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움직이는 메모 - 손이 뇌를 움직인다!!
사카토 켄지 지음, 김하경 옮김 / 비즈니스세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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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잘 아는 사람들중에는 내가 언제나 들고 다니는 것 하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는 조그마한 수첩이다. 근데 사람들이 그 수첩을 희한하게 보는 이유는 거의 10년 넘게 똑같은 수첩을 들고 다니기 때문이다. 내지는 대략 50페이지정도의 분량으로 껍데기가 얇은 프라스틱으로 되어 있어 내지를 보호하는 수첩이다. 남대문시장의 문구점에서 파는 것이다.

내가 이 수첩을 오랜 시간동안 사용하는 이유는, 물론 수첩 하나를 계속 쓴다는 말은 아니다, 아직까지 이처럼 효율적인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문구점에 가면 10개정도를 사다놓고 쓴다. 다만 예전과 달리 요즘은 수첩 하나를 사더라도 불편한 게 있는데, 5년 전만해도 이 수첩을 일반문구점에서 구입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남대문시장에 가야만 살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일반 문구점에 놓여 있는 이 수첩들은 이제는 실용성 면보다는 디자인에 더 신경을 쓰다보니 언뜻 보기에 투박한 수첩은 잘 안 팔리는 것 같다. 실용성은 뛰어나지만 예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현상을 보면서 가끔 의아하게 생각할 때가 있다. 항상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수첩, 어쩌다 바지 뒷주머니에라도 넣고 다니면 금방 구겨지고 찌그러지게 되는 수첩이 예쁜 디자인으로 포장된 상태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지, 자신이 쓴 내용이 겉표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얼마나 온전하게 오랫동안 메모내용을 보존해 줄 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메모지를 사는 것인지 예쁜 장식품을 사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메모지는 일단 튼튼해야 한다.

내가 이 책을 보게 된 이유는 내가 그 동안 해온 메모방법을 좀 더 개선할 여지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메모하는 행동은 나와 오랜 세월동안 동고동락한 행동이라 그만큼 많은 애정을 갖고 있고, 지금이라도 좀 더 나은 방법이 있다면 얼마든지 고칠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책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 책도 일반적인 내용을 갖고 너무 확대시킨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책을 보면 느낀 소감은 ‘왜 우리는 뭔가 글을 쓰려면 그저 있는 그대로 정리하면 되지 구지 복잡하게 단순한 행동(메모) 하나를 이토록 확대시켜야 하는지’다. 메모는 그냥 메모다.

내가 메모하는 이유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저자도 강조한 것처럼 머리를 단순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모라는 것은 뭔가 다른 일을 할 때 떠 오른 생각, 현재 하는 일과는 조금 다른 생각이다. 그렇기에  메모한다는 말이 생긴 것 아니겠는가. 그러다보니 그 엉뚱한 생각을 어딘가에 정리해두지 않으면 계속 그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 머리를 써야 하고, 결국 본래 일에 집중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책을 보다, 누군가에 이야기를 나누다, 일이나 서류를 정리하다 뭔가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수첩에 적고는 잊어버린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컴퓨터 파일 중에서 메모가 필요한 곳에 따로 정리한다. 예를 들면 글 쓰는 것과 관련된 생각이면 해당 저술메뉴에, 기획과 관련된 생각이면 그 기획서에, 강의와 관련된 생각이면 강의안을 찾아 그곳에 정리한다. 그러면 나중에 메모와 관련된 일을 할 때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이 무엇인지 일자와 함께 생각해 낼 수 있다.

또 하나는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흘러갈 때 이를 정리하기 위해서 메모를 한다. 뭔가 정서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뭔지 모르게 꼬인 것이 더 복잡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정서한다는 행동 자체가 일목요연하게 쓴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정리가 안 된 생각은 떠오르는 대로 메모지에 단어나 그림, 문장을 그냥 써 나간다. 앞뒤가 맞고 틀리고는 생각하지 않은 채로. 게다가 메모지는 그냥 줄만 찍 그어도 전혀 부담 없는 종이이기에 뭐를 어떻게 쓰던지 상관없이 써 나갈 수 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지금 뭐를 쓰고 있는지 조금씩 느끼게 되고, 앞에 쓴 것과 뒤에 쓴 것 간의 관계가 눈에 들어온다. 참 편리하지 않은가? 머릿속에서 혼란스럽게 뒤범벅된 것을 순간적으로 정리하겠다는 것만큼 답답한 일도 없는 것 같다. 얼마 안 되는 지식을 갖고 거대한 뇌에서 움직이는 많은 생각과 사고를 정리하겠다는 것 자체가 무리 아니겠는가.

메모는 좋다. 하지만 메모를 이 책처럼 우뇌, 좌뇌, 게다가 자기계발까지 연결시킬 필요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은데 메모를 하고 말고는 당사자의 결정사항이고, 이제 한두 살 먹은 얘들도 아닌 어른에게 메모의 중요성까지 가르칠 필요가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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