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 바보 예찬 - 당신 안의 바보를 해방시켜라!
김영종 지음 / 동아시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바보라는 단어가 무척 친근하다. 아마도 나이 40대에 이 단어를 봤으면 ‘바보 같으니’하며 책을 던져버렸을 것도 같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내가 변한 것인지 세상이 나를 변하게 한 것인지 요즘은 ‘바보’라는 단어만큼 정겹게 다가오는 것도 없다. 복잡하게 머리 굴리지 않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보는 그대로 믿는, 세상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귀하다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얻고자 쫒는 명예와 부를 그저 눈만 껌벅거리며 바라보는, 자신의 생각을 눈치 보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물론 상대방이 마음 상하지 않도록) 그들의 모습 속에서 생명수와 같은 신선함을 느낀다. 

사람이 느끼는 불안과 고통의 대부분은 아마도 소유와 비교에서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가져야 할 것을 갖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감, 자신의 계획이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내가 가진 것이 남보다 못하다는 상대적 박탈감과 자괴감 등이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가. 결국 바보는 고통스러울 것도 불안할 것도 많지 않을 것 같다. 가지고자 하는 것도, 내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별로 많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내가 바보들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이들은 ‘바보’이기에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보’이기에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으며, ‘바보’이기에 상대방에 대한 애정을 느낌 그대로 표현한다. 게다가 ‘바보’이기에 미래를 고민하지도 않고, ‘바보’이기에 자신만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바보’이기에 바보처럼 살고, ‘바보’처럼 살기에 남의 시선과 기준에서 자유롭다.

저자는 바보와 대비하는 종족을 현자라고 한다. 즉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 자신이 가진 지식과 사고가 진리이자 절대적인 가치이며, 그런 지식을 통해서만이 남보다 위에 설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특히 이 말이 가슴에 와 닿은 이유는 멍청한 현자의 모습 속에서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현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지식이 나를,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준 것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자신을 현자라고 부르길 원하는 그들의 얼굴에서 해맑은 미소를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저자는 현자가 세상을 위해 해 놓은 일은 세상을 문자 속에 가둬놓은 것 밖에 없다고 한다. 자연을 문자 속에서 알게 하고, 하늘의 이치를 책에서 보게 하며, 사랑과 우정을 문자로 이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런 결과 우리는 자연을 직접 만날 필요가 없어졌고, 하늘에 떠 있는 별조차 직접 바라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고 믿는다. 세상의 이치는 책 속에 들어있기에 그것만 이해하면 다 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언젠가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하늘을 본 적이 있었다. 파란 하늘, 뭉게구름 한 점 없는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색깔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아. 하늘이 저렇게 파랗구나.”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당연히 나는 하늘이 왜 파랗게 보이는지 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그 하늘 역시 어두워지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지식이 당시의 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을까. 하늘이 파란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하늘 그 자체를 바라봐야 하고, 지식이나 잣대 없이 그저 느껴봐야만 한다. “아. 하늘이 파랗구나.”

이성으로 똘똘 뭉친 우리는 오버하지 못한다. 이성은 항상 올바른 것만을 보여주길 원하고, 세상의 기준대로 살긴 바라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원하는 삶 속에서 안정을 느끼고,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이성에 따라 사는 사람은(과거 나처럼) 흥분하지도 않고, 틀린 말을 하지 않고, 남 흉도 보지 않고, 오로지 진리, 즉 책에 나온 것만을 이야기하며 누군가에게 존경받고자 한다. 술 먹고 휘청거리면 약한 놈이고, 진지한 이야기가 오가는 곳에서 시시한 이야기를 떠들면 병신 같다고 느낀다. 아마도 오버한 날을 집으로 돌아오면서 “왜 내가 그런 행동을 했지?‘하며 자책하지 않겠는가.

이 책을 요약하거나 정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다. 바보는 해석하고 분석하고 따지기보다 책 내용에 빠져 느끼기만 하면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바보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어보라. 문장 자체가 자유분방하여 이성을 잠시 끄고 저자의 손끝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 안에 살아 있는,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숨소리를 죽이고 살아온 우리 안의 바보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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