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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 본죽 대표 김철호의 기본이 만들어낸 성공 레시피
김철호 지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예전에 한번 ‘본죽’에서 점심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일 때문에 방문한 회사 임원이 맛있는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데리고 간 식당이었다. 나는 처음에 점심에 왠 죽인가 하는 심정으로 들어갔지만 생각과 달리 식당을 나올 때는 무척 풍족한 기분이었다. 죽이란 게 단지 몸 아플 때 먹는 음식이 아니라 평소 식사대용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었다. 죽. 어릴 때부터 입맛 없을 때, 감기 걸렸을 때만 먹던 음식. 속이 안 좋을 때 밥 대신에 소화잘 되라고 먹는 음식으로만 생각했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게다가 맛도 좋으니.
그 날 죽을 먹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났다. 통념을 깬 음식이 가능한지 궁금했던 나에게는 이란 게 바로 통념을 깬 음식이구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런 종류의 음식을 마음먹고 찾아보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즉 평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음식 아이템 말이다. 아마도 컨설턴트 이다보니 밥 먹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이 책 ‘정성’은 제목 그대로 내용 하나마다 정성이 가득 담겨있다. ‘본죽’ 사장의 입장에서 본 자신의 실패와 성공이야기, ‘본죽’ 브랜드를 널리 알려 세상에 우뚝 서게 만든 그 힘과 기업 성장과정을 나름대로 흥미롭게 정리했다. 이런 종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론과 논리 중심의 책과는 달리 사람 사는 법을 느끼고, 인간의 놀라운 의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이 책을 보면 몇 가지 관심을 끈 부분이 있었는데 하나는 저자가 죽이란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는 대기업과 소규모 음식점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소규모의 구조를 가진, 그러나 복제와 확산이 가능한 아이템을 개발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부분이다. 대기업의 특징은 거대자본을 투여해 대량생산체계와 유통망을 구축하고, 이를 통해 수익극대화를 추구하기에 음식의 표준화와 제조공정이 어려우면 이들은 뛰어들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는 ‘죽’이란 상품이 대량생산과는 거리가 먼, 제조 후 시간이 지나면 죽이 변하기 때문에 항상 주문과 동시에, 그것도 까다롭게 만들어야 하는 음식이라 대기업의 논리로서는 대응이 어렵고, 그렇기에 더욱 소규모 사업으로의 가치가 높다고 한다. 상당히 일리 있는 말이다. 거대자본을 투자했으면 그만큼 많은 수익을 얻어야 하는 입장에서 일일이 가내수공업처럼 만들어야 하는 ‘죽’ 사업은 그들에게는 기피대상이 될 것 같다.
또 하나는 원칙에 대한 부분이다. 즉 저자가 ‘본죽’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결정했던 사업철학과 이념을 고수하고 이를 지켜나갔다는 점이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제안이나 충고를 초심을 기억하면서 거절했다고 한 내용이다.
그 내용은 매장에서 죽을 주문받은 후 만들게 되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 반제품으로 만들어 이를 가맹점에 공급하면 더욱 효율적으로 음식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또 손님들 중에 ‘본죽’에서 주는 죽의 양이 많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현재의 용량을 줄이고 가격도 함께 내리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내용이다.
이 내용이 잊혀 지지 않는 이유는 필자도 이 책을 보지 않은 상황에서 죽을 판매하는 업체에 찾아갔다면 위에서 말한 내용들을 제안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누가 봐도 수익을 높이려면 가능하면 많은 손님을 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식당 내 테이블의 회전율이 좋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그만큼 음식이 빠른 시간 내에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사람들이 양이 많아 음식을 남긴다면 구지 그 양을 고집하기보다 양을 줄이고 가격도 내리면 가맹점주도 손님도 모두 좋아하지 않겠는가 하는 점이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반제품으로 공급하는 것은 ‘본죽’만의 고요한 맛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양을 줄인다는 것은 ‘본죽’의 기본사업 방향인 ‘누구나 한 끼 식사로 충분한 양을 공급한다’는 개념에서 벗어난다는 것이었고, 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기업철학과 사업방식이 지금의 ‘본죽’을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필자도 예전에 ‘본죽’에서 죽을 먹으며 놀랐던 점 중 하나가 죽 한 그릇으로 한 끼 식사를 충분히 해결했다는 점인 것을 보면,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다시 매장을 찾아가게 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저자의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주변사람들의 무책임한, 오로지 효율성만을 따진 논리에 ‘본죽’의 방향이 흔들렸다면 현재의 본죽이 성립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성. 나에게 정직하고, 고객에게 충실한 마음으로, 음식은 절대 상품이 될 수 없다는 저자의 사업철학은 창업을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며, 더욱이 ‘죽’이란 아이템을 찾아 이를 표준화시킨 저자의 노력은 자기 사업을 생각하는 예비사업자들이 관심을 갖고 바라봐야 할 것 같다. 멋진 사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