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김희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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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를 걷는 것에 대해 주위사람들에게 가끔 들었다. 얼마 전에는 독일의 코메디언이 쓴 ‘산티아고 가는 길’이란 책도 봤고, 신문이나 잡지에서도 산티아고에 대해 가끔 기사를 접한 것이 있다. 이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는데 아무런 생각 없이 한 없이 걷는다는 것, 그게 좋았다는 말, 평상시에는 겪어보지 못한 어려움이지만 산티아고에서는 별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다는 말(불편 그 자체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인간에 대한 사랑과 포용심에 대한 이야기다. 그저 곁에 있어 좋고,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는 말이다.

그저 길. 한없이 뻣어있는 길을 노란색의 지시 판 하나만을 보며 걸어가다 보면 사막 같은 곳도 있고, 험한 산도 나온다. 물론 가끔은 편하게 걸을 수 있는 평지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평소 즐겼던 음악도, 영화도, 데이트도, 맛있는 음식도 없는 곳에서 한 없이 걷기만 하는 생활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닌 한 달이나 되는 시간을 말이다. 하지만 산티아고에 갔다 온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그때만큼 행복했던 시절도 없었다고 한다. 도리어 평상시로 돌아왔을 때 더욱 힘들어한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편안하게 만들었을까. 나는 그 길을 걸어보지 못해 이들이 느낀 감정을 백 프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목표 하나(산티아고에 도착한다)만을 생각하며 그것만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평화를 느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도 4년 전 회사를 퇴직하고 오일 정도 제주도 도보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무척 마음이 평화로웠고, 평상 시 같으면 집으로 돌아올 때 ‘야! 이제 집으로 가는구나’하면서 기뻐했을 텐데 그때는 도리어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속이 답답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 고생의 세상으로 돌아가는구나’하는 마음이었다. 아마 이들도 이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의 마지막에 보면 기존에 나왔던 산티아고 여행기와는 달리 여행을 마친 후 함께 한 여행자들이 겪은, 아니 당시 겪고 있는 감정에 대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산티아고 순례를 마치고 세상으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산티아고 생활을 잊지 못하는 상태, 화려한 지방으로 여행을 가서도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감정, 멋진 레스토랑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시면서도 산티아고의 찬 물만 못하다는 느낌, 한 두 시간도 걷지 않았는데 길바닥에라도 주저 않고 싶은 심정 등이다. 그저 걷기만 했던 그 시절이 아직도 저자와 함께 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산티아고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이 책을 보다가 갑자기 예전에 봤던 임사체험 책이 생각났다. 그 책을 보면 영혼이 인간세상으로 들어올 때, 즉 인간의 몸을 통해 사람으로 태어날 때 자신이 갖고 온 소명을 잊어버린다고 한다. 신이 그 영혼의 기억에서 소명부분을 평상시 깨닫지 못하게 기억 아주 깊은 부분에 묻어버리기 때문이다. 이유는 영혼이 인간이 되었다가 다시 영혼의 세상으로 돌아가려면 자신이 갖고 태어난 소명을 다해야 하는데, 인간세상이 너무 괴로워 만약 영혼이 자신의 소명을 기억하면 인간으로서 정상적인 삶을 살기보다 자신의 소명만을 빨리 끝내고 영혼으로 돌아가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죽어보지 않았으니 그 말이 맞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인간의 삶이 힘들고 어렵기는 한 것 같다.

저자와 함께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이런 느낌을 강하게 받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산티아고 증후군을 겪으며 일상생활에서 만족감을 못 느낀다는 점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톱니바퀴 같은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이유도 없이 바삐 살아야하는 삶에 환멸을 느끼는 그런 종류의 심정들이다.

산티아고. 그 길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저자는 영웅이야기를 하며 자신 속의 영웅을 발견할 수 있는 끄나풀을 제공하는 기간이라고 하지만, 나는 일상을 벗어나 오로지 한 가지만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복잡한 현실을 벗어나 맑은 공기와 물을 마시며, 오늘 먹을 것과 잠잘 곳만을 생각하는 삶, 내일 무엇이 있을지는 몰라도 오로지 걷기만하면 되는 삶, 그 속에서 어떤 이해관계도 적도 없이 마음을 활짝 열고 만나는 사람과 사람들. 이런 단순한 삶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그때 마음의 평안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봤다.

단순한 삶. 단순한 사고, 단순한 욕망, 그리고 단순한 사람관계. 결국 이것이 산티아고가 우리에게 주는 기쁨이고, 가장 평소 겪어보지 못한 어려움, 대부분이 머리를 쓰기보다 몸으로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으며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얻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 낸 복잡한 삶, 이게 인간의 놀라운 능력이라고 자랑스럽게 떠들어대는 도시의 삶이 결국 우리의 본 모습을 가리고, 두려움과 고통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책에서 저자가 느낀 감정을 현 세상에서도 느낄 방법은 없는지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단순한 삶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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