. 월트 디즈니가 인쇄된 만화캐릭터에 움직임을 줌으로써 만들어진 장편 만화영화. 어릴 때부터 미키마우스, 플루토, 도날드 덕 등을 보며 자란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회사이다. 소비자를 대상으로 수익을 올리는 기업이기보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달하는 사랑의 메신저라고 느껴진다. 실상은 안 그렇겠지만.

하지만 이들의 만화영화 제작 일은 수많은 스틸그림을 그려놓고 이를 한 장씩 찍으면서 움직임을 만드는 무척 고된 작업이다. 가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인간으로서, 또 현실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환상의 세계를 표현하기에는 적합하지만 장편영화를 만드는 면에서는 무척 고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디즈니의 만화영화는 지속적으로 아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영화이며, 지금은 어엿한 부모가 된 중년들도 TV에서 재방송할 때 채널을 돌리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즐겨보는 영화다.

하지만 컴퓨터의 세상으로 들어오면 만화영화의 느낌은 확연히 달라진다. 그 동안 손으로 작업하기 어려웠던,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장면과 느낌을 무척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고, 이와 같은 작업은 영상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프로그램의 발달에 의해 점점 더 현실과 같아진다. 다양한 소프트웨어들이 만화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대용량의 컴퓨터들이 과거에는 꿈도 꾸지 못한 작업들을 가능하게 해 줬다. 우리는 그저 무감각하게 실제와 같은 만화영화를 보며 ‘괜찮네!’ 하는 정도로 끝날 장면들이지만 말이다.

<픽사 이야기>를 읽어보면 이제는 일상화된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변천사를 알 수 있다. 물론 ‘픽사’를 중심으로 한 역사다. 하지만 일반 사서처럼 연도별로 언제, 누가, 어디서, 무엇을,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조그마한 프로그램 하나를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런 프로그램들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천되었는지 들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한 회사를 해부하는 일반 경영관련 책과는 느낌이 다르다.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 ‘동이’를 보듯이 픽사의 발전과 함께 한 수많은 사람들의 땀이 느껴지고, 제한된 자원과 여건 속에서도 ‘자신들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는 자부심 하나로 장애물을 하나씩 건너간 픽사 경영진과 직원들의 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예를 들어 <카>라는 애니메이션영화는 자동차가 주인공인 영화다. 무생물인 차에 감정을 넣고, 이들의 표정을 위해 눈과 입을 줬다. 그러나 차의 느낌을 좀 더 현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차 표면을 실제처럼 만드는 일이 중요했다. 이때 사용된 프로그램이 하나 있는데 바로 ‘광선추적법’이란 것이다. 

이들은 이 소프트웨어를 사용해 빛의 효과를 정확하게 재현했는데...놀라지 마라. 자동차의 표면에 빛이 부딪쳤을 때 이를 현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카>의 한 프레임, 즉 영화에서 24분의 1초에 해당하는 양을 처리하기 위해 평균 17시간이 걸린다. 어떤 프레임은 일주일이 걸리기도 하고. 이 영화는 애니메이션 역사 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시각적 사실성이 돋보인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고 현실과 동일한 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만화영화는 만화영화로써 현실감을 느껴야 한다. <니모를 찾아서>를 만들 때의 상황을 보면 이들은 도리어 현실과 조금 다르게, 즉 애니메이션이기에 현실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소비자의 의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처럼 느끼고 싶다는 이중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부러 현실과 조금 다르게 만들기도 했다. 이들에게 있어 ‘가상현실’이란 현실이 아닌 것을 현실처럼 만드는 게 아니라 현실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영상을 현실과 조금 다르게 만들어 소비자의 인식과 동일한 수준으로 다운 시키는 작업을 의미한다.

컴퓨터 애니메이션의 세상을 창조한 ‘픽사’. 한 시간 남짓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그들이 쏟아 붓은 열정은 단순히 애니메이션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고, 컴퓨터 프로그램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는 자세, 오늘과 다른 내일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의지, 자신의 수준에 작품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목표한, 즉 고객이 원하는 수준에 맞추겠다는 투지는 어떤 사업을 진행하든지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내용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