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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인텔 - 과거의 성공, 현재의 딜레마, 미래의 성장전략
신용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삼성과 인텔. 정보통신과 이를 중심으로 한 컴퓨터가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두 회사만큼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는 회사도 없다. 컴퓨터와 주변기기들, 이들을 통한 여러 가지 기기가 없으면 하루 생활의 반 이상이 마비된다. 내 책상 위에도 인텔의 센트리노를 사용하고 삼성의 램을 장착한 삼성전자의 노트북이 놓여있는데 만약 이것이 고장 나면 그 날 하루는 멍하니 하늘만 쳐다봐야 한다. 내가 평소 하는 일의 대부분이 컴퓨터에 들어있고, 다른 사람과 이메일을 통해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기업이 망해도 인텔과 삼성은 건재하게 버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닌 상황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거대한 기업 두 개가 바람 앞에 촛불처럼 내일 먹고 살 것을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며, 이것이 점차 더욱 강하게 두 회사를 조이고 있다는 내용이다. 책의 부제 역시 그런 느낌을 강하게 주는데 ‘과거의 성공, 현재의 딜레마, 미래의 성장전략’이다. 즉 지금까지는 성공했지만 요즘 같은 급격한 변화 속에서는 어쩔 수 없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성공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면 두 회사가 처한 상황이 비슷하면서도 무척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이유는 회사의 경영정책, 시장 내에서의 위치, 과거의 성공전략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많은 돈을 들여 인텔이 개발한 D램을 삼성이 이어 세계 선두기업이 되었다는 것이다. 인텔은 수익성 문제로 램을 버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로 방향을 전환했고. 이를 삼성이 받아 키웠다는 말이다. 이는 인텔을 선두기업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타입이고, 삼성은 후발주자로 다른 기업이 시작한 사업을 이어 이를 최고로 만들며 시장 내에서 힘을 키우는 타입이라는 의미이다. 남들이 볼 때는 각기 다른 분야에서 같은 위치에서 공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성장전략 자체가 조금 상이한 구조를 가진 회사들이다.
저자는 두 회사의 기업문화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비교를 한다. 인텔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명으로 조직원들의 창의력을 키우는데 주력하는 반면, 삼성은 기존 시장의 관리와 유지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인텔과 삼성의 조직운영도 무척 상이한데, 인텔을 개인적인 사고능력을 중요시하고, 삼성은 조직적인 운영에 더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다. 어쩌면 미국과 한국 간의 문화차이일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구조는 서로가 바라보는 시장의 차이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두 회사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는 시장의 노화와 성장의 한계상황이다. 마이크로프로세서도 컴퓨터의 성능 면에서 개발에 대한 필요성이 줄어들고, 삼성 역시 램의 속도경쟁에서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은 앞으로 속도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성능 이상의 성능이 필요한가의 문제 때문이다. 하나의 프로세서에 두 개의 CPU를 가진 듀어와 4개의 CPU를 가진 쿼드 이상의 프로세서가 할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실제 내가 가진 컴퓨터가 오래 전에 나온 센트리노급이지만 프로그램이나 이미지, 동영상화일의 다운속도가 조금 떨어진다는 것 빼고는 사용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 물론 빠르면 좋기는 하겠지만 그만큼 비싸기 않겠는가. 문제는 속도 대비한 가격과 사양교체에 대한 필요성이 점차적으로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 책의 진미는 뒤에 있다. 바로 두 회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연속적인 발전이 아닌, 불연속적인 성장을 해야 하는데 이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기존에 있던 것을 조금 더 낫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BT, NT, IT를 통합한 CT(Convergence Technology)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이와 같은 불연속적인 성장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이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는 구지 인텔과 삼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체된 시장에 있는 다양한 기업들이 눈여겨 볼만한 사항이다.
급격한 시장변화. 이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남들은 대기업이 공룡이라 변화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공룡같이 거대한 기업도 힘든 상황에서 조그마한 기업들은 오죽 하겠는가. 대기업이고 중소기업이건 간에 자신의 시장이 성장이 아닌 성숙기에 접어든 상황이라면 저자의 불연속 성장에 대한 제안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런 점에서 무척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