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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두 얼굴 - 무엇이 보통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가?
김지승 외 지음 / 지식채널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평소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결정하고 사는 줄 안다. 내가 먹을 것을 고르는 것도, 입을 것을 사는 것도, 하다못해 친구와 함께 있을 장소를 고르는 것도 말이다. 그러나 사람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면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주변 상황이 우리를 대신해서 많은 것을 결정하고, 그것이 맞다고 결론 내리게 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대구 중앙로역에서 50대 남자의 방화로 인한 화재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으로 객차 12량이 모두 불타고, 192명의 사망자와 14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은 참사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급작스러운 화재로 인해 객차 안에 있던 사람들은 대피할 시간도 갖지 못한 것일까?
참석자 말로는 객차로 연기가 들어오기 시작한 다음 10분정도 시간이 있었다고 한다. 연기가 들어온 후 10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면 당시 승객들은 객차 문을 열고 대비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당시 생존자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가만히 있으니까 자신도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아이가 눈이 아파 울고 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왜 그들은 연기가 자욱한 상황에서도 대비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을까.
이 책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왜 인간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 시도한 책이다. 책을 읽어보면 사람들이 주변 상황에 얼마나 쉽게 적응하는 지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5명이 문제를 푸는데 그 중 4명이 미리 짜고 답 같지도 않은 답을 계속 이야기하면 나머지 한명은 자신의 생각을 고쳐먹고 나머지 4명을 따라 오답을 정답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우습지 않은가?
아마 이런 이야기를 듣는 사람 중에는 다른 사람들은 바보 같아서 그렇고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이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개중에는 주변상황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판단에 의해 행동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른 연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하다. 즉 한 연구소에서 인간이 상황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 알기 위해 무작위로 사람들을 뽑아 몇 명은 죄수를, 몇 명은 간수를 시켰다. 그런데 며칠도 안 가 간수를 맡은 사람들이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죄수들을 때리고, 머리에 종이를 씌워 기합을 주고 성희롱을 한 것이다. 옷을 벗겨 때리고 얼차레를 주는가하면 서로 상대방을 때리게 하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한 것이다. 진짜 간수, 죄수도 아닌 일정기간동안 실험에 참여하는 피시험자들끼리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평소 문제가 있는 사람들인가? 당시 시험을 주도한 연구원들 말에 의하면 그들은 시험에 참가하기 전 적성검사도 무사히 통과한 사람들로 일반사람들과 전혀 차이가 없는 극히 정상적인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잔인하게 만들었을까? 저자는 이것이 바로 상황이 인간에게 주는 무서운 결정력이라고 한다. 자신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상황 자체가 어떤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면 왠만한 인간은 그런 분위기를 따라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 즉 안전에 대한 욕구로써 자신이 소속한 집단에 대한 불복종은 자신의 안정을 위협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모든 인간이 상황에 굴복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상황으로 인해 외면한 정의를 홀로 실천함으로써 영웅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선로로 뛰어내려 위급한 상황에서 인명을 구한 사람들이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하냐고? 다른 사람들은, 주위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어. 어. 어” 하며 바라만보고 있을 때 그 사람만이 혼자 사람을 구하기 위해 뛰어내렸기 때문이다.
이 책을 보면 인간들이 주변 상황에 얼마나 취약한 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의 결정을 믿고 남들과 다른 결정을 내리면서 영웅이 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우리는 상황을 따르기도 하지만 인간이기에 그런 상황을 이기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할 힘도 있다는 말이다. 무척 멋진 말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