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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플래닝 - 불확실한 미래의 생존전략
유정식 지음 / 지형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릴 때만해도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무척 단조로웠던 것 같다. 어른 말을 들으면 그대로 된다고 믿었고, 또 그들 말이 틀린 것도 별로 없었다. 대학 마치면 전공대로 직장에 들어갔고, 취직하는 순간 결혼하여 아이 낳고, 아내는 집에서 살림하고 남편은 직장 다니며 돈 벌고, 그러다 좋은 기회가 생기면 자기 사업하는 모습 말이다. 그러다보니 뭔가를 상상하기보다는 과거의 모습을 찾아 거기서 내 미래를 보는 것이 훨씬 쉬었다. 이미 뻔한 길이 있는데 구지 머리 쓰면서 고민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나도 나이 50이 된 사람이지만 20살이 된 아들에게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어렵다. 세상이 어떻게 변할 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나의 전문성에 몰입하면 성공한다? 다양한 방편에 넓은 지식을 가지면 성공한다? 자기 고집이 세면 세상 살기 어렵다? 학벌이 성공을 보장한다? 아마 이 내용들을 갖고 이에 해당되는 사람들을 추적해보면 성공 확률은 50%일 것이다. 즉 성공할 지 안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니 기업은 더 죽을 맛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 지 예측하기가 어려우니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이끌지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최근 환률 때문에 적자를 본 기업들을 보라. 그들은 평소 설마 환율 따위가 내가 일 년 동안 열심히 번 돈을 까먹으리라 예상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은 냉정해서 원자재 가격이 오르니 상품가격은 당연히 오르고, 상품가격이 오르면 소비는 줄기 마련이다. 게다가 이로 인해 상품가격을 제대로 올리지 못하면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결국 적자를 보게 된다. 나중에 보면 간단한 이치이지만 이를 사전에 알아 원자재를 사전에 원자재를 평소보다 많이 구매한 기업, 원자재 가격 자체를 일정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은 기업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자들은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한다. 어떤 상황이 발생할 지 미리 알고 그에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미아리에 있는 점집에 찾아가 자신의 미래를 알아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세상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안다면 그건 이미 인간이 아니라 신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한 가지의 결과라도 오만가지 변수와 연결되어 발생하는 현 세상에서 어떻게 딱 한 두개의 변수를 갖고 세상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아마 이런 상황으로 인해 최근 들어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분야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같다. 비록 이것이 무엇인지 자세히는 몰라도 미래에 어떤 상황이 발생할 지 예상을 하고 이에 대해 대처하면 막상 일이 닥쳤을 때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말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이런 경영진들의 자세를 그리 좋게 보지 않는 것 같다. 이들의 말은 ‘시나리오 플래닝’이 아니라, 예전에 쓰던 미래예측 방식을 말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시나리오 플래닝을 위해 별도의 TFT가 만들어졌다. 이들이 몇 달 동안 고민해서 5년 후 미래에 대한 몇 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이를 경영진에게 보고하는데 경영진 왈. “수고했어. 근데 그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현실적으로 발생할 확률이 높은 것인가?” 어떤 듣기에는 상당히 일상적인 질문 같지만 이 질문 속에선 미래를 예측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작업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현재 기업이 풀어야 할 과제를 분명히 정의하고, 이와 같은 문제에 영향을 주는 몇 가지의 변수를 결정한 다음, 이들이 서로 영향을 주면서 만들어지는 미래의 모습을 그려보자는 것이다. 어떤 것이 발생확률이 가장 높은지는 의문점으로 남겨놓은 채 말이다. 물론 정책적으로 이들 내용 중에서 현재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긴 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예측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자는 것임을 잊지 말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요즘같이 급변하는 세상에서 미래에 대한 선입관을 버리고 나는 미래를 모른다는 자세로 시나리오를 작성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저자가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것을 워낙 복잡하게 설명한 바람에 이를 제대로 이행할 기업이 몇 개나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