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의 종말 - 인간은 똑똑한 기계를 원하지 않는다
마티아스 호르크스 지음,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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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래를 희망적으로 생각하는가? 글쎄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인류는 끊임없이 발전했고,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과 싸우면서 앞만 보며 달려왔다. 반드시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지리라는 확신을 갖고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미래세계가 반드시 지금보다 낮은 세상이 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영화만 봐도 미래영화의 대부분은 암울한 세상을 그린다. 자연이 파괴되어 인류가 멸망하는 내용, 달이 지구에 떨어져 지구가 파괴되는 모습, 게다가 우리가 그토록 믿어왔던 기계가 의식을 갖고 반란을 일으켜 인류에게 도전하는 모습들이다. 오래 전부터 인간들이 꿈꿔왔던 파라다이스는 아직도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지만 그것이 완성된다한들 우리가 더 행복해 지리라는 확신이 없다.

요즘 세상을 보자.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은 아스팔트로 포장해버려 흙과 완전히 결별했고, 생물들조차 인간에게 이롭지 않다고 판단되는 순간 세상에서 추방된다. 인간이 그동안 얼마나 자연과 동떨어진 세상에서 살아가면 함평나비축제가 그토록 인기를 끌겠는가. 오래전 우리는 달을 정복하고 바다를 지배하고 자연을 인간 손에 쥐고자 그토록 고생했지만 막상 그것 모두가 손 안에 들어오자 인간은 황폐해졌다. 이제 자연을 외치지 않고는, 또 친환경을 상품 컨셉에 사용하지 않고는 더 이상 물건 자체를 팔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도 기술개발에 대한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더 나은 기술, 인류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술, 인간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그것을 통해 돈을 벌고자 수많은 과학자와 발명가들이 잠을 설쳐가며 연구실에서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고생해서 만든 기술들이 모두 성공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점이 테크놀로지의 발전 상황을 거론할 때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다.

예를 들어 보자. 컴퓨터가 세상에서 힘을 얻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종이가 필요 없다고 선언했다. 자연환경을 유지하는 면에서 무척 바람직한 상황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컴퓨터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전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종이 사용량이 줄었는가? 아닐 것이다. 이유는 바로 인간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 쉽게 말하면 오랜 세월동안 우리 뇌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의식인데, 중요한 것, 소중한 것은 노력을 통해 얻어야 한다는 것,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금도 인터넷에서 자료를 보다 중요하다 생각되면 바로 프린트를 해 버린다. 아무리 컴퓨터 화면에 자료가 있어도 그것을 프린트해야만 뭔가 얻는 것 같다는 의식 때문이다.

그렇다면 휴대폰을 통한 동영상대화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오래전부터 멀리 떨어진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미래예언서나 소설을 봐도 항상 서로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런데 왜 아직도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까? 기술이 부족해서?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미 화상통신의 기술을 개발된 지 오래되었고, 무선망을 통해 얼굴을 전송할 수 있는 정도의 광대역 통신장비도 세상에 널려 있다. 상식적으로 엄청난 용량의 영화를 지하철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기기가 얼굴하나를 상대방에게 음성과 함께 전송할 수 없겠는가.

문제는 기술이 아니고 사람의 의식인데 상대방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는 것을 원하긴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서로 모습을 확인하며 통화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새벽에 부스스한 얼굴로 화상통신전화기를 사용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술개발이 진행되는 것은 연구자의 마음이지만 그것이 상용화되고 수익을 얻으려면 무엇보다 인간의 의식, 사회, 문화적인 요소가 함께 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기술들이, 분명히 기존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저비용의 기술들이 사장된 이유는 그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고, 기존의 기득권자들에게 문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테크놀로지는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다. 인간의 꿈과 사고능력이 죽지 않은 한 무한대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술이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문화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면 기술개발은 그저 개발일 뿐이다. 마치 다이어트기술이, 원격진료서비스가 아무리 발달된다하더라도 인간의 의식이 변하지 않는 한 몸무게를 뺄 수도, 질병을 치료할 수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담배 때문에 폐에 문제가 생겨 폐를 다른 것으로 바꾼다한들 그가 다시 담배를 피운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아무리 다이어트 약을 먹고 살을 뺀들 또 다시 예전처럼 많은 음식을 먹는다면 살이 빠지겠는가. 그래서 이런 것을 개발한 사람이 돈을 버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무척 재미있다. 공상과학영화도 아닌, 실제 개발된 수많은 기술들의 운명을 인간의 의식, 문화와 연결시켜 설명했기에 이해하기 쉽고, 동시에 지적인 호기심도 자극한다. 인간과 기술 간의 관계에 관심이 있으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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