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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노믹스 - 상상력이 만드는 거대한 부의 세상
수잔 기넬리우스 지음, 윤성호 옮김 / 미래의창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해리포터. 내가 무척 좋아하는 영화다. 책은 보지 않은 채 영화를 통해 접했지만,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부모를 잃고 친척 집에 얹혀사는 한 아이가 우연히 마법사의 세계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친구들과 함께 악과 싸워 세상을 구한다는 흔한 이야기이지만,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나오는 다양한 장면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마법사의 돌’에 나오는 기차역 모습, 마법학교의 웅장한 스케일, 거기서 벌어지는 알콩 달콩한 이야기들. 또 ‘비밀의 방’에 나오는 거대한 거미, 날아다니는 자동차, 감정이 있고 스스로 움직이는 큰 나무, 게다가 뱀까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이 다 등장한다. ‘불의 잔’은 또 어떤가. 자신은 몇 개 학교가 참가하는 시합에 참가하고자 하지 않았지만 요상한 상황으로 인해 선발대회에 뽑혀 시합을 하게 된 해리포터. 이상한 풀을 먹고 아가미가 생겨 물속에서 동료들을 구한 그는 순간 영웅이 되고 그 일로 인해 특별상을 받는다. 하지만 불의 잔이 그를 뽑은 이유는?
영화 한 편 한편마다 큰 줄거리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내용들이 관객이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일단 마법이란 것 자체가 일상생활에서 생길 수 없는 독특한 배경인데다 마법학교가 주는 묘한 분위기, 거기에 익살 맞는 주인공들과 주변 인물들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다음 영화를 기대하게 만들고,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세상의 머리 아픈 것들을 잊게 한다.
저자는 이와 같은 해리포터의 성공요인을 몇 가지 이야기하는데, 그가 강조한 내용들을 보면 우선 해리포터 줄거리의 상품성이고, 티저광고를 통한 고객의 관심을 유지한 것, 인터넷을 적극 활용한 커뮤니티 운영(물론 이건 홍보사가 이끌었다기보다는 독자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이지만), 그리고 작가인 조앤 롤링의 브랜드 통제, 마지막으로 작품을 시작할 때부터 미리 예고한 시리즈물이란 점이 해리포터 이야기를 사상최고의 흥행작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처음 이 소설이 소개될 때 저자인 조앤 롤링의 인생사는 작품의 흥미를 더욱 유발시킬 수 있는 충분한 홍보거리가 되었다. 신문에 해리포터의 저자가 무척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는 기사가 나왔는데, 언뜻 기억나는 것으로는 아이에게 먹일 우유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곤란을 겪었다는 이야기와 이 작품을 구상하는 데 9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는 것, 게다가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수많은 출판사들이 출간을 거절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내용들은 해리포터의 인생역정과 묘하게 일치되어 책에 대한 흥미를 유발시켰다. 나도 저자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보며 책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해리포터의 성공은, 물론 책 자체의 질적인 면이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기업들의 합작품이란 것을 주장한다. 출판사의 적극적인 홍보, 영화사의 시기적절한 광고, 신문사의 기사, 조앤 롤링의 브랜드에 대한 통제 등이다.
하지만 저자는 해리포터 이야기가 기존에 나왔던 판타지소설들보다 월등히 우수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도리어 예전에 나왔던 책들도 조앤 롤링이 쓴 해리포터보다 더 가치 있고, 잘 만든 작품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아니 조앤 롤링 자체가 예전에 나왔던 책들의 구성과 형식을 활용했을 테니 그들이 더 나은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해리포터가 이들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바로 인터넷이란 정보통신망을 통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해 주는 역할을 적극 수행했고, 첫 작품부터 7권의 시리즈물이란 것을 공개함으로써 독자들이 다음 작품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게다가 시리즈물이 각기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1권부터 보지 않고서는 전체의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내용이라는 점이 더욱 이 책에 대한 독자의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다만, 책을 보며 조금 아쉬운 점은 저자가 계속적으로 언급하는 ‘좋은 작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 나름대로 책의 가치는 일정 수준 이상이면 된다는 전제하에서 썼기 때문에 좋은 작품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말을 잘못 해석하면, ‘작품은 일정 수준정도면 되고 나머지는 마케팅이다‘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말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묘한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